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약무효’ 저출생·인구 유출, 근본적 해법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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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기점 청년층 수도권 유입급증·지방소멸 가속화

올해 초 겨울휴가 때 아들과 선산이 있는 전남 고흥군 대서면을 방문했다. 기자가 태어난 곳은 대도시지만 고흥은 선친의 고향이기도 하고, 아직도 많은 친인척이 거주하는 집성촌이다. 명절 연휴가 아닌 평일 대낮에 방문한 시골. 마을 길엔 고즈넉하다는 표현조차 민망할 정도로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아예 안 사는 것은 아니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을 뿐. 이제 80세를 넘긴 큰어머니는 방안에서 누운 채 조카 부자를 맞이했다. 농사일은커녕 화장실을 가기 힘겨울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다고 했다. 그나마 오가는 사람은 군청에서 나와 가가호호 돌아다니며 노인들의 안부를 묻는 사회복지사가 유일하다. 마을에 젊은이는 물론이고 장년층도 없었다. 마을 전체가 거대한 노인병동인 셈이다.

지난해 전남 영광군 합계출산율은 1.87을 기록해 3년 연속 1위를 달성했다. / 영광군 제공

지난해 전남 영광군 합계출산율은 1.87을 기록해 3년 연속 1위를 달성했다. / 영광군 제공

현재의 인구감소 추세라면 2040년 일본 지자체의 절반인 896개가 소멸한다는 내용을 담은 일명 ‘마스다 보고서’가 나온 게 2014년이다. 보고서에서 사용한 기법(20세에서 39세의 가임기 여성을 65세 이상으로 나눈 값)을 적용해 한국의 ‘지방소멸위험지수’(0.5 미만이면 위험지역)를 밝힌 연구가 나온 것은 2년 뒤.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지방소멸은 이제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똑바로 직시하기 어려운’ 터부 같은 것이 돼버렸다. 마스다 보고서로부터 치면 8년, 위험지수 개발로부터 6년이다. 그동안 한국의 사정은 어떻게 됐을까.

지방소멸의 핵심동인은 저출생과 젊은층의 유출이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젊은층은 지방을 떠나 수도권과 같은 대도시로 유입되는데, 지방소멸 초기 단계에서는 역설적으로 대도시권으로 인구가 몰리는 일극집중현상이 나타난다. 젊은층이 대도시에 몰렸다고 대도시 저출생 문제가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높은 주거비용 등으로 1인 가구가 늘어날 뿐이다.

지방소멸 보고서 그 후 6년

8월 2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출생통계를 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81명. 출생통계 작성을 시작한 1970년 이래 최저치다. 출생아 수는 시도단위로 보면 광주광역시(8.7%)와 세종특별시(2.9%)를 제외한 모든 시도에서 감소했고, 합계출산율 역시 광주와 대전을 제외한 15개 시도 모두 전년 대비 감소하는 결과를 보였다. 통계청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경북 의성군의 경우 지방소멸 위험지수 자료에서는 전남 고흥군, 경북 청송군 등과 함께 지방소멸위험도에서 항상 선두를 달리는 곳으로 지목됐다. 그런데 통계청의 2021년 합계출산율 자료에서 의성군은 합계출산율 1.38을 기록해 출산율이 높은 상위 10개 시군구 리스트에서 8위에 올랐다. 지난해 순위는 더 높았다. 합계출산율 1.76으로 전남 영광군(2.54), 전남 해남군(1.89)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지방소멸 위험지자체라는 불명예를 떨치기 위한 자치단체 노력의 결실일까.

