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에서 살던 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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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에서 1년 동안 산 적이 있다. 서울 종로구의 어느 고시원이었다. 햇빛이 들지 않는 3~4평 남짓한 공간에서 지냈다. 양팔을 미처 다 펴지 못하는 길이의 책상, 1인용 장롱과 침대가 전부였다. 보증금이 없고 큰돈이 들지 않아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반지하나 옥탑방도 보러 다녔는데 고시원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해 택했다. 취업준비생 시절 서울에서 지내려면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선택지가 많지 않은 이들이 고시원이나 반지하, 옥탑방에서 머문다. 거주여건이 좋지 못해 머물렀다 금방 떠나야 하는 공간이어야 하는데 그 기간이 길어지는 이들이 많다. 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취약층이다. 이들은 고시원, 반지하와 같은 주거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할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다. 집 장만은 둘째치고 높은 전세, 월셋값을 감당하기 버거운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수요가 있으니 고시원과 반지하, 옥탑방이 계속 생겼으리라고도 생각한다.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반지하주택 밀집 지역. 성동훈 기자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반지하주택 밀집 지역. 성동훈 기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번역을 맡은 달시 파켓이 번역에 애를 먹은 것은 ‘짜파구리’만이 아니었다. ‘반지하’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한다.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한 달시 파켓은 반지하를 ‘semi-basement’로 번역했다. 봉준호 감독은 “반지하는 한국적 공간으로 영어·불어 단어가 없다”고 했다. 영국 BBC는 영화를 전하면서 ‘banjiha’ 단어를 그대로 썼다. 오로지 한국적 개념에서 이해 가능한 주거공간인 셈이다. 고시원이나 옥탑방도 마찬가지 아닌지 궁금해진다.

지난 8월 8일부터 연이틀 쏟아진 기록적인 호우로 반지하주택에 살던 일가족 3명과 주민 1명 등 4명이 숨졌다. 특히 일가족 사망의 경우 이동 취약층인 발달장애인이 포함돼 있었던데다 갑자기 불어난 물에 아무도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지면서 안타까움이 더 컸다. “방범용 창살을 못 떼어냈다”고 이웃주민은 눈물을 훔쳤다. 일가족 중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소속이었던 홍모씨(46)를 기리며 동료들은 고개를 떨구었다. “영화 <기생충>에서 반지하에 빗물이 차오르면 문이 안 열린다는 것까지 보여줬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술자리가 무르익으니 동료가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장례식장에서 계속 자리를 지키던 그였다. 현실은 영화보다 지독히도 잔인했다. 재해는 이번에도 약한 고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고시원에서 살았을 때 좁고 덥고 추운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다행히 재해는 없었다. 고시원 생활 이후 몇년이 흘러 2018년 종로 고시원 화재 소식을 접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후에도 잇따른 고시원 화재 소식을 들을 때마다 고시원에서 머무르던 때를 떠올렸다. 단지 운이 좋았구나 싶었다. 일가족 사망 이후 서울시가 반지하주택 자체를 없애겠다는 정책을 두고 설왕설래를 하는 모양이다. 찬반을 여기서 논하자는 건 아니지만, 재해를 통해서만 ‘한국적 공간’의 주거문제가 새삼 공론화되는 일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라는 건 분명히 알겠다. 선택지가 많으면 좋으련만.

<유선희 정책사회부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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