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영광 어디로…쪼그라든 내 고향 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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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기준 전국 113개 시군구가 소멸위험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파악됐다(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일자리사업평가센터장·2022). 228개 시군구 중 절반이 소멸위기에 처했다는 얘기다.

지난 8월 30일 전북 군산 구도심인 영동거리. 인적이 드문 가운데 점포 곳곳에 임대·매매 광고가 붙었다. / 이효상 기자

지난 8월 30일 전북 군산 구도심인 영동거리. 인적이 드문 가운데 점포 곳곳에 임대·매매 광고가 붙었다. / 이효상 기자

20여년 전 떠나온 기자의 고향도 예외는 아니다. 인구 30만명을 바라보던 중소 산업도시 전북 군산은 2015년 이래 인구가 지속 감소해 지난 7월 기준 26만3700명까지 내려앉았다. 20~39세 인구는 감소세가 지속되는 반면, 65세 이상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 도시의 평균 연령은 2015년 40.7세에서 2021년 44.5세로 증가했다.

가족들과 고향을 찾는 추석 명절은 지방소멸의 현실을 느끼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해가 다르게 메말라가는 고향 풍경 그 자체가 한국 지방소멸의 심각성을 대변한다. 각자의 고향은 지금 얼마나 빠르게 소멸해가고 있을까. 각 지역의 특징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지방’을 꿰뚫는 공통점이 있다. 지방 인구를 빨아들이는 비대한 수도권은 지역의 ‘저출생·고령화’를 한층 심화시키고 있다. 산업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다시 지방의 인력을 유출하는 원인이 된다.

지난 8월 29일부터 3일간 고향 군산을 찾았다. 군산에서 서울로 주소를 옮긴 지 약 20년 만에 고향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학창시절 자주 다니던 도심 거리에는 운영 중인 점포보다 빈 점포가 더 많았고, 산업단지 원룸촌에는 두 집에 한 집꼴로 임대·매매 광고가 붙어 있었다. 사흘 내내 내린 비 때문인지 도시는 더 어둡고 무거워 보였다.

과거의 영광 어디로…쪼그라든 내 고향 군산

군산에 찾아온 위기 “학교 다닐 때만 해도 군산이 인구 30만명은 금방 넘어설 줄 알았다.”(30대 구직자)

“1990년대만 해도 버스 한대 팔면 서울에 집을 한채 샀다. 지금은 어림도 없다.”(60대 시내버스업체 관계자)

“1980년대만 해도 군산에 한전 전북지사가 있었고, 전주에는 지점이 있었다. 공장이 많아서 수요도 많았으니까.”(60대 한전 퇴직자)

“1900년대 초반부터 군산은 시였다. 그때 전국에서 두 손에 꼽을 만큼 빨리 시가 됐다.”(50대 자영업자)

얼마나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군산은 과거의 영광을 곱씹는 도시가 됐다. 대공장이 떠나고 인구는 매년 감소하는 도시의 회한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일자리 상황이 좋고 시내에 돈이 돌던 산업도시였다. 그러던 군산은 올해 처음으로 ‘소멸위험지역’에 이름을 올렸다. 이상호 고용정보원 일자리사업평가센터장은 2016년부터 한국의 지방소멸위험 정도를 측정하고 있는데, 올해 3월 기준 군산의 소멸위험지수는 0.494로 소멸위험지역에 포함됐다. 20~39세 여성 인구가 65세 이상 인구의 절반 미만이라는 얘기로, 공동체가 인구학적으로 쇠퇴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군산 경제를 지탱했던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2018년 5월 공식 폐쇄됐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군산 경제를 지탱했던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2018년 5월 공식 폐쇄됐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군산의 위기는 복합적이다. 대부분의 지방이 겪는 ‘저출생·고령화’가 한축이라면, 핵심 산업의 유출이 또 다른 축이다. 인구가 왜 감소했는지를 군산 사람 10명에게 물으면, 10명 모두 같은 답을 내놓는다. 한국지엠과 현대중공업의 폐쇄다. 2017년 조선업 경기 악화에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폐쇄했고, 이듬해는 군산 경제를 떠받치던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문을 닫았다. 한때는 군산 수출의 64.4%(한국무역협회 수출입 통계·2012년)를 차지하던 조선산업과 자동차산업의 핵심 기업들이 문을 닫으면서 군산에 사는 사람 모두가 그 여진을 체감했다.

먼저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가 줄었다. 2015년 하반기 3만100명이었던 군산의 광업·제조업 취업자 수는 2020년 하반기 2만100명까지 줄었다. 5년 사이 제조업 종사자 3명 중 1명이 일자리를 잃은 셈이다. 단순히 기업 2곳이 문을 닫은 것이 아니라 이들 원청사를 중심으로 군산 산업단지에 함께 자리를 잡았던 협력업체도 떠났기에 타격이 더 컸다.

