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경찰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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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7일 국가경찰위원회 회의에 김부겸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이 제시한 안건이 올라왔다. 경찰위원회는 경찰의 주요정책과 경찰 업무 발전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다.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경찰법)’에 근거한다.

권만호 경기남부청 직장협의회 대표가 지난 7월 13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서 경찰국 신설 추진을 반대하며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 성동훈 기자

권만호 경기남부청 직장협의회 대표가 지난 7월 13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서 경찰국 신설 추진을 반대하며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 성동훈 기자

김 전 장관은 ‘법질서 및 경찰 공권력 확립 대책’, ‘경찰의 공직기강과 인사제도 개선 방안’을 회의 안건으로 부쳤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장 임명제청 동의안을 제외하고 별도 안건을 경찰위원회에 부의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당시 대법원장 차량을 대상으로 한 인화물질 투척 사건, 유성기업 구금·폭행 사건 등이 잇따라 발생한 데 따른 조치였다.

행안부 장관의 안건 부의는 경찰법에 명시된 권한이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법 취지상 행안부 장관이 치안 현장의 업무와 관련해 직접 지시할 수 없기 때문에 경찰위원회에 관련 안건을 부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위원회는 두 안건을 수정 가결했다. 행안부는 당시 경찰위원회의 성격을 두고 “행안부 소속 합의제 행정기관”이라고 규정했다. “주요 치안정책에 대한 심의·의결을 통해 경찰의 정치적 중립과 민주성·공정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됐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경찰 사무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경찰위원회의 위상을 보여준 대표적인 장면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위원회를 “행안부 장관의 자문기구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이런 인식 아래 행안부는 지난 8월 2일 경찰국을 정식 출범시켰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장을 지휘하는 내용이 담긴 ‘지휘규칙’도 새로 만들었다. 근거는 대통령령과 행안부령이다. 행안부는 “장관의 법률상의 책임과 권한을 수행하기 위한 조치”라며 정당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경찰을 장악하려는 의도라는 비판이 거세다. 대통령령에 근거한 경찰국 신설 등은 정부조직법 등의 법률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졸속’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행안부의 ‘경찰제도 개선 자문위원회’가 지난 6월 권고안을 발표한 뒤 한 달 반 만에 조치가 완료됐고, 입법예고 기간도 나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위원회를 ‘패싱·무력화’하고, 광범위한 인사권 행사를 통해 경찰을 통제하겠다는 목적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다. 치안은 물론 수사 업무에도 장관의 영향력이 미칠 것이란 우려가 따라붙는다.

행정지원인가, 통제인가

“경찰국 신설은 그간 역대 정부에서 비공식적으로 운영하던 경찰 통제 방식에서 벗어나 법치 시스템을 갖춤으로써 경찰 관련 국정운영을 정상화한다는 의미가 있다.” 행안부가 경찰국 출범 보도자료에서 밝힌 내용이다.

경찰국의 관장 업무 중 눈에 띄는 부분은 두가지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의 중요 정책 수립과 관련해 경찰청장을 지휘·감독하는 사항, 총경 이상 경찰관 임용에 관한 행안부 장관의 인사제청권 행사 사항 등이다. 지휘규칙의 핵심은 ‘법령 제·개정이 필요한 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경찰청장은 행안부 장관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이다. 대통령·총리·장관의 지시사항에 대한 추진계획과 이행실적도 보고토록 했다.

이에 따라 경찰국 내에 총괄지원과, 인사지원과, 자치경찰지원과 등 3개 과를 뒀다. 총 16명으로 구성되며 현직 경찰 12명을 배치했다. 초대 경찰국장에는 김순호 치안감을 임명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출범 당일 사무실을 찾아 “경찰국 파이팅”을 외치기도 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8월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경찰국에서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경찰국은 이날 정식 출범했다. / 이준헌 기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8월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경찰국에서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경찰국은 이날 정식 출범했다. / 이준헌 기자

행안부는 “장관이 치안 사무를 관장할 수 있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다만 이 장관은 “경찰국은 치안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조직”이라고 주장한다. “치안 사무를 직접 수행하지 않더라도 경찰청의 업무가 적절히 수행되고 있는지를 지휘·감독할 책임과 권한이 장관한테 있다”고 말한다.

