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랑기부제, 지방재정 숨통 틔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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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 시행… 기부자, 세액공제와 답례품 받아

고향사랑기부제가 내년 1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개인이 주소를 둔 지자체 이외의 ‘고향’에 기부하면 세액공제와 함께 지역 특산품으로 답례품을 받는 제도다. 지방재정을 보완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국가 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기대를 받는다. 이 제도의 원형은 일본에서 2008년 시작된 ‘고향세’라 고향사랑기부제를 줄여서 고향세라고도 부른다.

지난 8월 25일 전남 나주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 연구소 시험 재배지에서 연구원들이 국산 배 품종 ‘슈퍼골드’를 수확하고 있다. / 농촌진흥청 제공

지난 8월 25일 전남 나주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 연구소 시험 재배지에서 연구원들이 국산 배 품종 ‘슈퍼골드’를 수확하고 있다. / 농촌진흥청 제공

고향세의 근거 법률인 ‘고향사랑 기부금에 관한 법률’은 지난해 9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금은 시행령을 만드는 중이다. 법안에 따르면 고향세 기부 주체는 개인으로 한정된다. 지자체가 법인에 기부를 부당하게 강요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감안했다. 고향세는 개인이 거주하는 광역 또는 기초 지자체를 제외한 전국 모든 지자체에 기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 종로구에 거주한다면, 서울시와 종로구에는 기부할 수 없다.

지방재정 확충 기대받는 ‘고향세’ 기부금 상한액은 1인당 연간 500만원이다. 10만원까지 전액 세액공제를 받고, 10만원을 초과한 액수에 대해서는 16.5%를 공제받는다. 10만원을 기부하면 최대 3만원의 답례품과 함께 연말정산 때 10만원의 세액공제를 받게 된다. 100만원을 기부하면 최대 30만원의 답례품과 함께 기본 공제 10만원에 남은 90만원의 16.5%인 14만8500원을 더한 24만8500원의 새액공제를 받는다.

지자체는 기부금의 30% 이내(최대 100만원 이내)에서 답례품을 제공할 수 있다. 지자체는 고향사랑기부금의 효율적인 관리·운용을 위해 기금을 설치해야 한다. 기금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주민의 복리 증진 등의 목적으로만 사용하고, 이를 검증할 수 있도록 기금심의위원회의 결산을 거친다. 기부를 강요하거나 모금방법을 위반할 경우 처벌하는 조항도 있다.

고향세법 시행을 앞두고, 지자체는 전담조직을 만들어 준비하고 있다. 각 지자체가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부분은 답례품이다. 답례품에 따라 지역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고향세를 먼저 시행했던 일본의 성공사례를 참고해 국내 특성에 맞는 방안을 고민할 시점이 됐다. 지난 8월 31일 사회적기업 공감만세가 주최한 월례 공정관광포럼의 주제는 '고향세'였다.