군산 경제의 심장인 산단의 비극은 군산 시내 곳곳으로 퍼졌다. 산단으로부터 15㎞ 떨어진 군산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서 애견호텔을 운영하던 A씨의 사업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다. “공장에 다니면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외로워서 그런지는 몰라도 개를 많이 키웠다. 출근 전에 맡기고 퇴근 후에 찾아가고 했다. 다들 돈을 잘 썼다. 어떤 사람은 1년에 개를 두 번 찾아오면서 쭉 맡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 공장이 문을 닫았다. 손님 중에 한명은 개를 데려가면서 거제도로 간다고 했다.” 손님의 감소, 치열해진 경쟁 등으로 인해 그는 2018년 가게 문을 닫았다. 군산의 도소매·음식숙박업 취업자는 2015년 하반기 2만5900명에서 올해 상반기 2만2900명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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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단 정상궤도 올라서고 있다는데…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문을 닫고 4년, 군산 경제는 얼마나 회복됐을까. 산단이 있는 군산 오식도동으로 향했다. 오식도동 초입의 편의점에서 만난 중년 남성 2명이 군산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힌트를 줬다. 이들은 외지에서 온 기계장비 철거업체 관계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공장 장비 철거하려고 왔다. 전국을 돌면서 철거하는데 군산도 공장 철거 수요가 많은 곳 중 하나다. 일이 이래서 그런지 한국 제조업이 쇠퇴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군산만 그런 게 아니고 주물·주조 쪽은 중국에 치여서 거의 끝장났다고 봐야 한다. 오늘 일하는 곳도 공장을 아예 뜯는 곳은 아닌데 기계 철거하고 중국산 장비를 놓는다.”

지난 8월 30일 찾은 산단 옆 원룸촌은 오전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적막만이 감돌았다. 오식도동 원룸촌은 산단으로 일하러 온 외지 노동자들의 숙소 역할을 했다. 특히 외지인을 많이 고용했던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폐쇄한 이후 이들 원룸 대다수는 빠르게 빈집이 됐다. 한때 공실률이 70~80%까지 치솟았다. 여전히 원룸촌은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원룸촌 안쪽 골목은 보도블록을 비집고 나온 잡초가 무릎까지 올라와 바짓단을 뒤챘다.

이 지역에서 원룸을 운영 중인 B씨는 “비어 있다는 이유로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해외에서 입국한 사람들을 여기 원룸에서 2주간 격리하기도 했다”며 “5억원은 가던 원룸 매매가가 반토막이 났다. 하도 사람이 없으니까 너도나도 출혈경쟁을 벌이면서 30만~40만원은 하던 월세가 20만원대까지 내려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전보다는 상황이 낫다”고 했다. 현재 B씨의 건물에는 11개의 방이 있는데 이중 8개를 세줬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입국이 끊겼던 이주노동자들이 돌아왔고, 정상 가동되는 공장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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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기업의 잇따른 폐쇄로 공실이 크게 늘었던 산단도 점차 정상궤도에 올라서는 모양새다. 오식도에서 공장 부지 전문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김정운씨는 “현대중공업 철수하고 심할 때는 한 번에 (공장 부지) 20건이 경매로 나올 정도였다. 못 버티고 무너지는 업체들이 많았는데 체감으로 봤을 때 산업단지 공실률이 한 30%는 됐다”며 “그때에 비하면 공장들이 많이 들어왔다. 이제 완전히 바닥을 찍고 서서히 회복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의 국가산업단지 산업동향 통계를 보면, 군산 1·2산단의 입주기업 수는 2018년 12월 기준으로 각각 197개, 528개에서 올해 6월 기준으로 214개, 575개로 늘었다.

다만 이 흐름을 군산의 시민들은 아직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들이 질적으로 과거 대공장의 일자리를 대체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한국지엠 군산공장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2018년 해고된 이정렬씨는 현재 아파트 주택관리회사에서 일한다. 해고 이후로만 세 번째 직장이다. 이씨는 “공장들이 들어와도 채용 인원이 예전 같지 않다. 제일 걸리는 것은 임금 문제다. 중소기업들이 대부분이라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 됐다”며 “군산이 인구 30만명 도시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대기업이 들어온다고 해도 한국지엠이나 현대중공업처럼 기업이 어려우면 제일 먼저 철수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산단 인근 소룡동의 노무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C씨는 “일자리는 있지만 사람이 없다. 일이 힘들어 내국인은 피하고 대체로 외국인만 일한다. 돈 많이 벌려면 60시간 이상씩 일해야 하는데 버티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실제 올해 상반기 군산의 광업·제조업 취업자 수는 2만1300명으로 2020년의 저점에서 크게 회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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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유출에 활력 잃은 도시 사람들은 끊임없이 떠나고 있다. 한국지엠 비정규직 해고자 장현철씨는 “비정규직 불법파견 인정을 위해 128명의 동료와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80명 정도만 군산에 남아 있고 나머지 분들은 군산을 벗어나 있다”며 “마땅한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것”이라고 했다.

