이재명 사법리스크 총선 때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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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표 허위사실 공표 기소당한 민주당의 ‘전쟁’

“승부는 중장기적으로 갈 거다. 어차피 법원에서 3~4년은 주고받는 공방전일 것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결국은 민생을 누가 챙기고 국민 여론을 더 얻냐의 싸움이다. 거기에 승부처를 두고 격돌하는 거다.” 누구와 누구의 격돌이고 싸움이라는 것일까. 윤석열 정권과 민주당이다. 입법부 여·야의 싸움이 아니다. 정권 또는 검찰과 원내 1당인 야당의 대립구도다.

9월 5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비상의원총회에서 이재명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9월 5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비상의원총회에서 이재명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범죄수사를 받던 사람이 다수당 대표라고 해서 있는 죄를 덮어달라고 하면 국민이 수긍하지 못한다.” 9월 15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말이다. “야당에서는 이재명 대표를 기소한 배경에 한 장관 시나리오가 있다고 한다”고 한 기자가 묻자 그가 내놓은 답변이다. 그는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 경찰과 검찰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수사할 것이다”라고도 했다.

검찰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재판에 넘긴 것은 9월 8일. 혐의는 두가지다. 하나는 대선 시기였던 지난해 12월 22일 방송 인터뷰에서 대장동 사업 관련자인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에 대해 “하위 직원이라 시장 재직 때는 잘 몰랐다”는 발언이다. 서울중앙지검이 조사하던 사안이다. 또 하나는 이른바 ‘백현동 특혜 의혹’ 관련 “국토부 용도변경 요청에 따른 것이었고 성남시는 응할 수밖에 없다”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당시 답변이다. 이 역시 허위사실 공표라는 것이다.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3부가 수사하던 사건이다. 검찰은 이날 두 사건을 일괄 기소해 서울중앙지법에 넘겼다.

추석 연휴 전날 재판에 넘긴 검찰

선거법 공소시효는 6개월이다. 대선이 치러진 것이 3월 9일이므로 검찰이 기소한 8일은 공소시효 만료 하루 전이다. 동시에 이날은 대체공휴일을 포함해 나흘에 걸친 추석 연휴 시작 전날이기도 했다. “추석 민심 밥상머리에 ‘이 대표의 도덕성’을 올리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 까닭이다.

이재명 의원실 김현지 보좌관의 ‘전쟁입니다’ 문자가 국회 출입기자들의 카메라에 포착된 건 일주일 전인 9월 1일 오후였다. 왜 전쟁이라고 했을까. 사진을 보면 이재명 의원실의 소통창구는 818호라는 이름의 텔레그램이다. 등장인물은 두 사람인데, 두 사람 모두 이재명 의원실 보좌진이다. 9월 8일 검찰 측의 주장에 따르면 이 대표의 출석요구서를 보낸 것은 ‘전쟁 문자’ 전날인 8월 31일이었다. 9월 6일에 중앙지검으로 출석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대표 측은 출석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면서 ‘갑작스러운 소환통보’의 배경엔 검찰의 ‘모욕주기, 망신주기’ 의도가 녹아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문재인 정권 5년을 겪었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이재명 대표가 2027년 대통령에 당선되면 검찰대학살은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결국 운명을 건 대회전이라고 규정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도 이런 검찰 공세를 예상했기 때문에 재보궐·당대표 출마, 당헌 제80조 제3항 수정 등 ‘3중 방탄’을 구축한 것이다.” 엄 소장의 말이다. 민주당은 비대위 시절이던 지난 8월 17일 당헌 제80조에서 “뇌물·불법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 관련 법 위반으로 기소된 당직자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정지하고 중앙당 윤리심판원에 조사를 요청”하도록 돼 있는 제1항은 유지하는 대신 제3항을 “제1항의 처분을 받은 자 중 ‘정치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중앙당 윤리심판원의 의결을 거쳐 징계처분을 취소 또는 정지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수정했다.