줌으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 발제를 맡은 무나가타 신 트러스트뱅크 홍보부 부장은 고향세의 가치를 납세자 민주주의와 지자체 간 매력 경쟁 활성화에서 찾았다. 트러스트뱅크는 일본 최대 고향세 플랫폼인 ‘후루사토 초이스’의 운영사로, 어떤 지자체가 어떤 답례품을 생산하는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한다. 정부가 1차로 올해 연말까지 구축할 계획인 ‘고향사랑기부금 종합정보시스템’과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셈이다. 이날 무나가타 부장은 “고향세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국민이 세금의 사용처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고, 이 점에서 민주주의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한국의 고향세에서도 기대한다”면서 “각 지자체가 국민에게 매력을 전달함으로써 제도 활성화와 지자체 간 건전한 경쟁을 유도하며 지역이 존재 방식을 새롭게 고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고향세 참여율은 15~17%이다. 올해 기준 전체 납세자 5000만명 중 740만명이 제도에 참여해 아직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주민 공제액은 올해 5672억엔(약 5조5110억원)에 달한다. 일본의 고향세 기부금은 2008년 도입 후 줄곧 성장세를 이어가다 2019년 일시 하락했다. 답례품 경쟁이 심화하면서 총무성에서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은 해외 생산품이나 기부액을 넘어선 고액 답례품을 막으면서 고향세 기부가 잠시 줄었다. 무나가타 부장은 “답례품이 너무 큰 인기를 끌다 보니 고향세를 기부하면 답례품을 받는 제도로 인식되면서 그 이면에 고향세가 드러내고자 하는 가치가 잘 전달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면서 “한번 자리잡힌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소개한 일본의 성공사례가 흥미롭다. 특히 기부금을 육아지원에 사용해 인구 증가를 이뤄낸 홋카이도 가미시호로의 사례가 눈길을 끌었다. 일본은 고령화로 고령인구에 혜택을 주는 제도가 많이 마련됐고, 선거에서도 이런 지원책을 내건 후보들이 당선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인구 5000명을 조금 넘는 작은 마을, 가미시호로는 육아지원에 기부금을 사용하겠다고 선언하고, 실제 육아를 지원하는 환경정비를 이뤄내 총인구가 증가한 성과를 냈다. 무나가타 부장은 “기부자를 마을로 초대해 이주체험을 제공하고, 마을을 잘 알 수 있게 지원한 결과 실제 이주까지 이어졌다”면서 “많은 지자체가 순인구 감소 상태라 이곳처럼 인구가 순수하게 증가하는 사례는 굉장히 귀하고, 중요한 사례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 특색 담은 답례품 고민하는 지자체 그는 고향세가 지역의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 생산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다고 강조했다. “기부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자신이 걷는 길을 인정받고 동기를 부여받을 수 있다. 지역에서 생산을 그만두려고 했던 분도 고향세 참가를 계기로 사업을 이어가는 사례가 많다.” 이어 가고시마현 시부시시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고구마 생산을 고집한 농부가 지역에선 배척받았지만, 도쿄에서 열린 답례품 홍보회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 전국적인 인기를 얻게 된 사례도 소개했다.

지역 고등학생들이 답례품 개발에 참여하는 사례도 있다. 지역의 학생들이 고향세의 취지를 알고 참여함으로써 애향심을 높이고, 성장해 지역을 떠나도 다시 고향에 돌아오거나 돌아오지 않아도 지역을 위한 지원군이 될 수 있다. 지역 사람이 고향을 알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해야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켜 공동체성도 강화된다.

발제에 나선 조인선 양구군 관광문화과 팀장은 고향세 성공에서 관계인구의 중요성을 말했다. 양구 인구는 이 지역에 주둔했던 2사단의 해체로 군인 가족이 대거 이주하면서 2만명 선이 무너지기 직전이다. 이런 상황에서 귀촌귀농으로 정주인구를 늘리는 전략보다는 지역을 자주 찾고, 지역 생산품을 소비하는 관계인구를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조 팀장은 고향사랑기부금제 답례품은 관계인구와의 애착 형성을 목표로, 지역 특색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접경지인 양구의 특성을 고려할 경우, 군훈련소 입영자의 가족과 친구를 위한 체험·관광 상품을 만들 수 있다. 지역의 파지 사과를 활용한 자연발효식초 같은 상품도 인기 답례품이 될 수 있다.

이날 포럼에는 울주, 부안, 상주, 군산, 경주 등 여러 지역의 담당 공무원도 많이 참여했다. 지역에서는 인기 답례품을 내놓는 지역으로 기부금이 몰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크다. 무나가타 부장은 스토리텔링이 차이를 낳는다고 강조했다. “보통 좋은 특산품이 있으면 그쪽으로 기부금이 많이 모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그 상품이 남이 볼 땐 보잘것없어 보여도 어떻게 스토리텔링을 하고 전달하는지에 따라 기부금 모집에서 차이가 났다. 지자체 담당자의 노력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로 인해 생긴 기부금의 차이는 누구도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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