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식 교수 “과학이 상상력을 막는다? 오히려 키울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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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창길 기자

사진/ 김창길 기자

“괴물, SF 소설을 탐닉하는 ‘덕후’인가, 카이스트를 조기 졸업한 ‘천재’인가.”

인터넷상에 떠도는 곽재식 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에 대한 설명이다. 실제로 한여름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검은색 정장과 넥타이까지 갖춘 모습은 그에 대해 ‘뭔가 다르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그의 진면목은 경력, 행색 등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일단 말을 하기 시작하면 큰 목소리에 한 번 놀라고, 나도 모르게 이야기에 빠져들어가는 상황에 다시 한 번 놀란다. ‘대체 이런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 싶은 예시를 동원하며 복잡한 과학지식을 쉽게 전달한다. 한 학회에서 만화 <건담>에 나오는 가공의 기술(사이코 프레임)을 설명하며 “왠지 기쁘면서도 분했다”는 그의 말에선 슬쩍 미소까지 짓게 된다. 천재, 교수라기보다 천상 ‘이야기꾼’, 만화책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옆집 형’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5일 서울 양재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곽 교수를 만났다. 첫 마디를 인터넷상에 떠도는 그의 학력과 경력에 관한 이야기로 꺼냈다. “아이고, 졸업한 지 20년이나 지난 이야기를 뭘…”이라며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내가 대박 난 소설이 없어서 그런 것만 알려졌어요”라며 호탕하게 웃는 모습에서 권위와는 거리가 먼 소탈한 면모가 엿보였다.

-소설가, 공학자, 교수 등 다양한 직업으로 알려져 있다. 외고 출신, 카이스트 조기졸업 등으로도 유명한데 본인이 생각하는 정체성은 무엇인가.

“석사는 화학, 박사는 기술정책협동과정으로 학위를 받았다. 이후 15년 정도 화학 회사에서 환경 쪽 일을 했다. 그런데 이런 이력이 소설가로서의 나를 설명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님이 어느 학교 출신인지 아는 사람이 있나. 성공한 작품을 썼다면 아마도 학력 같은 이야기가 부각될 일도 없었을 텐데…(웃음). 출판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홍보가 필요하다 보니, 무슨 학교 출신이라는 이야기가 부각된 것 같다. 그런 것보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출판한 책이 30권이 넘는다. 1년에 2권씩 책을 낸 셈이다. 소설부터 논픽션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오랜 기간 꾸준히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로 소개하는 것이 가장 정체성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또 한가지 더 소개할 수 있다면, 현재 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는 것 정도다.”

-최근 방송에도 자주 나오지 않나. 이제 대중적으로도 꽤 알려진 것 같은데.

“최근 공공기관 회의에 한 번 나간 적이 있는데 곽재식이라는 이름표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방송인’ 이렇게 써놨더라. 굉장히 이상하다고 느꼈다. 방송인이라고 하기에는 별로 하는 것도 없고, 가끔 불러줄 때 나가는 정도다.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지도 않다.”

-인터넷상에는 경력과 독특한 활동 내용을 비교한 글들이 많다. 특히 곽재식 하면 ‘괴물’, ‘역사’ 등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지 않나. 과학보다 오히려 문과적 지식이 더 깊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이런 분야에 관심을 갖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내가 소설가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부분의 소설가가 비슷할 것이다. ‘어떤 이야기가 재미있을까, 뭘 써야 독자들이 흥미를 갖고 이 내용을 끝까지 읽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결국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쳐다볼 만한 소재들에서 나온다. 이런 부분들을 찾다 보니 괴물이나 역사에 관한 지식이 쌓였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연합뉴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연합뉴스

-최근에는 음식(<곽재식의 먹는 화학 이야기>), 달에 관한 이야기(<그래서 우리는 달에 간다>)까지 책으로 출간했다. 과학자의 면모를 잘 부각시킨 결과물 같은데.

