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나라’에 생명권으로서의 주거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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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기생충>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투명 인간’ 취급을 받고 있던 지하 사람들이 한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때 경향신문과 함께 영화의 주요 모티브였던 지하 ‘침수’ 피해를 겪은 가구를 만나러 다녔다. 한 조손 가구는 같은 집에서 8번 침수를 당했는데, 한 번은 새벽에 물이 무릎까지 차올라오는데 현관문이 열리지 않아 119구급대가 와서 겨우 살았다고 했다. 그 뒤로 할머니는 비만 오면 잠을 자지 못하고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현관 밖을 서성이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지난 8월 11일 경기 군포 산본1동 한 반지하주택에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로 방범창을 부수고 탈출한 흔적이 남아 있다. / 연합뉴스

지난 8월 11일 경기 군포 산본1동 한 반지하주택에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로 방범창을 부수고 탈출한 흔적이 남아 있다. / 연합뉴스

2022년 8월 수도권에 내린 폭우로 사망한 서울 관악구 일가족 3명에게는 119구급대가 제때 오지 않았다. 바닥의 물은 점점 차오르는데, 기다리는 구조대는 오지 않고 현관문은 열리지 않아 밖으로 빠져나갈 통로 없는 어두운 공포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간절히 구조를 기다리는 그 순간에 국가가 그 가족 곁에 있었다면, 국가가 취약계층을 더 잘 돌보았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극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백만호씩 공급했다는 집은 다 어디로 가고 노인, 장애인, 아동을 혼자 돌보는 40대 엄마는 왜 창문을 쇠창살로 막아야 하는 반지하주택을 가족의 보금자리로 삼아야 했을까? 정부가 지난 8월 16일 발표한 270만호 공급 계획 어디에도 이들이 살 수 있는 집은 없다. 서울시가 대책으로 발표한 모아주택에도 이들이 살 수 있는 집은 없다. 노인, 장애인, 아동, 한부모 대상의 주거정책 중 하나만 제대로 작동했어도 네 식구는 햇볕 잘 드는 창문을 가진 뽀송뽀송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집에서 오래오래 살았을 것이다. 병원에 있어 수마를 피한 노모를 이 세상에 홀로 남겨놓지 않았을 것이다.

지하 문제에 대한 대책 시급하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이번 폭우도 지하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특히 가혹했다. 많은 사람이 집을 잃었고, 심지어 생명도 잃었다. 동작구에서도 50대 여성이 수해로 사망했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전국 32만7000가구가 지하에 살고 서울에만 20만가구가 지하에 산다. 20만가구는 강남구 전체 가구 수와 비슷하고 종로, 중구, 용산구 전체 가구 수를 합한 것보다 조금 적은 숫자다. 상습 침수구역 지하 거주 가구 수는 파악조차 못 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하 문제의 근본 대책으로 신축 주택 지하 금지를 들고 있는데, 수십년간 만들어 놓은 기존 지하에 대한 대책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잘하겠다는 건 오랫동안 쌓아온 기존 주택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모든 지하를 20년 안에 없앤다는 비현실적 대책보다 지금 당장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지하에 거주하는 가구에 대한 이주 대책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상습 침수구역에 있는 지하뿐만이 아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실내 공기 오염이 심각한 지하, 습기가 심각해 누전 우려가 큰 지하 등에 대한 이주 대책도 당장 필요하다.

지난 4월 발생한 영등포 고시원 화재 사망자도, 올해 8월 관악구와 동작구 수해 사망자도 모두 주거급여 수급자였다. 2022년 기준으로 서울에서 1인 가구가 최대로 받을 수 있는 주거급여액이 월 32만7000원인데, 이 돈으로는 지하 아니면 고시원에 살 수밖에 없다. 최근 물가가 폭등하고 있지만, 내년 주거급여액은 월 3000원 인상에 그칠 예정이다. 2015년 맞춤형 급여로 개편된 이후 가장 적은 인상액이다. 제도 변화가 없다면 내년에도 수급자들은 33만원으로 살 수 있는 집을 찾아 지하로, 고시원으로, 쪽방으로 갈 것이다. 소득이 적어 정부로부터 주거급여를 받는 사람들은 정부 지원을 받아도 돈이 부족해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 수밖에 없다. 주거급여 수급자가 지하와 고시원에서 살다가 사망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는 주거급여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최후의 안전망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현행 제도의 한계를 보여준다. 복지 사각지대를 줄여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주거 안전망에 들어와 있는 수급자가 생명과 건강을 잃을 우려가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을 막아야 한다.

