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도 정부도 부담스러운 ‘BTS 병역특례’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박형준 부산시장, 윤 대통령에 서면·대면 건의

대통령실 “국회와 함께 신중히 검토” 국회 “정부가 시행령 개정만으로 가능”

국회가 법을 개정하면 된다. 아니면 정부가 대통령령(시행령)과 훈령만 변경해도 가능하다. 그러나 국회와 정부 모두 부담스럽다. 방탄소년단(BTS) 병역특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논란이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잊을 만하면, 다시 공론장에 회부된다.

지난 7월 19일 서울 용산구 하이브엔터테인먼트에서 열린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한 홍보대사 위촉식에서 방탄소년단(뒷줄)과 박형준 부산시장(앞줄 왼쪽부터), 한덕수 국무총리,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박지원 하이브 대표가 기념촬영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지난 7월 19일 서울 용산구 하이브엔터테인먼트에서 열린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한 홍보대사 위촉식에서 방탄소년단(뒷줄)과 박형준 부산시장(앞줄 왼쪽부터), 한덕수 국무총리,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박지원 하이브 대표가 기념촬영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최근 BTS의 병역 문제가 재차 수면 위로 떠올랐다. BTS가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의 부산 유치를 위한 홍보대사에 임명된 게 계기가 됐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직접 나서 윤석열 대통령에세 서면·대면을 통해 BTS의 병역특례를 건의했다. 해당 건의는 현재 소관부처인 국방부에 전달된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BTS가 병역특례를 적용받지 못하면 멤버들은 오는 12월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입대해야 한다. 상황 변동 없이 이들은 자연스럽게 군 복무를 하게 될까, 그 전에 어떤 극적인 대책이 마련될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부산시 “절박하다” 정부와 부산시는 2030년 부산엑스포 유치에 총력을 기울인다. 지난 7월엔 기존의 정부 및 민간 유치위원회를 통합해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가 출범했다. “엑스포 유치를 위해 국가적 역량을 한데 모으기 위한 것”이라고 정부는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한국은 2012년 여수엑스포와 1993년 대전엑스포를 개최한 바 있다. 이들은 ‘인정엑스포’다. 이번에 부산에서 유치하려는 것은 ‘등록엑스포’이다. 인정엑스포보다 규모가 크고 기간도 길다. 인정엑스포는 주제가 한정되지만 등록엑스포는 제한이 없다. 등록엑스포는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행사’로 꼽힌다. 세계에서 이들 3개 행사를 모두 치른 국가는 6개뿐이다. 부산시는 엑스포가 열리는 6개월 동안 방문객 약 4000만명, 경제효과 61조원, 고용창출 효과 50만명 등으로 추정한다.

유치위원회와 부산시는 지난 7월 19일 BTS를 엑스포 유치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앞서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세계적인 배우가 된 이정재씨, 가상인간 ‘로지’에 이어 세 번째 홍보대사이다. BTS는 오는 10월 부산에서 유치를 기원하는 무료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한발 더 나아가 BTS의 병역특례를 꺼내들었다. 부산시는 지난 8월 18일 보도자료를 내고 박 시장이 BTS의 대체복무 적용을 대통령실에 건의했다고 밝혔다. 부산시는 “엑스포 유치 경쟁에서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다”라며 배경을 설명했다. 박 시장은 건의서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우리보다 1년 앞서 유치 활동에 뛰어들어 최고 지도자와 왕족 장관들이 나서는 등 선점 효과를 거두고 있다”라며 “대통령께서 대승적으로 결단해주실 것을 간곡하게 건의드린다”고 밝혔다. BTS의 병역 문제가 적극적인 유치 활동에 걸림돌이 될 수 있으니,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최근 부산을 방문했을 때도 박 시장은 같은 내용을 재차 건의했다.

엑스포 개최지는 내년 11월쯤 결정된다. 내년 3~5월쯤 국제박람회기구(BIE)가 개최 후보지를 방문해 현지 실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때 BTS가 동행해 직접 안내하는 방안도 부산시는 계획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BTS가 나서면 세계적으로 많은 조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BTS가 병역특례를 받지 못하면 부산시의 이런 구상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오는 12월 멤버 진(김석진·30)이 입대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병역특례가 적용되면 예술요원으로 편입돼 사실상 군 복무가 면제되면서 지금처럼 ‘완전체’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박 시장은 BTS 등 대중문화예술인이 특례 대상에서 제외된 현 제도 자체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시 관계자는 전했다.

박 시장은 한덕수 국무총리에게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차례 BTS의 병역특례를 건의했다고 한다. 지난 8월 29일 엑스포 예정지를 찾은 김진표 국회의장에게도 BTS의 병역특례를 위해 노력해달라고 부탁했다.

박 시장이 대통령실과 국무총리에게 BTS의 병역특례를 건의한 건 정부의 재량으로 이를 관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가 병역법을 개정해도 되지만, 정부의 병역법 시행령과 병무청훈령 개정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 박 시장은 향후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만나 설득하는 방안도 준비하고 있다.

대통령실 “국회와 함께 신중히 검토해야” 대통령실은 박 시장의 건의 내용을 국민권익위원회에 보냈다. 권익위는 주무부처인 국방부에 전달했다. 대통령실은 “부산시장이 건의한 사안은 현재 국방부에서 회신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에서 당장 결론을 내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실과 국방부의 입장을 보면 그렇다.

