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 설계' 이남우 "복무기간 등 완화 여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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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우 전 국방부 인사복지실장

이남우 전 국방부 인사복지실장. 박민규 선임기자

이남우 전 국방부 인사복지실장. 박민규 선임기자

헌법재판소는 2018년 6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당시 병역법 조항을 두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2019년 말까지 병역법을 개정해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고 했다. 이에 정부는 2018년 8월 ‘관계부처 실무추진단’을 구성해 대체복무제도 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그해 12월 ‘36개월, 합숙, 교정시설’ 형태의 대체복무안을 발표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시민사회단체는 “처벌을 위한 복무”라며 정부 안을 비판했다. 현역병보다 2배 긴 기간은 징벌적이고, 교정시설로 분야를 국한해 공익적인 영역에서의 역할도 제한된다고 했다. 국회는 논의를 거쳐 2019년 12월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2020년 10월부터 대체복무 요원의 첫 입소가 이뤄졌다. 논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남우 당시 국방부 인사복지실장(55)은 실무추진단장을 맡아 제도 설계를 주도했다. 이 전 실장은 지난 8월 24일 주간경향과 인터뷰에서 “헌재의 결정 취지처럼 양심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병역을 이행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되,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한다는 원칙에 따라 현행 대체복무제도가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민적 논란이 큰 사안이었기 때문에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다”라며 “소수자인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인권을 보장하면서 여론에 너무 어긋나지 않는 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이 전 실장은 “대체복무가 시행되면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란 우려가 있었지만, 시행 2년이 경과한 현재까지 통계를 보면 이런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라며 “앞으로 복무기간과 분야, 형태 등을 어느 정도 완화할 여지는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병역법에서 대체복무를 병역 이행의 한 종류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이들을 더 이상 병역기피자로 보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실장은 1992년 공직생활을 시작해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안보실에서 행정관을 지냈다. 국방부 보건복지관,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 기획지원부장, 기획관리관 등을 역임했다. 민간 공무원으로는 최초로 2017년 11월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을 맡았다. 당시 병사의 휴대전화 사용 허용과 복무기간 단축 및 봉급 인상, 산업기능요원 등 대체복무 요원 감축 등 굵직한 주요 정책들도 추진했다. 2020년 8월부터 국가보훈처 차장(차관급)으로 일하다 지난 7월 퇴임했다.

-현행 대체복무제도를 평가한다면.

“오랜 기간 국제사회에서 반복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온 사안이란 점에서, 대체복무제도 도입은 인권 분야에서 진일보한 조치로 의미가 크다. 다만 복무기간이 다소 길고 분야가 교정시설로 한정돼 한계가 있다는 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안보 환경의 특수성과 병역 이행의 형평성을 둘러싼 민감도를 고려하면, 초기에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제도 정착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인권 의식이나 안보 환경 등이 나아진다면 제도가 보완될 여지는 있다고 본다.”

2018년 11월 30일 대구구치소에서 출소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마중 나온 가족과 포옹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날 양심적 병역거부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들 중 57명을 가석방했다. 연합뉴스

2018년 11월 30일 대구구치소에서 출소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마중 나온 가족과 포옹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날 양심적 병역거부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들 중 57명을 가석방했다. 연합뉴스

-대체복무제도 설계 당시 중점을 둔 고려 요소는.

“헌재 결정의 취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양심의 자유를 지키면서도 병역을 이행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라’였다. 우선 이런 취지를 살려야 했다. 두 번째로는 대체복무가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 돼야 한다. 세 번째는 국제사회의 여러 기준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논의에 임했다.”

-‘36개월, 합숙, 교정시설’ 방안은 논의 초기부터 유력하게 거론된 건가.

“아니다. 특정안을 염두에 두고 추진하지 않았다. 관계부처 실무추진단을 발족하면서 동시에 당시 학계 및 인권단체, 인권위 등으로 자문위원회도 꾸렸다. 추진단과 자문위의 논의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중점 고려 요소를 충족시키는 안이 구체화됐다.”

-36개월이 징벌적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당시 27개월도 고려한 것으로 안다. 유엔 인권이사회 등 국제기구에서도 현역의 1.5배 이상이면 징벌적이라고 본다.

“복무의 기간과 분야는 복무 난이도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현역의 2배인 36개월, 1.5배인 27개월’ 이렇게 놓고 결정한 건 아니다. 산업기능요원이나 공중보건의사 등 다른 대체복무 요원들의 복무기간이 34~36개월이다. 여기에 맞춰 양심적 병역거부의 대체복무도 36개월이 적정하다고 봤다. 국제기구의 권고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있을 순 있다. 그러나 한국 병역제도 전반의 복무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국제기준에 크게 어긋나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현역병의 복무기간과 단순 비교할 문제는 아니다.”

-복무 분야에 소방서, 국공립병원, 사회복지시설 등을 포함하지 않았다. 그리고 복무 형태를 합숙으로 결정한 이유는.

