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

법을 만드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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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곁을 지나는 오늘을 틈 없이 살피지 못한다. 그렇다고 다가올 내일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늘 놓쳐버린 틈새를 비집고 나선 내일의 안타까운 일을 아픈 마음으로 후회하며 살아간다. ‘참사’라는 끔찍한 이름으로 남은 숱한 사건들, 그 사이로 잃어버린 소중한 이들의 삶을 마주하는 마음이 그렇다. 후회의 면면에 깔린 먹먹한 한숨들은 다시 여러 갈래로 엮여 법과 제도가 된다. 그렇게 만든 법과 제도는 같은 슬픔을 반복하지 말자는 주문이 된다. 지난 7월 1일부로 시행된 개정 ‘군사법원법’도 그런 주문 중 하나다. 2021년 5월 공군에서 성추행과 2차 피해를 겪다 세상을 떠난 고(故) 이예람 중사를 기억하는 한숨과 눈물이 모여 맺힌 법이다.

[오늘을 생각한다]법을 만드는 마음

가해자 조사도 없이 불구속 수사 방침을 정한 군사경찰과 피해자가 고인이 되기까지 두 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군검찰. 군수사기관의 부실수사는 이 중사 사망의 원인 중 하나로 꼽혀왔다. 문제는 군사법원과 군수사기관이 사달을 낸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때문에 군에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군사법제도를 개혁하자는 여론은 단골손님이었다. 그러던 중에 이 중사 사건이 발생했고, 국회 역시 손 놓고 있을 순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쟁점은 사건 관할 변경이었다. 전쟁이 없는 평시에는 수사·재판 관할을 모두 민간으로 이전하자는 원칙적 입장과 비(非)군사범죄의 관할만 민간으로 이전하자는 중재안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여러 법안에 담겼다. 물론 국방부는 필사적으로 반대했다. 전부 다 지켜낼 순 없다고 판단했는지 사망사건의 원인이 된 범죄, 성폭력 사건, 군인이 입대하기 전에 저지른 사건만 민간으로 이전하는 희한한 타협안까지 만들어 국회에 제안했다. 문제는 국회가 별 토의 없이 국방부와 졸속 야합해버렸다는 점이다. 국회 회의록 어디에도 국방부안을 제대로 논의한 흔적이 없다. 법안의 합리성이나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한 정교한 검토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바뀐 법에 따라 ‘사망사건의 원인이 된 범죄’는 민간이 수사하지만, 원인이 된 범죄의 유무는 군이 판단한다. 군의 사건 은폐를 막아보자던 당초 취지는 온데간데없어졌다. 그뿐인가. 성범죄는 민간에서 수사하지만 엮여 있는 2차 피해 사건은 따로 군에서 수사한다. 한 사건을 여기저기 찢어놨으니 가해자에겐 이롭고 피해자만 분주해진 셈이다.

요즘 군에선 ‘하루가 멀다고’ 사망사건이 터진다. 성범죄 피해자의 절규도 끝날 줄 모른다. 엉성한 법은 피해자와 유족의 불안과 절망만 키울 뿐이다. 법을 만드는 이들의 섬세하지 못한 마음이 이러하다. 장차 영향받게 될 이의 입장에서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심히 써내린 법률 한자 한자가 어떤 후회와 한숨으로 빚어진 것인지, 그 무게를 한 번이라도 헤아려봤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군사법원법 개정을 두고 의미 있는 성과라 자평하던 정치인들을 기억한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법을 만드는 마음이 이렇게 가볍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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