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자 되고 나서야…추석에 고향 가는 선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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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스포빌 선원들, 포괄임금제 계약에 장시간 노동…노조 만들자 부당해고 당해

“해고되고 나니 10년 만에 추석 때 고향에 갈 수 있게 됐네요.”

씨스포빌에서 일하다 해고된 박성모 선장이 지난 7월 17일 강릉항여객터미널에 정박해 있는 씨스타 5호 앞에서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해운지부 깃발을 들고 있다. / 해운지부 제공

씨스포빌에서 일하다 해고된 박성모 선장이 지난 7월 17일 강릉항여객터미널에 정박해 있는 씨스타 5호 앞에서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해운지부 깃발을 들고 있다. / 해운지부 제공

박진우 항해사는 2012년 강릉항에서 울릉도, 독도를 오가는 선박회사인 씨스포빌에 입사했다. 대학 졸업 뒤 원양어선, 외항선 등을 타다가 결혼을 하면서 내항 여객선으로 일자리를 옮긴 것이다. 지난해 10월 해고된 박 항해사는 이번 추석 연휴 때 10년 만에 고향인 전주에 갈 수 있게 됐다. 선원생활을 할 땐 추석이 평소보다 더 바쁜 시기여서 고향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박 항해사는 “이번 여름엔 아홉 살 아이와 처음으로 함께 해수욕장도 갔다. 억울하긴 한데 해고되고 나니 오히려 사람다운 삶, 저녁이 있는 삶을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0년 씨스포빌에 입사한 박성모 선장도 이번 추석 땐 울릉도가 아닌 고향(삼척시 장호리)에서 길게 머물 수 있게 됐다. 해고된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도 찾아뵐 예정이다. 그의 어머니는 76세지만 여전히 물질을 하는 ‘현역 해녀’다. “추석 때 편하게 고향 가는 건 12년 만에 처음이다. 예전에는 운항을 마치고 밤에 퇴근한 뒤 바로 갔다가 가족들 얼굴만 보고 되돌아온 경우가 많았다.”

해고자 신분이 돼서야 추석 연휴 때 고향에 제대로 갈 수 있게 된 이 선원들에겐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노조 설립 뒤 이어진 부당해고 2011년부터 해상운송여객업을 시작한 씨스포빌은 씨스타 5호, 씨스타 11호 등 여객선 2척으로 ‘강릉항-울릉도(저동)-독도’ 항로를 운행하는 회사다. 박정학 씨스포빌 대표이사는 같은해 9월 정도산업도 설립했다. 정도산업은 2014년부터 씨스타 1호와 씨스타 3호 등 여객선 2척으로 ‘동해 묵호항-울릉(사동 및 도동)-독도’ 항로를 운행 중이다. 씨스포빌·정도산업이 보유하고 있는 선박들은 400t 안팎의 여객선으로, 최대 수용 여객은 430~500명이다. 두 회사는 별개 법인이지만 사실상 하나의 회사로 운영됐다. 선원들도 소속 법인을 바꿔가며 선박 간 이동 근무를 해왔다.

2018년부터 서울~강릉 구간을 운행하는 KTX가 생기면서 선박 이용객들이 늘어났다. 두 회사의 연간 운송실적은 2018년 42만명, 2019년 45만명에 달했다. 하지만 2020년 초부터 확산된 코로나19가 선박 운항에 영향을 미쳤다. 씨스포빌은 여객선 2척을 정상 운영했지만 정도산업의 여객선 2척은 2020년 8월부터 휴업에 들어갔다. 씨스타 1호는 선박 점검(부품 수입 어려움), 씨스타 3호는 코로나19가 휴업 사유였다. 이에 따라 지난해 5월 기준 두 회사에서 선원으로 일하는 노동자는 14명으로 급감했다. 씨스타 1호는 올해부터 운항을 재개했고, 씨스타 3호는 선령 노후화로 선박 등록이 말소됐다.

씨스포빌·정도산업 노사관계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은 두 회사 선원들이 지난해 5월 노동조합(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해운지부)을 설립하면서부터다. 박성모 선장을 포함해 남아 있던 노동자 14명 전원이 노조에 가입했다. 대체인력 없이 잘 쉬지도 못하면서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고, 코로나19로 운항이 줄면서 임금이 10~20% 삭감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노조 설립 뒤 회사는 조합원을 상대로 각종 징계를 쏟아냈다. 코로나19로 운항을 하지 않아 임금이 삭감된 정도산업으로 지난해 7~8월 전적 처분을 하거나 시간외근로수당을 부풀린 뒤 회사를 임금체불로 고소했다는 등의 이유로 해고 처분까지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해운지부장인 박성모 선장을 비롯해 조합원 5명을 해고했고, 지난 8월 17일 조합원 6명을 추가로 해고했다. 조합원이었던 선원 11명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 지난해 내려진 전적·해고 처분은 동해선원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모두 부당하다는 판정이 나왔다. 회사는 중노위 판정을 수용하지 않고 사건을 법원까지 끌고 갔다. 강인석 기관장은 “근로기준법과 달리 선원법에는 사용자가 노동위 구제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제재를 가하는 이행강제금 제도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선원법은 사용자가 부당해고를 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 박성모 선장은 “선원근로감독관에게 이 조항을 이야기했더니 ‘현재 진행 중인 행정소송이 마무리돼야 조치할 수 있다’며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씨스포빌에서 일하다 해고된 박성모 선장이 재직 당시 씨스타 11호 선교에서 급하게 동료 선원들과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 해운지부 제공

