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경제 활성화, 대기업 유치만이 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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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자치단체의 정책기조 시대적 전환과 맞지 않아… ‘기후일자리’ 고민해야 할 때

“울산 면적의 25%를 차지하는 그린벨트를 해제해 기업을 유치하고 신도시를 건설해 인구와 자금 역외 유출을 막아내고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내겠습니다.”(김두겸 울산광역시장), “대기업 중심의 60조원 투자유치와 청년세대를 위한 천억 창업펀드 조성으로 ‘충북경제 도약의 새시대’를 열겠습니다”(김영환 충북도지사), “탈원전으로 침체된 지역경제에 차세대 원전기술의 날개를 달아 경북을 대한민국에서 기업하기 가장 좋은 곳, 혁신하기 가장 좋은 곳으로 만들겠습니다.”(이철우 경북도지사), “세일즈도지사가 되어 기업을 설득하고 매력적인 프로젝트로 기업을 유도하고 규제혁신으로 장애물을 극복하는 ‘3박자 대기업 유치전략’을 펼칠 것입니다.”(김관영 전북도지사)

8월 29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 옆 야적장에 완성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17개 광역자치단체 인수위 보고서는 대기업 유치를 주요 경제정책으로 내세웠다. / 연합뉴스

8월 29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 옆 야적장에 완성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17개 광역자치단체 인수위 보고서는 대기업 유치를 주요 경제정책으로 내세웠다. / 연합뉴스

지난 6월 1일 당선된 민선 8기 광역지방자치단체장들은 한목소리로 대기업을 유치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의 인구유출을 막겠다고 나섰다. 기후위기 대응의 관점에서 17개 시도광역지방자치단체의 인수위 보고서를 분석한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대개의 지자체에서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관련 기업을 유치하겠다고 한다. 그 밖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공항건설을 비롯해 대형 테마파크 유치까지 다들 비슷한 내용의 정책을 담고 있다”라고 말했다. 경기도는 경기국제공항 건설을, 충청남도는 서산공항 건설을, 경상북도는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방소멸에 대한 위기감이 비수도권 지역에 널리 퍼져 있는 상황에서 광역지자체들은 인구유출을 막기 위해 정부의 국책사업과 대기업 유치만 바라보고 있다.

광역지자체 대기업 유치 한목소리 대규모 국책사업과 대기업 유치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전략은 지금까지 많은 광역자치단체에서 추진해왔던 경제성장 기조다. 하지만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이 새로운 산업·통상 정책으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과거와 동일한 광역자치단체의 정책기조는 시대적 전환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녹색전환연구소는 인수위 보고서를 최근까지 분석한 결과, 기존의 경제모델을 넘어서는 전환 경제에 대한 모색이 필요한 시점임에도 대개의 광역자치단체의 정책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인프라, 건물, 수송, 순환경제 등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특히 대구광역시의 경우 인수위 보고서에 ‘기후위기’라는 용어가 한번도 나오지 않았으며 K2 군공항 및 민간공항 이전, 에어시티(공항도시) 건설, UAM, 반도체, 로봇, 헬스케어, ABB산업 육성, 200만평 규모 첨단산업단지 건설, 반도체 클러스터 및 미래 모빌리티 선도단지 조성, 대구 스카이라인 재창조를 위한 미래형 도시 계획 수립, 24시간 잠들지 않는 두바이 방식 개발 등 막대한 토목건설과 공항건설에만 집중해 전환 경제에 대한 고민이 가장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석탄화력발전소, 내연기관 자동차, 정유 사업 등 좌초위기 산업들에 대한 전환 대책이 시급한 울산·인천 등은 정의로운 전환을 통한 새로운 산업 생태계 조성이 중요함에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과 구체적인 이행 계획이 없었다. 이유진 부소장은 “각 지역이 모두가 기업을 유치하겠다고 사활을 걸고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가능성이 낮은 일에 지자체의 중요한 자원과 인력을 투입하는 게 맞는 것일까”라며 “기존의 산업들을 냉정하게 평가해보고 대기업 유치에만 의존해 일자리를 만들어내던 방식에서 벗어나 에너지전환, 건물 에너지 효율화, 재난 취약계층에 대한 돌봄 등 지역에서 필요하고 만들어질 수 있는 일자리가 어떤 것인지, 전환 경제를 모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대기업 유치를 통한 일자리 확보에 급급하기보다 지역의 자립도를 높이면서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일자리를 고민할 때라는 지적이다.

녹색전환연구소는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공동의제 10가지를 선정하고, 17개 지자체 시민들과 함께 각 지역에 맞는 정책의제를 숙의했다. 그 결과 도출한 의제를 광역지자체에 전달해 이를 정책에 반영해달라고 요구했다. 녹색전환연구소가 제안한 공동의제 중 ‘전환 경제’ 항목에는 ‘기후일자리’도 포함돼 있다. 기후일자리는 녹색일자리(Green job)로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에너지 사용량과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생태계 시스템을 보호·복원하기 위한 폐기물 및 오염 물질 최소화, 기후 적응과 회복 탄력성을 높이기 위한 활동과 관련된 일자리를 의미한다. 광역지자체 인수위 보고서에는 기후일자리에 대한 정책이 전무한 곳도 있었지만, 관심을 갖고 관련 정책을 제시한 지자체도 있었다. 전라남도는 바이오플라스틱 사업을 제시했고 경기도는 스타트업, 탄소중립, 미래산업 등에 1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충청북도는 선순환 여성특화 취·창업 생태계 조성, 충북형 재생모델 구축 및 추진 등을 내놓았다.