통계청의 이 데이터에서 영광군은 지난해에 비해 합계출산율은 감소(1.87)했지만, 여전히 1위를 기록했다. 뉴스를 찾아보면 ‘전남 영광군이 3년 동안 합계출산율 1위를 한 비결’과 같은 기사가 넘친다. 조직 개편을 통한 인구일자리정책실 신설(2019년), 출산용품 구입비, 신생아 지원비, 난임부부 시술비 본임부담금 지원 등 출산장려정책 등과 함께 양육비(첫째 500만원, 둘째 1200만원, 셋째 3000만원 지원) 등을 꼽는다. 정말 영광군의 상황은 개선되고 있을까. 인근 광주광역시의 상대적으로 높은 집값 부담 때문에 젊은 부부들의 전략적 선택이 만들어낸 일종의 착시는 아닐까. “…차로 광주 광산구까지 30분 정도 걸리긴 한다. 영광에 거주하면서 광주로 출퇴근하는 젊은 부부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아무래도 주택 사정이 광주 서구나 그런 쪽보다는 영광이 더 좋으니까.” 8월 30일 통화한 김성균 영광군 인구일자리정책실장의 말이다.

합계출산율 3년 연속 1위 영광의 속사정

광주에서 영광의 신축아파트단지까지 통근버스가 운영되는 경우가 많은데 교통체증이 없으니 그런 목적으로 거주하는 사례가 없지 않다고 했다. 합계출산율로 3년째 전국 1위 지자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지만, 지방소멸 위험은 영광군을 비껴가지 않는다. “합계출산율은 둘째를 낳는 여성도 포함하는데 아무래도 애를 낳을 수 있는 젊은 여성이 와야 한다. 인구는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김 팀장에 따르면 영광의 합계출산율이 대폭 올라간 것은 지원금 수준을 대폭 인상하면서부터. 예컨대 둘째를 낳으면 500만원 지원하던 것을 1200만원으로 올린 시점과 합계출산율이 2를 넘긴 시점이 일치한다. 고민은 출산장려금을 지급하지만, 그 가족이 영광에 남지 않는 경우가 꽤 된다는 것. 아이가 어릴 때 지원을 받고 초등학교 진학할 무렵이면 인근 광주광역시 등으로 이사하는 사례가 상당수에 이른다. 김 팀장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둘째를 낳으면 1200만원을 월별로 36개월을 지원한다. 쪼개면 매달 40만~50만원 선이다. 재원은 한정적인데 자녀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지원금을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

“최근에는 영광이었지만 과거에는 전남 해남이 항상 1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정성호 강원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이다. 지난해 순위에서 해남은 2위를 기록했다. “해남도 똑같은 딜레마를 겪었다. 애 한명 낳으면 얼마 식으로, 엄청나게 인센티브를 줬다. 그렇다고 해남의 절대인구가 늘었냐면 절대로 늘지 않았다. 아이가 일정한 나이가 되면 교육목적이 됐든, 뭐가 됐든 빠져나간다. 500만원, 1000만원 출산장려금만 받고 빠져나간다.” 정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정치권과 지자체들도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치인들은 영광이 출생율이 높은 게 보조금을 많이 줘 높다고 받아들인다. 전 정권 총리도 ‘다 해남같이 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돈을 많이 주면 해결된다? 천만의 말씀이다. 정치가나 자치단체장은 항상 경쟁을 원한다. 순위에 따라 차등지원하고 싶어한다. 나라 전체로 보면 제로섬이다. 나는 초기부터 돈으로 직접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렇다면 어떤 해법이? 정 교수는 “저출생·지방소멸과 관련한 한 우리나라는 대안이나 대책이 없다”고 단언했다. “저출생 문제는 우리나라 사회경제적 문제를 다 포괄한다. 해결책이 없다. 점차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대안이 뭐냐. ‘살 만한 나라, 애를 경쟁으로 내몰지 않는 나라, 교육제도 혁신’이 답이다. 다른 데서 찾으려니까 돈만 쓴다. 지방소멸도 마찬가지다. 서울집중이 더욱 심해진다. 젊은이들이 점점 더 서울로 올라가지 않는가.”