문제는 실제 재판에 돌입했다고 하지만 지리한 공방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최소 내년 총선까지 이어질 것이며, 그 이후에도 사법 공방이 계속될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음 총선 전까지 원내 다수당은 민주당이다. 1월이나 2월에도 임시회를 만드는 등 1년 내내 회기를 만드는 것이 자력으로 가능하다. 의석수가 많으니 욕을 먹든 말든 방탄국회가 가능한 셈이다.” 박신용철 더 체인지플랜 선임연구위원의 말이다. “그나마 민주당으로서 명분이 있는 건 대통령 지지율이 엉망이라는 점이다. 국민적 공감대는 얻지 못하겠지만 이 국면은 결국 지리멸렬하게 계속 굴러가는 형국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는 걸까.

김성순 시사평론가는 사법리스크 국면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질 것이라는 평가엔 동의하지만 ‘명분’에 대한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정치는 결국 명분 싸움인데, 예를 들어 김건희 특검으로 윤석열 정권을 단죄하기에는 야권의 명분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거기다 민주당이 김건희 특검과 민생이라는 투트랙을 제기하지만 TV뉴스로 이재명 기소 소식을 듣는 ‘시골 막걸릿집 장삼이사 프레임’에서는 이기기 힘들 거라고 김 평론가는 분석했다. “TV뉴스로 허위사실 공표 어쩌고 하는 게 나오면 국힘 지지층은 ‘이재명 쓰레기 아니야?’라고 반응한다. 구속이 되든 기소가 되든 확증편향이 더 강화된다. 반면 김건희의 경우 제일 중심이 되는 것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인데 내용이 어렵다. 반지, 논문이 어쩌네 등도 과연 확증편향을 가진 시골 할아버지들한테 통할까.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은 누가 반지 안 사줬나, 역대 영부인 중 저렇게 배운 사람이 누가 있어’라는 말이 대뜸 나오게 돼 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현실정치에서 지역에 내려가면 샤이보수고 진보고 그런 것 없다. 다 형·동생이다. 선거 때 보면 친분관계로 이편저편으로 나뉘는데, 막걸릿집 입담에도 ‘로직’이 필요하다. 중앙당이 그 로직을 못 짜주고 있다. 반면 검찰이 제일 잘하는 일은 그런 프레임을 짜는 일이다. 윤석열 정권이 가진 이점이 뭔가. 역대 정권 중 검찰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정권이지 않은가.”

2023년 총선까지 계속될 ‘강 대 강’ 대치

“결국 다음 총선까지 강 대 강의 극한대결로 갈 수밖에 없고, 총선에서 승부로 정리되긴 할 것이다. 민심이 윤석열 정부로부터 많이 이탈한 건 사실인데, 문제는 그 이탈한 층이 민주당으로 가진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시사평론가 유창선 박사의 말이다. 그는 이 대표 선출 이후 민주당 상황을 보면 역대급 강성지도부가 역대급 강성노선으로 가는 듯한데, 민주당이 보여주는 이런 모습이 여권에서 이탈한 중도층의 마음을 흡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민주당을 이탈한 사람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를 축출하는 과정에서 등을 돌린 2030세대를 포함해 상당한 부동층이 총선 전까지 형성될 터인데, 그렇다고 양당으로 재편된 현재의 정치구도상 제3정당이 나와 부동층을 흡수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게 유창선 평론가의 진단이다.

한편으로 주목되는 것이 내각제 추진을 매개로 한 정계개편이다. 정치 초심자인 윤 대통령의 통치행태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차기 총선 시기를 전후로 내각제를 매개로 여·야의 비주류세력이 손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유 평론가는 그러나 “현행 대통령제의 승자독식 구조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고, 내각제를 포함한 정치개혁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현실적으로 윤석열이나 이재명 중 누가 내각제를 원하겠냐”고 덧붙였다. 내각제와 같은 정치제도 개혁은 조기에 공론화되고 추진돼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2023년 총선 이후에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설사 누군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총선 전 공론화는 어려울 것”이라며 “이번 정부 임기 내에 추진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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