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산중에선 무섭고 외로울 틈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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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희 작가의 첫 시집 <우린 더 뜨거워질 수 있었다>

강기희 작가. 달아실

강기희 작가. 달아실

오지탐방이 유행한 적 있지요. ‘오지(奧地)’의 사전적 의미는 바닷가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의 깊숙한 땅이라네요. 맞는 말이긴 한데 뭔가 아쉽습니다. 오지의 다른 말은 ‘두메’쯤 되겠지요. 사람이 살지 않는 데를 ‘두메산골’이라 하진 않잖아요. 사람이 살아야 오지인 게지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으니 교통은 불편하고, 사는 환경도 열악하겠지요. 강원도 정선 덕산기계곡 깊숙이에 소설가 겸 시인 강기희와 동화작가 유진아 부부가 운영하는 ‘숲속책방’이 있습니다.

46년 만의 귀향, 그리고 폐암

대도시의 책방도 어려운데, 깊은 산골의 책방 유지가 가능할까요. 하긴 도시나 산골이나 안 되는 건 마찬가진데 장소가 그리 중요할까요. 오히려 호기심이나 희소성 때문에 더 찾아올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 않아도 정선에 왔다가 들르기도 하고, 대도시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도 꽤 된다고 합니다. 강기희 시인은 책방에서 자신의 첫 소설을 읽었다는 독자도 우연히 만났고, 작가가 되겠다며 한수 지도를 청하는 어린 여학생도 만났답니다. “칠순 할머니께서 고등학생 손자를 데리고 와선 좋은 글귀를 써달라며 사인을 청할 땐 묘한 감정이 일기도 했고, 책에 저자 사인을 하면서 나눈 이야기들은 문학 강의에 가까웠지만 다들 좋아”(<양아치가 죽었다> ‘작가의 말’)했다고 합니다. 다들 대단한 정성이지요. 책방에 꽂혀 있는 많은 책 중에서 부부가 쓴 책을 고르면 직접 사인을 해준다고 합니다. 그 책장에 강기희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우리 더 뜨거워질 수 있었다>가 있습니다. 시인이라 했지만, 사실은 소설가입니다.

1964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난 그는 1998년 ‘문학21’ 신인상으로 등단했습니다. <아담과 아담 이브와 이브>,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은옥이 1·2>, <도둑고양이>, <개 같은 인생들>, <연산-대왕을 꿈꾼 조선의 왕>, <원숭이 그림자>, <위험한 특종-김달삼 찾기>, <연산의 아들, 이황>, <이번 청춘은 망했다> 등의 장편소설과 올해 단편소설을 묶은 <양아치가 죽었다>를 출간했습니다. <도둑고양이>로 5000만원 고료 제1회 디지털문학대상을, <위험한 특종>으로 2018 레드 어워드를 수상했습니다. 단편이나 중편보다는 장편소설을 주로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설을 쓰던 그가 왜 갑자기 시를 쓰게 됐을까요. 8남매 중 “내 위로 누나 둘 형 하나/ 내 아래로 여동생 하나 죽고/ 넷이 살아남았”(‘생존율’)고, “어릴 적 네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살아남았”(이하 ‘그런 날 올까’)는데 지난해 가을 폐암 4기 선고를 받았습니다. “46년 만에 돌아온 고향”에 정착해 마음의 평안을 얻었는데 암이라는 불청객이 불쑥 찾아온 것이지요. 죽음이 가까워지는 순간 평생 소설가로 살았지만, 생전에 시집 한권쯤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틈틈이 쓰던 시와 암 투병을 하면서 쓴 시를 묶은 것이지요. 서사를 다루는 소설과 달리 시는 내면을 마주하는 시간이라 즐거웠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성정 물려받아

<우린 더 뜨거워질 수 있었다> 표지.

<우린 더 뜨거워질 수 있었다> 표지.