군산시청 인근에서 운영하던 카페를 폐업한 D씨(37)는 이달 중순이면 취업을 위해 충남 소도시로 떠난다. 한때 그의 카페는 아르바이트생을 8명까지 썼지만 폐업 전 1년은 직원 없이 홀로 일했다. 그는 일주일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전 10시부터 밤 11시까지 카페를 지켰다. 군산의 경제 악화, 코로나19의 여파 등이 영향을 미쳤다. 젊은 노동인구의 감소세는 명확하다. 군산의 20~39세 인구는 2015년 7만3204명에서 지난해 6만3329명으로 1만명 감소했다. 같은 기간 65세 이상 인구는 3만9874명에서 5만1459명으로 1만명 이상 늘었다.

지난 2월 24일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에서 열린 군산조선소 재가동 협약식에 참석한 문재인 전 대통령(왼쪽에서 네 번째)이 협약식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청와대 사진기자단

지난 2월 24일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에서 열린 군산조선소 재가동 협약식에 참석한 문재인 전 대통령(왼쪽에서 네 번째)이 협약식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청와대 사진기자단

그만큼 도시는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군산의 구도심인 영동부터 구 역전 종합시장까지 이어지는 중앙로에는 빈 점포가 적잖이 늘어서 있었다. 학창시절 옷가게가 빼곡했던 영동의 골목은 운영 중인 옷가게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지난 8월 30일 오후 이모씨(54)는 영동에 있는 간판이 없는 가게에서 넷플릭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가게 쇼윈도에 걸린 여성용 무스탕 3벌이 이곳이 과거 옷가게였음을 말해줬다. 이씨는 “보세(상표 없는 옷) 옷가게를 했는데 지금은 접고 개인 사무실로 쓰고 있다”며 “젊은 사람이 아예 없다. 돈벌이가 안 돼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이씨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60만원으로 내놓은 맞은편 점포를 가리키며 “저러면 10년 동안 안 나간다”고 했다. 옷가게를 고쳐 공방으로 사용하는 또 다른 점주는 “사람이 하도 안 와 조용하니까 공방하기 딱 좋다. 싸기도 하고”라고 말했다.

인구가 줄어드는 도시는 지난 20~30년간 수차례 도심을 바꿨다. 구도심에서 나운동으로, 나운동에서 수송동으로, 최근에는 조촌동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추세라고 한다. 수도권의 부동산 대출 규제 영향으로 외지인들이 땅을 사고 있다고도 했다. 지난 7월 군산의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2021년 6월의 매매가격을 100으로 봤을 때 113.2로 지속 상승 중이다.

젊은층의 이탈은 저출생 현상을 심화시킨다. 영유아 보육시설부터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전명자씨(65)는 군산 삼학동에서 30년 넘게 어린이집을 운영 중이다. 삼학동은 도농복합도시인 군산의 도시지역 중 소멸위험지수가 0.19로 가장 높은 지역이다. 전씨는 “새로 짓는 아파트로 젊은 인구들이 떠나면서 노인들만, 기존 원주민만 남았다. 어린이집이 정원 99명으로 늘 대기자가 있었는데 작년에 70명대 되고, 올해는 60명대 됐다”며 “원아가 줄면서 재작년만 해도 군산 내에 238개 있던 어린이집이 올해 158개로 줄었다. 아이 울음소리가 나야 도시가 시끌벅적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초등학교 수는 큰 변화없이 유지되고 있지만 학생 수는 급감하고 있다. 전체 58개 초등학교 중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 수가 150명이 되지 않는 학교가 32개로 절반을 넘는다.

지난 8월 31일 군산의 구도심인 영화동 거리. 한 노인이 수선가게 앞에서 발 길을 멈췄다. / 이효상 기자

지난 8월 31일 군산의 구도심인 영화동 거리. 한 노인이 수선가게 앞에서 발 길을 멈췄다. / 이효상 기자

희망과 우려의 공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재가동이나 전기차를 생산하는 군산형 일자리에 기대를 거는 이들도 있었다. 조선업 수주 호황이 이어지면서 현대중공업은 내년부터 군산조선소의 문을 다시 열기로 했다. 2019년 군산 노·사·민·정이 상생협약을 체결한 군산형 일자리는 지난해 참여 기업들의 생산 공장을 준공하고 가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우려도 크다. 재가동되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는 연간 10만t 규모의 선박용 블록을 건조할 계획이다. 과거보다 생산 규모가 크게 줄었고, 완성된 배를 건조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블록을 만들어 옮겨야 해 물류비도 따로 발생한다. 이 비용 일부는 군산시가 부담하기로 했다. 군산형 일자리 역시 생산이 지연되거나, 참여 기업이 검찰 수사를 받는 등의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

온승조 군산상공회의소 부장은 “대규모로 인력을 채용했던 제조업이 붕괴한 후에 상생일자리나 현대중공업 재가동 등으로 회복하려고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어떤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인구 유출 현상은 미미하게나마 계속되고 있다”며 “새만금 경제자유구역에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유치하고 있지만, 장치 산업이다 보니 일자리 창출 효과는 크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이훤 군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집행위원장도 “현대중공업을 다시 오픈하면서 기회가 생길지 모르겠지만 기존 산업의 공백을 타개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군산|이효상 기자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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