씨스포빌에서 일하다 해고된 박성모 선장이 재직 당시 씨스타 11호 선교에서 급하게 동료 선원들과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 해운지부 제공

포괄임금제 근로계약 씨스포빌·정도산업은 매년 선원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한다. 임금은 크게 기본급, 시간외근로수당, 식대 등 3가지로 구성돼 있다. 근로계약서를 보면 시간외근로수당 액수가 미리 정해져 있다. 실제 노동시간을 따지지 않고 매월 일정액의 시간외근로수당을 지급하는 포괄임금제 계약이다. 포괄임금제는 장시간 노동을 고착화시키는 관행으로 지목돼왔다.

선원법은 근기법과 달리 사용자가 포괄임금제를 도입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두고 있다. 선원법 제62조 제2항이 그것이다. “선박소유자는 제1항에도 불구하고 단체협약, 취업규칙 또는 선원근로계약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선종(船種), 선박의 크기, 항해 구역에 따른 근로의 정도·실적 등을 고려하여 일정액을 시간외근로수당으로 지급하는 제도를 마련할 수 있다.”

이 규정이 있다 해서 선원들에게 적용하는 모든 포괄임금제가 유효하다고 볼 순 없다. 전영우 한국해양대 교수는 2014년 발표한 논문 ‘선원법상 시간외근로수당 산정을 위한 월(月)의 소정근로시간에 관한 연구’에서 “만약 실제로 발생한 시간외근로시간에 비해 일정액을 시간외근로수당으로 지급하는 제도상의 시간외근로수당이 현저하게 적다면 이는 유효한 것으로 인정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내항 여객선의 경우 출퇴근 시간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포괄임금제를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쟁점은 근로계약 시 미리 정해진 포괄임금액이 실제 시간외근로수당보다 낮은지 여부다.

현재 선원들은 포괄임금액이 실제 시간외근로수당에 비해 낮다며 회사를 상대로 미지급 임금 청구소송을 진행 중이다. 회사는 지난 8월 9일 법원에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포괄임금제는 유효하다. 오히려 실제 시간외근로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회사가 시간외근로시간으로 인정해주고 있다”며 맞서고 있다.

“주 7일 근무도 다반사” 선원들이 장시간 노동에 따른 피로를 호소하는 이유는 선원들의 독특한 노동조건 때문이다. 선원들은 3월부터 11월 중순까지 8개월 반가량의 운항기 동안 울릉도, 독도로 가는 여객선을 운항한다. 나머지 3개월 반(11월 중순 이후부터 2월까지)은 휴업기이기 때문에 여객선 운항을 하지 않는다. 12월부터 2월까지는 울릉도에 폭설이 내리는 경우가 많고 기상 문제로 독도 경유가 어렵기 때문이다.

장시간 노동 문제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기간은 운항기 때다. 운항기 중에는 일반적으로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주 7일간 선박운행이 이뤄지며, 공휴일에도 운항을 중단하지 않는다. 승객 수요에 따라 독도에 가지 않고 울릉도까지만 갔다 오는 날은 노동시간이 3시간 30분가량 줄어든다.

박성모 선장은 독도까지 가는 날을 기준으로 하루 노동시간을 이렇게 설명했다. “강릉항에서 출발하는 선박을 기준으로 하면 오전 8시가 출항이다. 승객들이 대략 1시간 전부터 선박에 타기 시작하니 오전 7시 이전에 출근해 준비해야 한다. 울릉도, 독도를 거쳐 강릉항에 돌아오면 저녁 8시가 넘는다. 정박하고 뒷정리하고 퇴근하면 거의 밤 10시다. 선장, 기관장, 항해사, 기관사 등 5~6명이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정말 앉아서 쉴 여유가 없다. 오죽하면 식사를 선교에서 돗자리 펴놓고 급하게 하겠나.”

풍랑주의보가 발효되거나 선박 정비 기간에는 운항기라도 여객운송이 중단되기도 한다. 선원들은 운항하지 않는 날도 유급휴가를 쓰지 않는 한 출근한 뒤 선박 관리나 서류 업무 등을 한다.

씨스타 5호 시간외근로기록 서류를 보면 지난해 5월 이원경 기관사는 17일 하루만 유급휴가를 사용했고 나머지는 운항하거나 정박 중 작업에 참여했다. 6월과 7월에도 각각 이틀만 유급휴가를 사용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근무했다. 이건선 기관장은 지난해 5월엔 하루도 유급휴가를 사용하지 않았고 6월에는 2일, 7월에는 4일만 유급휴가를 사용했다. 박성모 선장은 “풍랑주의보가 발효돼 유급휴가를 쓰지 않는 이상 주7일 근무를 하는 경우가 잦다”고 말했다.