1971년 먹고살기 위해 고향을 떠났다가 46년 만인 2017년 덕산기계곡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에는 9대 조부부터 “일흔여섯에 위암으로 돌아가”(이하 ‘벌’)신 아버지의 무덤과 태가 책방 지척에 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위궤양인 줄만 알았”답니다. 의사와 짜고 거짓말을 했다는군요. 수술한다고 나을 병도 아니고, 병 “수발들 사람도 없고 돈도 없”었기 때문이랍니다. 하여 남 속이는 것을 싫어한 아버지를 “만나러 갈 때 회초리 준비해 가지고 가야 할” 것 같답니다. 회초리 몇대 맞고는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좀 따”(이하 ‘따질랍니다’)져볼 요량이라는군요. “남들은 친일파 자식이 되어 대대손손 땅땅거리며 잘만 사는데”, 또 사람 등쳐먹고 사기 치는 걸 알려줘, 하다못해 동네 졸부로도 살아가는데 왜 이런 것 하나 물려주지 않아 “이 시대에 순응하지 못하고 불뚝불뚝 저항”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하지만 이번 제사에선 참고 넘어가려 한다는군요. “아버지나 나나 성질머리 때문에 사는 게 힘들었는데”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잘 아니까요. “단 한순간도 한눈팔지 않고”(이하 ‘그런 날이 있었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은 아버지의 성정을 물려받은 그는 “작가로서 이런저런 일에 끼어”(‘블랙리스트’)들어 ‘빨갱이’ 소리를 듣고, 블랙리스트에도 올랐습니다.

살아생전 그의 소원은 “북녘땅 물빛이 순하고 고운 어디쯤에다 작은 ‘통일책방’ 하나”(이하 ‘통일책방 1’) 내는 것입니다. 그 책방 앞 평상에 경상도 시인, 전라도 소설가, 충청도 화가, 함경도 무용수, 평안도 소설가, 황해도 소리꾼, 경기도 장구재비와 어울려 며칠 동안 “책 읽다 술 먹다 노래하다 춤추다 어느 순간 숨이 딱 멎었으면 좋겠다” 합니다.

사람들은 궁금해합니다. 산중에 살면 외롭지 않냐, 무섭지 않냐고요. 그는 “외로울 틈이 있어야 외롭고/ 무서울 틈이 있어야 무섭”(이하 ‘사람이 가장 무섭지요’)다며 그런 것은 “도시 사람들에게나 있지/ 산중에선 그럴 일이 없”다고 합니다. 외롭거나 무서운 건 다 사람으로 인해 생긴 것이니까요. 하긴 살다 보면 사람이 가장 무섭긴 합니다. “나무가 사람에게/ 사기”를 치지 않고, “버들치가 지나가는 사람을/ 먼저 때리”지도 않지요. 사람은 사람의 뺨을 때려도 “지나가던 바람”이 사람의 뺨을 치진 않지요. 그는 “전생을 사람으로/ 소설가로”(이하 ‘후생에는’) 살았으니 후생은 “숲속 어느 참나무 후손으로” 태어나 꿀밤 가득 열다가 어느 겨울 “가난한 소설가네 아궁이로”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시 ‘덕산기에 오시려거든’에서는 “곱고 수줍은 웃음”으로, “빈 마음”으로, “가벼운 걸음”으로 덕산기계곡에 오라 합니다. 또 “폭설로 길이 끊어지는 날 흰 눈 안고 오시라” 합니다. 부부의 삶처럼 잠시나마 세상과 절연하라는 뜻이겠지요. 덕산기계곡 맑은 물과 공기가 그의 몹쓸 병을 씻은 듯이 낫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김정수의 시톡](13)산중에선 무섭고 외로울 틈이 없어요

▲내일은 덜컥 일요일
최은묵·시인의일요일·1만원
나의 안부가
궁금한 자만이
이 문에
도달할 것이다.

[김정수의 시톡](13)산중에선 무섭고 외로울 틈이 없어요

▲꽃들은 바람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오영자 지음·천년의시작·1만원
시와 너무 멀어졌다는
생각마저 든다.
꽃들과 생활하면서
10년이 흐른 듯하다.

[김정수의 시톡](13)산중에선 무섭고 외로울 틈이 없어요

▲풀잎
김정옥 지음·한국문연·1만원
묶어두었던 끈을
풀어본다.
수줍은 나의 마음이 깨끗하게 단장한
예쁜 미소가 되기를.

[김정수의 시톡](13)산중에선 무섭고 외로울 틈이 없어요

▲밤새도록 이마를 쓰다듬는 꿈속에서
유혜빈 지음·창비·1만1000원
오후의 햇살을 머금은
황금빛 이파리들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

[김정수의 시톡](13)산중에선 무섭고 외로울 틈이 없어요

▲엔돌의 마녀
김소영 지음·달아실·1만원
가서는 안 되는 길,
그 끝에 너는
서 있다. 은밀하고 절박한 길이었다.



<김정수 시인 sujungih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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