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세계-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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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카와 감독의 뛰어난 각색과 연출, 카사마츠 노리미치 촬영감독의 깊이 있는 영상에 더해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배우 야쿠쇼 코지의 명연기가 미카미라는 위태로운 인물에 뜨거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제목 멋진 세계(Under the Open Sky)

제작연도 2020

제작국 일본

상영시간 126분

장르 드라마

감독 니시카와 미와

출연 야쿠쇼 코지, 나가노 타이가, 나가사와 마사미, 록카쿠 세이지

개봉 2022년 8월 11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엣나인필름

㈜엣나인필름

살인죄로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미카미 마사오(야쿠쇼 코지 분)는 13년 만에 만기출소한다. 이제 그에게는 마지막 순간까지 간수가 성가시게 추궁하는 범죄에 대한 죄책감이나, 보관품으로 오랜 시간이 방치돼 망가진 고급 손목시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이번만큼은 진짜 건실하게 살아보겠다는 각오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한편 다니던 영상제작사를 그만두고 소설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젊은 연출가 츠노다(나가노 타이가 분)는 제작자 요시자와(나가사와 마사미 분)로부터 택배로 배달된 미카미의 수감기록(身分帳)과 함께 방송제작을 의뢰받는다. 갱생의 삶을 꿈꾸며 어렸을 때 헤어진 어머니를 찾으려는 미카미의 여정을 뒤쫓아 감동 다큐멘터리로 완성해보자는 것. 요시자와의 사탕발림과 당장의 밥벌이를 위해 츠노다는 썩 내키지 않는 작업을 수락한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모든 작품은 사람들의 ‘관계’에 집중한다. 그 관계의 의미와 가치를 가늠하는 매개체로서 매번 ‘거짓말’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니시카와 감독은 자신이 연출하는 작품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직접 쓴다. 때로는 시나리오와 함께 작업을 병행해 소설로 발간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작품이 자신의 경험에서 발현된 이야기임을 숨기지 않고 고백한다.

30년 전 발표한 실화 소설의 영화화

이번 영화는 감독이 처음으로 다른 이의 원작을 각색해 영화화한 작품이다. 원작은 1990년 발간한 사키 류조의 장편소설로 제2회 이토 세이 문학상을 수상한 <신분장>(身分帳)이다. 실제 인물을 모델로 13년형을 마치고 출소한 한 살인범의 여생과 삶의 풍경을 그려낸 작품이다.

작가 사키 류조는 1937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나 1963년 신일본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6년 발표한 장편소설 <복수는 나의 것>이 제74회 나오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복수는 나의 것>은 1979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멋진 세계>는 원작이 지닌 시대적 간극과 실존인물 소재의 부담으로 인해 자료조사에 공을 들여 각색에만 4년이 소요됐다. 원작이 30년 전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야기 속에 담긴 의미 있는 담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했다는 니시카와 감독은 “일본의 모든 사람이 용서받지 못하는 세계가 만드는 무언의 불안과 질식을 마음에 품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더불어 “함정과 기만으로 가득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힘겨운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악을 모두 아우르는 그 관대함으로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순간들과 삶의 인연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며 영화의 제목을 원작과 다른 <멋진 세계>로 선택했다고 설명한다.

일본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의 명연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을 바라보는 작품의 시선이다. 주인공 미카미는 결코 선한 인물이나 연민의 대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애초 전과 10범에 수감 6번이라는 범죄 이력부터 범상치 않지만,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출감 후에도 다혈질 성격에 얄팍한 치기를 버리지 못하는 그의 일상은 사납고 위태롭기 그지없다. 이런 모습은 냉정한 무관용 사회의 풍경과 맞물려 보는 이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니시카와 감독의 뛰어난 각색과 연출, 카사마츠 노리미치 촬영감독의 깊이 있는 영상에 더해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배우 야쿠쇼 코지의 명연기가 미카미라는 위태로운 인물에 뜨거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야쿠쇼 코지는 구청 토목공사과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친구를 따라가 보게 된 연극을 보고 감명을 받아 배우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대표작으로는 한국에서도 성공한 <쉘 위 댄스>(1996), <실락원>(1997), <우나기>(1997) 등이 있고 구로사와 기요시의 공포영화 <큐어>, <강령>, <도플갱어>, <절규> 등 대표작품 다수에도 함께했다.

<멋진 세계>는 가벼운 유행이나 화제에 편승하지 않는 진정한 ‘모던 클래식’의 전형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기회가 된다면 감독의 다른 작품들 역시 일견해보기를 추천한다.

현대일본을 대표하는 여성감독


㈜엣나인필름

㈜엣나인필름


한국 관객에게도 친숙한 현대 일본영화의 작가 감독으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하마구치 류스케가 대표적이다. <멋진 세계>를 연출한 여성감독 니시카와 미와 역시 이중 한명으로 꼽힌다.

니시카와 미와는 1974년 히로시마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 제1문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에 조감독으로 참여한 <원더풀 라이프>로 인연을 맺게 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적극적인 지지에 힘입어 감독의 길에 들어섰다. 문학 전공자답게 연출뿐 아니라 시나리오 작업을 직접 하며, 소설가로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2003년 발표한 첫 장편 데뷔작 <산딸기>는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기만과 불신으로 서서히 붕괴하는 한가족의 균열을 씁쓸하지만 조소 어린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제58회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의 각본상을 시작으로 그해 각종 영화상을 휩쓸며 단번에 주목받는 감독이 됐다.

두 번째 장편 <유레루>(2006)는 제59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됐다. 한국에 처음 소개된 그의 작품이기도 하다. 마음 깊은 곳에 숨겨왔던 질투와 시기로 반목하는 모순된 형제애를 조용하지만 격한 에너지로 담아낸 작품이다.

이후 발표한 <우리 의사 선생님>(2009), <꿈팔이 부부 사기단>(2012), <아주 긴 변명>(2016) 같은 작품들 역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인물들과 소소한 감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범상치 않은 사건을 그려낸다.

따뜻한 인간애와 적절한 거리 두기로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어느새 중견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건실히 다지고 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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