‘백약무효’ 저출생·인구 유출, 근본적 해법 없나

수도권 인구이동 데이터를 살펴보면 특이한 대목이 있다. 2000년대 들어 수도권 인구유입은 완만한 감소세를 보이다가 2016년 이후 증가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중 20대의 움직임이다. 20대의 수도권 유입추이를 보면 2015년에 바닥을 찍었다가 이후 매해 급증하고 있다. 성별 추이도 특이한데 2015년 20대 남성의 경우 유입과 유출이 거의 동률을 이뤄 바닥에 수렴하는 반면, 여성의 수도권 유입은 남성보다 살짝 높은 정도였다. 그러다 매해 격차를 벌리며 압도적으로 20대 여성의 수도권 유입이 늘어나고 있다(그래프 참조). 2015년 전후가 수도권 인구 유입에 ‘터닝포인트’가 된 것은 여러 지표에서 확인된다.

2015년 청년층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전문가들이 내놓는 대체적인 ‘가설’에 따르면 이 시점을 전후로 한국의 산업구조 변동에 따른 일자리 변화가 일어났다. “제조업이 로컬서비스 영역 서너개를 창출한다는 ‘취업유발계수’는 이미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이야기다. 반대로 제조업 영역에서 괜찮은 일자리가 하나 없어질 때 부수적인 서비스 일자리는 더 많이 사라진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일자리가 수도권에 더 많이 만들어지는데 일자리 양극화 현상과 연동된다. 데이터를 보면 경향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사회서비스 일자리와 저임금 숙련 일자리가 한축이라면 다른 한축은 디지털 인재를 필요로 하는 양질의 일자리다. 양쪽 모두 남성노동력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고용정보원 이상호 연구위원의 말이다. 대도시 서비스 영역의 저숙련 일자리나 사회서비스 직종, 고학력 인력 모두 여성이 더 많이 진출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종합해서 말하자면 지역 청년 남성은 그나마 줄어드는 제조업 일자리라도 비빌 언덕이 있는데 여성은 그나마 힘들어지게 됐다. 한편 지방에서 서비스 영역에는 더더욱 괜찮은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그런 기회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수도권으로 가는 것이다. 살던 지방에 비해 수도권에 기회의 격차가 더 많다고 느끼니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유출되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마스다 보고서의 방법을 원용해 지역소멸위험지수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지방소멸이나 인구절벽을 주제로 한 대부분의 연구나 보고서는 이 연구위원이 만들어낸 데이터를 원용하고 있다. 지수를 발표한 지 6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개선되긴커녕 악화일로다. 지난 3월 그가 새로 계산해 내놓은 최신데이터에 따르면 소멸위험지역(지수가 0.5 미만)은 113개로 전국 228개 시군구의 절반(49.6%)에 달했다. 2005년 33곳에 불과했던 소멸위험지역이 10년 후인 2015년 80곳이 됐고, 2020년엔 처음으로 세 자릿수를 돌파해 102곳이 됐다. 그리고 불과 2년이 지난 2022년에 9개가 더 늘어 과반에 달했다. 불과 지난 2년 사이 소멸위험지수는 급증했다. 소멸위험지수가 0.2 미만인 소멸 고위험지역은 올해 3월에 45개로 집계됐는데 2년 전인 2020년 대비 23곳이나 급증했다.

“이제 회복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연구위원은 이미 지방소멸 경향을 뒤집을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구나 재정, 경제성장률 모두 예측을 통해 추계를 낸다. 인구변동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출산력과 지역 간 이동인데 국가 수준에서 중요한 데이터는 출생율이다. 2019년 장래인구추계를 냈을 때 기준치가 0.94를 적용해 만든 전망이다. 고용정보원 일자리 전망도 다른 데이터가 아니라 0.94를 기준으로 냈다. 지금은 변곡점을 지나 그 아래로 감소하는데 아무도 그런 모형을 쓴 적이 없으니 다른 전망치도 모두 틀릴 수밖에 없다. 의아한 점은 정책적으로 위기의식이 숫자로 반영된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지방소멸 문제는 정말 백약이 무효일까.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청년층의 수도권 집중 추세에 대해 “개인들 각자에게 어떤 인생을 살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직장을 갖고 싶다는 목표를 밝히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라면서도 “청년 문제가 심각한 것처럼 정년 후 노후가 불안한 현재의 장년이 겪게 될 노인빈곤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보수·진보를 떠나 정치권이 전체 세대를 아울러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안정을 줄 수 있는 비전 제시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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