“사실 <그래서 우리는 달에 간다>는 전문서적은 아니고, 달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다. 과학자 혹은 공학인의 정체성보다 소설가로서의 특징이 많이 반영됐다. 한국의 ‘다누리호’가 달 탐사를 위한 여정을 시작한 시점에서 독자들에게 그 의미를 설명하고자 한 책이다. 오히려 <곽재식의 먹는 화학 이야기>가 화학을 전공한 지식, 화학 회사를 오래 다닌 경험 등을 살려 집필한 책이다. 화학을 둘러싼 전문적인 내용과 일상생활 속 내용이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음식, 요리이기 때문이다. 더 과학자스럽게 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겸손하게 말하지만 달 탐사에 관한 책도 다루는 지식이 방대하다. 본인만의 시각도 있어 흥미롭던데.

“사실 다른 것은 제쳐두고라도 ‘인류가 왜 달 탐사를 해야 하느냐’는 소개하고 싶었다. 언론에서는 달에 가서 ‘희토류 같은 돈 될 자원을 가져올 것’처럼 소개하는데 진짜 중요한 것은 ‘달 탐사를 하는 근본 이유’다. 특히 인류가 달에 가는 이유 중 하나가 ‘지구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연구 경향 변화만 살펴봐도 이런 취지는 잘 드러난다. 달은 천문학 분야보다 오히려 지질학 분야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는 달이 지구를 이해하는 대조군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땅을 파보면 규소, 산소, 철과 같은 요소가 나오는데 이게 지구만 갖는 특성인지, 다른 우주 행성 모두가 갖는 특성인지를 알려면 대조군이 필요하다. 이 역할을 수행하는 데 가장 가깝고 현실적인 것이 달이라는 의미다.”

-다누리호의 달 탐사 방식 설명도 재미있던데.

“사실 한국은 연료를 최대한 아끼려고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방식으로 달 탐사를 시도하고 있다. 달 탐사하는 가장 간단한 방식은 로켓에 실어 달로 바로 쏘아 버리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이 정도의 기술은 없다. 결국 남의 나라 로켓에 실어 달 탐사선을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에서 섀도캠이라는 달의 그림자 지역 탐사에 활용하는 기계를 실어달라고 제안했다. 섀도캠은 달에서 물이 얼어붙어 있는 지역을 찾는 기계인데 만약 한국이 승낙한다면 미국 정부가 달 탐사에 협조하겠다는 제안도 함께였다. 문제는 섀도캠을 실으면 달 탐사선의 무게가 종전 550㎏에서 약 700㎏에 가깝게 늘어난다는 점이다. 무게가 늘어나면 기존의 달 탐사 궤도를 이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WSB(weak stability boundary)라고도 하고, 속칭 BLT(ballistic lunar transfer) 궤도라고도 부르는 독특한 방식을 선택했다. BLT 궤도는 어지간해선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특이한 방식이다. 겉으로 볼 때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태양 쪽을 향해 우주선을 날려보낸다. 땅에서 하늘을 향해 공을 던지면 다시 땅으로 떨어지듯 태양 쪽으로 아주 세게 우주선을 보내면 결국 다시 지구를 향해 떨어지게 된다. 이때 시간 계산을 잘해서 떨어지는 우주선이 향하는 방향이 마침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달과 딱 맞아떨어지도록 의도한 것이다. 태양이 우주선을 중력으로 당기는 힘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연료도 아낄 수 있다. 문제는 지구에서 달까지는 40만㎞가 채 안 되는데 이 방식을 택하면 약 150만㎞를 항해하게 된다. 먼 길을 가야 한다는 건 그만큼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는 의미다. 만약 다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달에 착륙한다면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한국 속담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다.”

곽재식 교수 트위터 갈무리

곽재식 교수 트위터 갈무리

-단기간에 이처럼 폭넓은 이야기를 다룬 책들을 쏟아내면, 전문성을 의심받을 수 있지 않나.

“이상하게 출간 시점이 몰리면서 그렇게 보이는 측면이 있다. 이 부분은 사연이 있다. <곽재식의 먹는 화학 이야기>의 경우 이미 1년도 전에 기획하고 자료를 모아 쓴 책이다. 출고 시점이 우연히 달에 관한 책과 맞아떨어졌다. 나는 어떤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면, 미리 해당 분야를 조사해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이중에는 7~8년 전부터 생각하고, 자료를 모아온 것들도 있다. 출판사 관계자를 만나면 이 리스트를 보여주고 역제안을 한다. 평소 구상하고 공부한 내용이기 때문에 차근차근 정리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 그게 인간이 할 수 없을 만큼 양적으로 어마어마한 내용이 아니다.”

