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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패권의 부정적 외부효과 막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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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5일 한국은행은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4회 연속 인상했다.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은 무엇보다 물가상승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지만 미국의 기준금리가 지속적으로 인상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상승한 것도 주요 배경이 됐다. 지난 8월 26일 잭슨홀 회의에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금리 인상을 지속하겠다고 공언하자 8월 29일에는 원·달러 환율이 13년 4개월 만에 최고치인 1350원을 돌파했다. 원·달러 환율상승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전반적인 물가상승 압력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한국 역시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와 같은 상황을 “한국 통화정책은 정부로부터 독립했지만 연준 통화정책으로부터는 완전히 독립하지 못했다”고 표현했다.

지난 8월 2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19.1원 오른 1,350.4원에 거래를 마쳤다. / 이준헌 기자

지난 8월 2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19.1원 오른 1,350.4원에 거래를 마쳤다. / 이준헌 기자

미국 통화정책의 비대칭인 영향력

세계화된 경제체제에서 모든 국가의 통화정책은 타국 정책에 영향을 주기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국가별 통화정책의 자율성과 영향력은 대칭적이지 않다. 미국 달러가 국제기축통화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연준의 통화정책은 가장 높은 자율성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국제기축통화인 미국 달러의 국제적 수요가 심각하게 줄어들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연준은 달러의 대외적인 신뢰성 훼손을 상대적으로 덜 고려하면서 국내경제적 상황에 초점을 맞춰 통화정책을 실시할 수 있다. 또 연준의 통화정책은 국제거래에 필수적인 미국 달러의 상대적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세계경제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국가는 연준의 통화정책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비대칭적인 자율성과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통화정책은 국제통화체제에 부정적 외부효과를 만들어낸다. 지금처럼 연준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 다른 국가들은 자본유출로 인한 통화가치 하락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는 수입물가 상승이나 대외부채가 높은 국가에서는 금융위기를 야기하기도 한다. 이와는 반대로 경제회복을 위해 연준이 금리 인하를 단행하면 다른 국가들은 자본유입과 통화가치 상승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거품경제를 형성하고 수출경쟁력을 약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처럼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연준의 통화정책으로부터 독립적이기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다. 거의 모든 국가가 미국경제에 초점을 두고 이뤄지는 연준의 정책이 자국 경제에 미칠 영향력을 고려하면서 통화정책을 결정해야만 하는 이유다.

현재 파월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한 금리 인상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을 계속 밝히고 있다. 물론 인플레이션이 단기적으로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영국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했던 찰스 굿하트가 지적한 것처럼 “코로나19 팬데믹은 지난 30~40년 동안의 디플레이션 압력과 향후 20년 동안의 인플레이션 시대를 가르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현재 미중 패권경쟁으로 인해 소위 ‘차이메리카(Chimerica)’라고 표현되던 미국과 중국의 상호의존성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이후 중국이 세계경제의 공장 역할을 하면서 공급 측면에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큰 기여를 해왔기 때문에 미중 디커플링(decoupling)이 점차로 심화해 세계경제의 분열이 구조화되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런 통화전략이 필요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밝힌 것처럼 미국의 금리 인상이 지속되는 한 한국 역시 금리 인상을 멈출 수 없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가계부채가 역대 최고 수준인 1900조원에 육박하고 있고,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시장의 거품도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금리 인상은 한국경제의 금융적 취약성을 크게 악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외부효과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선 자본유출입에 대한 통제는 한국의 통화정책이 보다 자율적으로 운용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줄 것이다. 예를 들어 한미 금리 격차로 자본유출이 발생했을 때, 자본통제를 하면 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환율상승을 저지할 수 있다. 2012년 국제통화기금은 특정한 상황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환율 및 금융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정당한 수단으로 ‘자본이동관리’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공표했고, 지난 3월에는 이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활용범위를 보다 확대했다. 이러한 방향성에서 자본이동관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한국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자본이동관리가 대외적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전략이라면 금융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보험전략도 필요하다. 현재 가장 효과적인 보험전략은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다. 미국 통화정책의 부정적 외부효과는 다른 국가들의 불안정성을 야기한다. 이와 같은 불안정성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 역시 미국이다. 현재 자본유출로 인한 환율상승이 지속되고 있지만, 한국경제의 외환 유동성이나 대외 신용도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지속되면 대외부채가 높은 국가들을 중심으로 금융위기가 야기될 수 있고, 이는 국제금융시장 전체의 혼란과 체제적 위기로 번질 수도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 경험했던 것처럼 국제금융시장의 체제적 불안정성이 발생하면 외환보유고만으로는 금융시장을 안정시킬 수 없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한미통화스와프를 상시화하기 위한 노력 역시 지속해야 한다.

더 나아가 글로벌 중추국가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에 걸맞게 한국정부는 국제제도를 통해 관리되는 국제통화체제를 형성하기 위한 다자주의 외교에도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 우선 미국 통화정책의 비대칭적인 영향력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각 국가의 통화정책이 상호 충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통화정책의 국제적 조정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 세계화된 경제체제에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국내정치적으로는 독립적일 수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독립적일 수가 없다. 이로 인해 구성의 오류로 인한 체제적 위험성이나 경쟁적인 근린궁핍화정책(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 경제를 희생시키는 정책)의 확산 등이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협력적인 통화정책이 실행될 수 있도록 통화정책의 국제적 조정을 보다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실질적인 국제적 최종대부자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연준의 통화스와프가 가지고 있는 자의성을 극복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의 역할을 새롭게 재확립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 이행조건을 대폭 완화해 과도한 정책개입과 낙인효과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정재환 울산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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