“교정시설과 합숙 형태는 대체복무가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핵심 요소였다. 국공립병원이나 사회복지 시설은 전국에 산재해 있고, 한 기관에 대규모 인원이 필요치 않다. 당연히 합숙시설을 제공하거나 복무관리를 하기가 어렵다고 판단, 논의 초기에 배제했다. 소방서의 의무소방원으로 배치하는 방안도 논의가 됐다. 그러나 기존 의무소방원과 동일한 근무 형태인데 복무기간이 달라야 하는 논거를 제시하기 어려웠고, 기존 의무소방원 선발 경쟁률도 상당히 높은 상황에서 특혜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 제외했다.”

-대체역 심사위원회를 병무청이 아닌 국무총리실이나 법무부 등 제3의 기관에 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대체복무도 병역의무의 이행이기 때문에 국방부나 병무청 산하에 둬야 한다는 입장, 심사의 독립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해 총리실 등에 둬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뉘었다. 병무청에서 심사하면 예단을 갖고 너무 엄격한 심사가 이뤄질 것이란 우려도 있었다. 최종적으로 병무청에 두더라도 심사의 독립성과 공정성은 위원회 구성을 통해 확보가 가능하다고 봤다.”

2018년 6월 28일 당시 이진성 헌법재판소장(뒷줄 가운데)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한 선고를 위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8년 6월 28일 당시 이진성 헌법재판소장(뒷줄 가운데)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한 선고를 위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당시 자문위원회는 현행 대체복무 방안에 반대하지 않았나.

“자문위 내부 논의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합의된 안이 정부 안에 반영됐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자문위는 대체복무에 찬반 입장을 가진 이들로 균형 있게 꾸렸다. 자문위에서 토론을 통해 제도의 큰 방향을 제시하면, 정부 추진단에서 구체적인 안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또 정부의 안에 보완이 필요한 점은 없는지 자문위 검토를 거쳤다. 정부 추진단과 자문위는 대체복무제도를 만드는 쌍두마차였다 해도 무방하다. 자문위가 정부의 최종안에 100% 공감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현실적으로 이 정도면 차선은 되지 않겠나 하는 공감대는 형성됐다고 본다. 당시 정부안은 어느 한쪽에게 박수를 받는 안을 만들기보다는 어느 한쪽으로부터도 완강히 배척받지 않는 안을 만드는 데 주안점을 뒀다.”

-헌재 결정 이후 정부의 제도 마련을 위한 시간이 촉박했던 것 같다.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다른 안이 나왔을 수도 있나.

“시간이 더 많았다면 더 좋은 안이 나왔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안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지금도 여론조사를 하면 대체복무에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한다. 방안에 어떤 내용을 담을까보다 여론 설득이나 국민 의식 변화에 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제도 설계 당시 여론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국민적 논란이 큰 사안이었다.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했다기보다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문제였다. 어느 정책이든 여론의 지지 없이는 제대로 추진하기 어렵다. 다만 소수자 인권에 관한 문제라는 특수성 때문에 단순히 찬반 의견 가운데 많은 쪽을 선택할 수는 없는 사안이었다. 여론을 넘어 정부가 앞장서야 할 부분도 있는 것이다. 고심이 많았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인권을 보장하면서 여론의 저항이 크지 않은 안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제도 시행을 앞두고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대체복무제도 시행 이전까지는 약 500명 안팎이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해 재판을 받았다. 제도가 시행되면 발생할 수 있는 두가지 ‘극단적인 사태’를 걱정했다. 대체복무 신청자들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것, 반대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복무기간 등의 문제로 아예 신청하지 않는 것이다. 두가지 우려 모두 발생하지 않았다. 다행이라 생각한다.”

-현역병은 자녀가 출생하면 상근예비역으로 편입되지만 대체복무자는 이런 배려가 없다.

“충분히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배려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제도 시행 전에 우려했던 병역기피 수단으로의 악용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그간 제도를 병역기피 방지 쪽에 중점을 두고 제도를 운용했다면, 앞으로 대체복무자들의 여건 등 어려움을 풀어주는 데 조금 더 신경 써도 되지 않을까 싶다.”

-향후 대체복무제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이제 공직자가 아니라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향후 나아갈 방향을 언급하기는 매우 조심스럽다. 이 답변은 전적으로 사견임을 전제한다. 제도 초기에 병역기피 수단으로 이용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복무 강도나 기간을 다소 엄격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수준까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향후 다소 완화할 여지는 있다고 생각한다. 대체복무 제도는 국가적 필요가 아니라 일부 소수자의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그런 점에서 그 보완의 폭이 그렇게 클 수는 없을 것이다. 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나 안보 상황의 호전처럼 상황 개선이 앞장서고 제도 보완이 뒤따라 갈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겠다.”

-여전히 일부에선 대체복무자를 병역기피자로 바라보는 것 같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우리 사회의 오랜 숙제였다. 병역기피자들이 우리의 안보 역량을 약화시키는 존재라는 시각부터 종교 등 양심을 사유로 옥살이를 해야 하는 부당한 피해자라는 시각까지 첨예한 입장 차이가 있었다. 법적으로는 이제 이런 논란이 정리됐다. 대체복무자를 더 이상 병역기피자로 봐서는 안 된다. 병역법에 규정된 방식으로 병역을 마친 사람들이다. 물론 법적으로 이렇게 됐다고 해서 현실에서의 편견과 차별도 당장 사라지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다름’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포용력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해소되리라 믿는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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