특히 광주광역시의 경우 자원순환, 에너지전환사업 등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한 공익적 가치 활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시민참여수당’을 지급한다는 계획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황철호 광주광역시 정책보좌관은 “기후일자리가 바이오산업, 미래모빌리티 산업 등 산업군에서 나오는 일자리도 있지만,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결과로 나타나는 사회의 전반적인 전환을 둘러싼 일자리 창출을 볼 필요가 있다”라며 “기후나 환경, 돌봄 등에 시민들이 활동하면 참여수당을 지급한다. 자원순환해설사, 분리수거, 환경 관련 강의 및 컨설팅 등 기후일자리에 대한 참여수당을 1만개 이상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또 앞으로 더 많이 필요한 ‘돌봄’ 또한 참여수당을 받는 기후일자리가 될 수 있다. 황 정책보좌관은 “광주는 폭염, 열대야 정도가 전국에서 가장 높고 온열질환자 비중도 높은 편이다. 기후위기와 그에 따른 재난에 취약한 계층을 찾아 발굴하고 이들을 지원하고 이러한 활동을 일자리로 묶어내는 것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측량하고 기후위기에 취약한 지역과 계층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는 이밖에 2만5000여명의 농민인구에 대한 농민수당 도입과 가사수당 도입도 추진 중이다.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2월 광주광역시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광주 녹색전환 10대정책 발굴’ 100인 원탁 토론이 진행됐다. / 이민철 제공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2월 광주광역시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광주 녹색전환 10대정책 발굴’ 100인 원탁 토론이 진행됐다. / 이민철 제공

광주의 ‘기후일자리’ 실험 광주광역시는 2009년 기후변화대응조례를 제정하고 2014년 국제기후환경센터를 설립하는 등 광역지자체 중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정책을 선도적으로 논의해왔다. 2010년부터 저탄소녹색아파트 사업을 추진해 주민들의 자발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이끌어내고 그 결과 연간 평균 1106t의 온실가스를 절감했다. 현재 10개 동인 에너지전환마을도 매년 5개 동씩 늘려갈 계획이다. 이번 민선 8기는 그동안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 흐름을 이어가면서 ‘기후일자리’ 정책에 좀더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광주 시민사회는 ‘참여수당’ 도입 등 기후일자리 정책에 대해서는 환영하지만, 기간이나 수당 규모가 말 그대로 ‘일자리’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민철 광주지역문제해결플랫폼 집행위원장은 “기후일자리 참여수당이 일시적인 기간의 적은 액수가 아니라 ‘일자리’라고 할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며 “시에서 어떻게 책정할지를 지켜볼 예정”이라고 했다. ‘집수리 사업단’, ‘햇빛발전탐사대’ 등 추가적인 기후일자리에 대한 검토와 고민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집수리 사업단은 기후일자리 중에 비교적 규모가 클 것이라고 예상한다. 공공건물부터 민간건물까지 그린리모델링이 필요한 상황에서 대형건물을 제외한 작은 건물, 주택들의 그린리모델링을 통해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을 거다. 태양광발전은 관련해서 유지·보수 기술을 갖고 있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그 밖에 에너지스마트그리드 효율화 산업, 비건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기후미식도시’ 기획 등도 기후일자리의 한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의 일자리 위기와 기후위기 문제에 국가가 답을 내려주기를 기대하기보다 시민들이 직접 이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들을 지역공동체에서 모색해봐야 한다는 취지다.

광주광역시는 다른 광역자치단체에 비해 ‘기후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창출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지만 광주 또한 미래 모빌리티 특화산단, 반도체 특화단지 조성 추진, AI 집적단지 등 대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이주하는 인구 유출 규모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반면 물류나 인력수급에 불리해 대기업 유치에서는 중부지역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2019년 광주는 대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기존 완성차업체 임금의 절반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고 대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복리·후생 비용 지원을 통해 보전한다는 광주형 일자리를 도입했지만, 지원이 미흡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또 광주형일자리인 GGM 공장은 내연기관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어 전기차로의 전환 정책 또한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 유치는 즉각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이긴 하지만, 기후위기가 더 이상 환경의 문제만이 아닌 산업·통상의 문제, 경제·일자리의 문제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대안적 일자리의 모색 또한 필요하다. 지난해 12월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지방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지역 일자리 사례와 모델>은 지방의 일자리 위기는 ‘대량생산-대량소비’ 선순환 관계가 깨지면서 발생했다고 분석하며 수십년간의 지역균형발전과 지역 일자리 정책을 넘어서는 새로운 지향점과 대안적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광주광역시의 참여수당 실험은 기후일자리가 대안적 일자리로서 확장해나가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여기에는 광역지자체만의 노력 외에도 탄소중립에 대한 정부의 의지 또한 중요하다. 황철호 정책보좌관은 “광주에서 준비하고 있는 기후일자리 사업은 지자체에서 할 수 있는 규모이지만, 그 외에 대규모의 인프라가 필요한 에너지전환 등의 사업은 지자체만의 재정으로는 어려움도 있고 한계도 있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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