주간경향은 대통령실에 BTS의 병역특례와 관련한 입장을 물었다. 대통령실이 지난 9월 14일 답변한 내용이다. “대중문화예술인을 예술·체육요원 편입 대상자로 포함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는 법령 문제보다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정책적 결정이 선행돼야 할 사안이다. 국방부, 병무청 등 소관 부처가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국회와 함께 신중히 검토해야 할 사안으로 판단된다.”

우선 사회적 공감대, 합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눈에 띄는 대목은 “국회와 함께 신중히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는 부분이다. 정부가 먼저 나서서 시행령 및 훈령을 개정하는 등 자체적으로 결단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란 취지로 풀이된다.

국방부도 주간경향의 질문에 비슷한 답변을 내놓았다. “국회에 병역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는 만큼 국회와 함께 신중히 검토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도 지난 9월 15일 보도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BTS와 같은 대중문화예술인의 예술·체육요원 편입과 관련한 병역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으므로 논의 과정을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31일 부산 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지원 전략회의 및 민간위원회 출범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31일 부산 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지원 전략회의 및 민간위원회 출범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국회에는 BTS 등 대중문화예술인도 병역특례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의 병역법 개정안 3건이 지난해부터 계류돼 있다. 지난해 11월 국방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가 진행됐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올 상반기에도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국방부는 그간 BTS의 병역특례를 두고 “신중해야 한다”라며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나아가 병역특례 제도를 단계적으로 축소·폐지하는 것을 장기 과제로 삼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발 벗고 나서진 않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이 장관도 “병역의무 이행의 공정성 측면에서 병역특례 확대는 곤란하며 BTS 또한 병역의무를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국방부의 기본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못박았다.

아울러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낮은 상황에서 20~30대 청년들의 반감이 높은 정책을 앞장서 추진했다간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여론을 의식한다면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당 의원실 관계자의 말이다. “대통령이 강한 의지로 BTS의 병역특례를 지시하면 관련 부처가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로 인해 국정 지지도가 떨어진다면 누가 책임질 것이고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장관이 욕 먹을 각오로 하라” 정부가 공을 국회로 넘긴 모양새이나, 국회 일각에선 정부에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8월 29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BTS의 병역특례를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방부와 병무청에 화살을 돌렸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 같은 분들이 욕 먹을 각오로 과감하게 하세요. 왜 미루시나. 시행령(개정)으로도 할 수 있다. 굉장히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병무청장이 시행령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그것을 국회로 떠넘긴 것이다. 국가적 이익을 판단 안 하고.” 성 의원은 이 발언 이후에도 “시행령으로도 할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하반기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들이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국방위 소속 여야 간사들은 BTS의 병역특례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다른 위원들도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고 한다. 국방위 내에서 논의 자체가 활발히 진행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국방위 한 관계자는 “의원들은 어떤 결정을 하든 욕을 먹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해당 문제를 미루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입영 3년 더 연장? 대안으로 우수한 대중문화예술인의 입대 연기 기한을 현행 만 30세에서 33세로 늘리는 방안이 제시됐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인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8월 31일 이런 내용이 담긴 병역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방부는 이 또한 난색을 표했다. 국방부는 주간경향 질의에 “병역의무 이행의 공정성 및 다른 병역의무자와의 형평성 측면에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이 방안의 실현 가능성이 적은 또 다른 이유는 BTS가 앞서 한차례 입영을 연기할 수 있는 특혜를 받은 바 있기 때문이다. 2020년 12월 병역법과 2021년 6월 시행령 개정을 통해 대중문화예술분야의 우수자는 만 30세까지 입영을 연기할 수 있게 했다. ‘우수자’의 기준은 문화훈장이나 문화포장을 받은 사람이다.

BTS 멤버 7명은 2018년 10월 최연소로 화관문화훈장(5등급)을 수여받았다. 당시는 데뷔 6년차였다. 보통 문화훈장은 해당 분야에서 15년 이상 활동해야 자격이 된다. 행정안전부의 ‘정부포상 업무지침’에도 “훈장은 15년 이상 해당 분야에서 공적을 쌓은 자에게 수여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경력 15년이면, 보통의 대중문화예술인은 이미 병역 문제가 해소될 나이에 이른다. BTS가 훈장을 받은 것도 예외적이었고, 이들의 입영 기간을 연장한 것도 예외적인 조치였다. 체육분야 우수자는 현재 만 27세까지만 연기가 가능하다.

음반 제작·배급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단체인 한국음악콘텐츠협회의 최광호 사무총장은 다른 순수예술인이 병역특례를 받는 만큼 BTS 등 대중문화예술인도 병역특례의 예외가 돼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최 사무총장은 지난 9월 13일 통화에서 “국위선양의 기여 정도를 따지면 BTS가 다른 예술인보다 떨어지지 않는다. BTS가 병역특례를 못 받으면 대체복무제도 자체를 형평성 있게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군대에 가든 안 가든, 공정하고 합리적인 선에서 조속히 결정이 이뤄졌으면 한다”고도 했다.

최 사무총장은 입대 기한을 만 33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두고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다만 순수예술인은 병역특례 혜택을 받는 반면 대중문화예술인은 기한 연장만 적용받는 것은 “여전히 차별적”이라고 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