-반대로 유명 과학자가 다양한 서적을 출간하는 것이 과학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춰준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한국의 문과 계통 학생들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과학공부를 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듯한데.

“솔직히 그런 부분에 대해 특별한 사명감을 가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의도를 갖고 쓴 책들은 있다. 기후변화 문제를 다룬 책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는 대중에게 쉽게 기후문제를 알리고 싶어 썼다. 또 <휴가 갈 땐, 주기율표>도 일상생활 속에 자리 잡은 화학적 지식을 쉽게 알리고자 했다. 과학에 대한 일반적 고정관념 중 ‘과학이 무한한 상상력을 제한해 재미가 없다’는 것이 있다. 대중은 독특한 상상을 했는데 한 과학자가 나타나 ‘그건 과학적으로 불가능해’라고 일침을 가하는 상황을 상상하면 이해가 쉽다. 나는 반대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과학이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쇠숟가락을 생각해보자. 쇠숟가락은 좁게 보면 철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궁금증이 생기지 않나. ‘매일 입에도 넣고, 물로 씻기도 하는 숟가락은 왜 녹이 슬지 않을까’. 여기서 철에 크롬을 섞어 만든 ‘스테인리스강’이 나온다. 크롬에 녹이 슬어 얇은 방어막을 만들기 때문에 스테인리스강은 물에 넣어도 녹이 슬지 않는다. 이를 이용해 숟가락을 만들기 때문에 녹이 슬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더 상상력을 발휘해볼 수 있다. 이 스테인리스강은 또 어디서 오는 걸까. 이를 추적하다 보면 뜬금없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연결된다. 크롬의 주(主)산지가 남아공이기 때문이다. 그럼 남아공 정세 변화에 따라 또 숟가락 시세가 바뀌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지 않겠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력의 시발점에 과학이 있다.”

곽재식 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가 지난 8월 15일 서울 양재동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곽재식 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가 지난 8월 15일 서울 양재동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결국 통섭을 위해서는 과학지식이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얘기인가.

“소설을 쓰기 위해 주제별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쭉 나열하다 보면 이를 엮을 수 있는 방법이 없나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재미있는 책이 나온다. 통섭이라는 것도 이런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정치를 보다가 이 시대의 과학기술을 떠올려 보는 식이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라는 시대적 과제가 전기차로의 전환 움직임을 촉발하지 않았나. 이러한 전환은 또 화학·배터리 산업을 키운다. 배터리 사업이 커지다 보니 볼리비아, 페루, 콩고 등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를 가진 나라들이 각광받는다. 원자재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서는 이들 나라의 정치적 사정을 파악해야 하는 과제도 따라붙는다. 결국 한국의 미래 먹거리인 배터리 사업을 위해 ‘콩고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쟁취할 것이냐’가 중대 사안이 되는 식이다. 과학에서 시작해 경제·정치로 이어진다. 과학 교육은 통섭을 위한 주요한 축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소설가든 과학자든 지식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현재 소속된 학교가 숭실사이버대학이다. 일반 학교보다 사이버대학이란 곳에서 좀더 오래 강의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사이버대학처럼 개방된 학교가 미래에 필요한 대학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교수 임용 면접 과정에서 ‘우리나라 인구가 줄고 있는 만큼 대학 형태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미 한 번 공부하고,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이 다시 공부하려 할 때 통신교육, 사이버대학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게 미래의 교육이고, 앞으로의 가치를 잘 반영하는 교육이라는 생각도 하고 있다. 또 한가지, 사이버대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현장교육에 비해 언어의 장벽을 낮출 수 있다는 측면이다. 이미 한국에는 영어에 능숙한 외국인들뿐만 아니라 동남아 등지에서 들어온 사람들도 많다. 베트남어 강의, 몽골어 강의 등은 하기 어렵지만 이미 만들어진 통신교육에 자막을 넣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한국사회에 다문화가정이 늘어나는 추세라면 사이버 교육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도 늘어날 것이다. 한국이 남반구나 아프리카 등지에 기술을 전파해주는 국제협력 측면에서도 이는 매우 중요하다. 사이버대학에서 한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 지식을 전파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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