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중대재해, 조사부터 공개해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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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산지석(他山之石), 반면교사(反面敎師).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들이 새삼 의미를 새겨야 할 사자성어다. 쓰임에 약간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타인의 언행이나 사례를 참고해 자신의 상황을 돌아보고 깨우침을 얻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재해 예방 활동을 위해서든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든 이전에 발생한 중대재해의 원인과 의무 위반사항,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참고해 타산지석, 반면교사로 삼으려던 이들은 당황하게 될 것이다. 도대체 그런 중대재해 조사보고서를 구해볼 수가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사진/김창길기자

사진/김창길기자

공개되지 않는 조사보고서 산업안전보건법 제56조(중대재해 원인조사 등)는 고용노동부 장관은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 규명 또는 산업재해 예방대책 수립을 위해 그 발생 원인을 조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는 관할 고용노동지청의 근로감독관이 재해조사의 주체가 되나 경찰이나 소방도 관여(때로는 주도)하기도 한다. 재해조사에 있어서 안전보건 분야의 기술적 전문성이 요구되는 부분은 대부분 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공단 소속 전문가들에게 그 역할이 맡겨진다.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거나 중대한 재해사례에 대한 조사는 2019년에 설치된 안전보건공단의 중앙사고조사단이 개입해왔다. 먼저 안전보건공단 소속 전문가들이 수행한 재해원인 조사결과는 ‘재해조사 의견서’라는 형태로 정리되며, 특별사법경찰관이기도 한 근로감독관들이 재해조사 의견서를 참고하고 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산업안전보건 관련 법규 위반사항까지 포함해 ‘수사의견서(수사결과보고서)’의 형태로 검찰에 보고하게 되고 이후 법적 판단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문제는 이들 보고서가 산업안전보건 범죄의 ‘수사’자료이고, 재판과정에서는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공개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재판이 끝난 이후에도 개별 기업의 정보가 들어 있다는 이유 등으로 공개되지 않고 이들 자료는 산재 예방 활동의 기초 자료로서의 고유 목적은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 채 사장되기 일쑤였다.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로 재해조사 단계부터 로펌이 개입한다. 이런 경향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범죄의 형이 확정된 사업장의 경우에 한해서만 사업장의 명칭과 중대재해의 내용과 원인,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의 위반사항에 대해 공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재해조사, 기소, 1심, 2심, 대법원 판결까지 몇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유사한 위험이 있는 기업과 노동자, 동료 근로감독관, 안전보건 전문가와 연구자들에게조차 공개되지 않는 재해조사는 재해예방에 기여할 수 없다.

2020년 안전보건공단에서 발주한 ‘재해조사보고서의 질적 제고를 위한 연구방안 연구’의 결과에서도 제한된 형식으로라도 재해조사보고서를 공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2021년 3월부터 중앙사고조사단에서 조사내용 전체는 아니지만 ‘중대사고 이슈리포트’라는 형식으로 상당히 진전된 재해조사의 내용을 공개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2021년 12월 이후로 업데이트되고 있지 않다.

중대재해 관련 조사보고서들이 ‘수사’자료이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홈페이지에는 ‘항공·철도 사고조사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는 항공·철도 사고에 대해 공소제기나 형사판결과 무관하게 조사 진행 상황과 보고서까지 누구나 접근해볼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공개돼 있다. 2008년 이천 코리아2000 냉동창고 화재는 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서 조사백서를 작성했고, 온라인을 통해 국가기록원에서 누구나 볼 수 있다. 2016년 구의역 김군 사고, 2017년 삼성중공업 크레인 재해, 2018년 석탄화력발전 김용균씨 사망재해는 외부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해 재해의 직접적이고 기술적인 문제부터 구조적 문제까지 담은 보고서를 작성해 재판과정과 무관하게 공개했다.

만약 피의사실 공표 등의 법률적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 노동부는 재해 예방이라는 공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지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이미 경찰이나 검찰이 그러하듯이 중대재해 조사나 수사에 대해 알권리와 공익적 효과를 따져 다양한 방법으로 공개와 브리핑의 수준을 정할 수도 있고, 사회적 공유의 효과성을 고려해 내용과 시기를 달리해 공개할 수 있을 것이다.

보고서 공개, 기업도 함께 주장해야 2019년 1월 중앙사고조사단을 설치하면서 당시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하나의 산재 사고도 원인을 추적하면 그물처럼 얽혀 있다”며 “지난 30년 동안 사고 원인을 한 원인으로 몰아가는 방식으로 조사했는데 그런 식으로 하면 문제를 왜곡할 수 있다고 본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고 조사 기능을 대폭 확대”하고 “사고 조사에 더해 안전의 외주화, 하청 기업의 안전관리 문제와 같은 구조적 원인 조사도 포함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관점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에 있어서 더 중요해진다. 법에서는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위반을 처벌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는 도급, 용역, 위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의 핵심은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수행이며, 이를 따지기 위해서는 구조적 원인에 대한 조사가 필수적이다. 내용이 공개되지 않는 재해조사보고서는 예방에 기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조사나 수사 자체의 품질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보고서가 경찰, 검찰, 법원에만 공개된다면 단순한 사실관계만을 따지는 협소한 관점으로 기술될 것이며, 다른 사업장들이 산재 예방 활동 시 참고할 교훈이 담기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를 위해서 부족함은 없는지 사회적으로 검토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재해조사도 제대로 이뤄질 것이다. 중대재해를 촉발한 직접적인 요인이나 위험 행동만을 탐색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래한 위험관리체계의 문제, 원인의 원인을 찾아서 공동의 해결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이 좀더 설득력을 가지려면 기업들도 타산지석, 반면교사로 삼을 중대재해 조사보고서의 공개를 함께 주장해야 마땅하다.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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