예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기재부

주거급여의 낮은 보장 수준으로 인해 민간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수급자의 주거환경이 열악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문제 제기가 있었다. 기획재정부가 쌓아놓은 예산 제약이라는 강력한 장벽을 넘지 못해 제도 개선은 수년째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주거급여법에 따르면 주거급여의 주무부처는 국토교통부이고, 임차료 지급기준을 국토부 장관이 정하게 돼 있지만, 기재부가 예산 범위를 정하기 때문에 결국 기재부가 실질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구조다. 기재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재정건전성’이라는 기준에 따라 예산이 편성되기 때문에 항상 주거급여액은 그 예산 범위 내에서 결정되고, 그 액수로는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없다. 기재부 관료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거급여 수급자들이 지(하)옥(탑)고(시원)에서 죽어간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때나 윤석열 정부 때나 기재부 관리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안타깝긴 하지만 예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이번 수해로 많은 사람이 돈이 없어 지하에 살다 생명과 재산을 잃었는데 국토부의 대책도, 서울시의 대책도 약속이라도 한 듯 구체적 예산 투입 계획이 거의 없다. 서울시는 지상으로 이주하는 지하 가구에 대해 특정 바우처로 월 20만원을 2년 동안 지급하겠다는데, 몇가구에 지급하겠다는 구체적 계획이 없어 예산 규모를 알 수 없다. 서울시는 정부에 주거급여 개선을 건의하겠다고만 하고, 정부는 주거급여 지원대상과 금액을 확대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대책으로 내놓았다. 아무도 지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예산 투입을 약속하지 않는다.

집중호우로 목숨을 잃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주택 일가족 3명의 빈소가 지난 8월 10일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 공동취재단

집중호우로 목숨을 잃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주택 일가족 3명의 빈소가 지난 8월 10일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 공동취재단

지금과 같은 민생의 절체절명 위기상황에서 재정당국이 예산이 투입되는 구체적 대책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면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오기 어렵다. 주거정책의 주무부처인 국토부에서 수해가구 이주대책을 아무리 설계해도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공염불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수해를 입은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예산 마련에는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반면 부자 감세는 파격적으로 하고 있다. 다주택자 중과세율 폐지 등으로 고가 주택 보유자의 종합부동산세 1조7000억원을 감면했다. 이 돈이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주거급여 설계가 가능하다. 취약계층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할 예산이 없는 게 아니라 재정당국의 의지가 없는 것이다. 취약계층이 지하에서 생명을 잃은 직후 추경호 기재부 장관은 “취약계층을 두텁게 보호해왔다”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집 때문에 목숨을 잃어야 서울시와 정부는 예산을 투입하는 진짜 대책을 마련할 것인가? 기재부는 지금 당장 예산을 투입해 구할 수 있는 생명을 살려야 한다. 관악구 지하의 일가족 참사 때 119구조대가 안 온 게 아니라 너무 늦게 왔다는 점을 재정당국은 기억해야 한다. 기재부가 취약계층을 두텁게 보호하고 있다고 강변하면서 사람들의 목숨이 달린 일에 계속 예산 타령만 한다면 국회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국회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취약계층의 주거 문제를 당장 해결할 의무가 있다. 기재부의 나라에서 취약계층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고, 무정부 상태에 놓여 있다.

침수 피해자들의 지울 수 없는 상처

지하에 대해 근본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정부와 서울시의 약속은 이미 여러 번 지켜지지 않았다. 2010년 태풍 곤파스로 지하 거주 가구의 피해가 크자 서울시는 반지하 신축 금지 정책을 발표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2020년 영화 <기생충>은 지하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대책을 수립할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정부는 약속했던 조사도 대책 수립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조사 핑계를 대고 대책을 미룰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 비극을 보며 가슴 아파하는 많은 시민이 지켜보고 있다. 지하 대책 마련을 위해 2005년부터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지하 거주 여부를 조사했고, 지자체에는 수해피해 가구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수마가 지나간 상처는 고스란히 집에 남고, 어쩔 수 없이 그 집에 계속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호우 때 하수구가 역류하는 수해를 당한 지 2년이 지난 집 거실의 장판 밑에는 여전히 물이 고여 있다. 침수된 집의 장판이 여기저기 밭이랑 모양으로 불룩 솟아 있는 것은 물 때문이다. 불안증이 생기기도 하고, 호흡기 질환과 피부병이 생기기도 한다. 식물이 과습 피해를 입으면 썩는 것처럼 나무로 된 가구도 썩는다. 침수피해는 자동차 못지않게 집과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주거급여제도를 개선하고, 예산을 마련해 침수피해를 당한 가구에 대한 실질적인 이주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예산을 지원하고 사람을 투입해 지하에서 수재로 사람이 생명을 잃는 문제를 이번에는 정말 끝내자. 가가호호 방문해 맞춤형 이주대책을 제시하고, 대책이 실행될 수 있도록 공무원은 물론 주거복지 실행 기관인 LH공사와 SH공사, GH공사 등 지방공사를 총동원해야 한다. 폭우는 또 내릴 것이다. 화재는 또 일어날 것이다. 서울시가 지하를 다 없앨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가장 기본적인 인권인 생명권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지옥고에서 또 무고한 시민이 죽어갈 것이다.

지금까지 지하에 두 번 살아보았지만 한 번도 1년 이상 살지 않았고, 예정했던 기한을 다 채운 적도 없다. 두 번 다 도망치듯이 지하생활을 끝냈다. 관악구에서 생명을 잃은 초등학교 6학년 아이는 7년을 지하에서 살았다고 한다. 나처럼 지하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생의 절반 이상을 엄마랑 할머니랑 이모랑 지하에서 살았을 아이의 명복을 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온 힘을 다해 수마와 싸우다 결국 이번 수재로 희생된 모든 분의 영원한 평화를 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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