선원 노동시간은 원칙적으로 주 40시간이다. 시간외근로에 대한 동의 및 당직근로에 대한 시간외근로명령이 있는 경우 최장 72시간까지 가능하다. 선원들은 운항기 때 회사가 선원법상 노동시간 규제를 위반했는지 여부도 살펴보고 있다.

입항부터 출항까지 12시간이 걸려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할 뿐 아니라 예비인원이 적어 휴일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선원들의 미지급 임금 청구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오라클 장재원 변호사는 “운항기 중에는 대체인력이 없기 때문에 휴무를 할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씨스포빌·정도산업과 달리 예비인원이 충분히 있어 휴무가 확보되는 선사도 있다.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오가는 선박에서 근무하는 한 선원은 “씨스포빌·정도산업의 선박과 같은 크기의 여객선에서 근무하고 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운항 시 7명이 승선한다. 예비인원까지 합치면 총인원이 9명이기 때문에 한 달에 적어도 7번은 쉴 수 있다”고 말했다.

씨스포빌에서 일하다 해고된 박성모 선장이 재직 당시 씨스타 11호 추진기에 있는 이물질을 제거하고 있다. / 해운지부 제공

씨스포빌에서 일하다 해고된 박성모 선장이 재직 당시 씨스타 11호 추진기에 있는 이물질을 제거하고 있다. / 해운지부 제공

대체인력 부재로 겪은 고통 대체인력이 없어 연속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선원들은 말 못 할 사연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위암을 초기에 발견한 박성모 선장은 2018년 3월 30일 간단한 위암 관련 내시경 시술을 받고 사흘간 입원했다. 시술을 받기까진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시 시술을 받기로 한 날도 원래 운항이 있었던 날이었다. 다행히도 풍랑주의보가 연속적으로 발효됐기 때문에 쉴 수 있었다.”

박성모 선장은 지난해 7월 말 위암 정기검진을 받을 땐 회사와 갈등을 겪었다. “휴가를 쓰려고 했는데 회사는 대체인력이 없다고 했다. 지난해 5월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검진 때 묵호(정도산업)에 있는 직원이 와서 대타를 해줬다. 그런데 노조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돌변해 검진을 연기하면 안 되겠냐고 하더라. 몇차례 예약을 미룬 거라 더 미룰 수 없다고 하니 씨스포빌에서 휴업 중인 정도산업으로 발령을 내버렸다.”

본인 일이야 견딜 수 있었지만 아내가 2019년 5월 큰 수술을 받을 때 함께하지 못한 건 두고두고 박성모 선장에게 상처로 남았다. 급기야 사표를 냈다. “아내가 신장이식 수술을 받는데 보호자인 내가 곁에 있어야 하지 않나. 하지만 회사는 사람이 없다고 휴가를 안 줬다. 결국 아내가 혼자 수술실에 들어갔다 나와야 했다. 그때 이건 진짜 사람 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 사표를 냈다.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회사에선 사람을 더 뽑아주겠다면서 사표를 반려했다.”

박진우 항해사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건설현장에서 소장으로 일하는 그의 아버지는 2016년쯤 굴착기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그는 사고 당일뿐 아니라 아버지가 5일간 입원해 있는 기간에도 병원을 찾지 못했다. 대체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진우 항해사는 “자식이 나 하나뿐인데 병문안도 갈 수 없는 심정이 어떻겠냐. 지난해 노조 설립 뒤 사장과 선원들 간 면담 때 내가 이렇게 물어봤다. ‘우리 아버지 돌아가시면 저는 배 타고 울릉도를 가야 하나요, 장례식장에 가야 하나요.’ 그랬더니 사장도 고개를 숙이더라.”

아들의 사정을 잘 아는 박진우 항해사 어머니는 아예 수술 사실을 나중에 알리기도 했다. “어머니가 외삼촌에게 신장이식 수술을 해주셨다. 큰 수술이지 않나. 어머니가 아예 나에게 얘기도 안 하셨다. 이식이 끝나고 나서야 어머니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아버지를 통해 전해들었다.”

친인척이나 지인들 경조사에 다니기도 쉽지 않다. 강인석 기관장은 “친척·친구들 경조사에 거의 못 갔다. 선장·기관장은 특히 자리 비우는 게 쉽지 않으니 혹시라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그만두겠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회사에 다녔다”고 말했다.

해고된 선원들은 매일 오전 6시부터 강릉항과 동해 묵호항 앞에서 해고의 부당함을 알리는 선전전을 하고 있다. 지난 9월 1일부터 나흘간은 울릉도에서 선전전을 벌였다. 1년 가까이 바다가 아니라 뭍에서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선원들의 꿈은 무엇일까. 박성모 선장의 말이다. “다시 배를 몰고 조합원들과 다 같이 울릉도로 가서 복직 기념사진을 찍고 싶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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