“말장난”이라는 반박이 나온다. 우선 절차적으로 행안부의 경찰국과 지휘규칙은 정부조직법 위반이라는 지적이다. 정부조직법에는 행안부 장관의 사무에 ‘치안’이나 ‘경찰’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 경찰이 내무부 소속 치안본부로 존재할 당시 인권 유린 사건 등이 빈번하자, 1991년 경찰법을 제정하면서 내무부 장관의 소관 업무에서 치안을 삭제했다. 대신 외부 인사로 구성된 경찰위원회가 경찰의 주요 정책 등을 심의·의결토록 하면서 견제·통제하게 했다. 이런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조치라는 비판이다.

내용 면에서도 경찰국과 지휘규칙은 행안부 장관이 치안 사무에 관여하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중요 정책 수립을 두고 경찰청장을 지휘·감독하겠다는 점, 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행안부 장관의 승인을 받게 한 점 등이 그렇다.

행안부 장관이 그간 형식적 절차에 그쳤던 인사제청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겠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행안부 장관은 법에 따라 총경 이상의 인사에서 제청권을 갖는다. 총경 승진 대상자인 중간관리자급 경정부터 대상이 된다.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한다.

경찰국에서 인사제청 업무를 담당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경찰청장의 추천권을 무력화하고 장관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하려는 것이란 의심을 사고 있다. 행안부 장관이 제청권을 빙자해 경찰 고위직의 실질적인 인사권을 주무르면, 경찰 조직 운용을 통제·장악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 장관은 치안정감 승진 대상자, 경찰청장 후보자들을 만나 ‘사전 면접’ 논란이 일었다. 또 “추천권과 제청권은 차원이 다르다. 추천과 다르게 제청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의 말이다. “행안부에 경찰국을 만들어서 업무를 보는 것 자체가 치안 업무가 되는 것이다. 핵심은 인사다. 중간간부급 경찰들이 현장을 보고 일하기보다 행안부의 눈치만 보게 될 것이다. 경찰국은 지원부서가 아니라 지휘·감독·통제 부서로 봐야 한다. 경찰의 중요정책의 수립과 기본계획 등은 경찰국이 아니라 경찰위원회의 업무다.”

행안부 내 경찰국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미 경찰을 행안부에 예속시키는 효과를 낸다는 평가도 나온다. 권력의 지근거리에 있는 경찰국이 경찰 내 핵심 요직으로 자리 잡을 것이고, 경찰국은 승진이 보장되는 자리가 될 것이란 얘기다. 행안부에 줄을 대기 위해 애쓰는 장면이 펼쳐질 수 있다. 자연스럽게 경찰청장 등 경찰 지휘부의 조직 장악력도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허수아비 청장’, ‘식물 청장’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찰위원회 패싱?

행안부와 경찰위원회 사이 관계, 권한을 두고 혼선과 갈등도 예상된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 업무의 기본계획을 사전 승인토록 했기 때문에 경찰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한 내용을 행안부가 뒤집을 여지가 있다. 이상민 장관이 경찰위원회를 ‘자문기구’로 인식하는 점도 이런 관측에 무게를 더한다.

경찰위원회는 경찰국이 출범한 당일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유감을 표명했다. 경찰위원회는 경찰국 등의 제도가 시행되는 과정에서 치안 사무를 수행하는 것은 아닌지, 장관의 법령상 권한을 필요·최소한의 범위에서만 행사하는지, 경찰청장의 인사 추천권을 형해화하지 않는지 등을 촘촘히 살피겠다고 밝혔다.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가 지난 7월 2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퇴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가 지난 7월 2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퇴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경찰위원회는 아울러 “경찰위는 심의·의결의 기속력을 가진 ‘합의제 의결기관’”이라고 강조했다. 행안부가 장관의 권한을 내세워 경찰위의 의결 내용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2019년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들었다.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자료와 경찰위원회 말을 종합하면, 2019년 2월 당시 자치분권위원회는 법제처에 경찰위원회가 합의제 행정기관인지 여부를 비공식적으로 문의했다. 당시 회의에는 행안부, 경찰위원회 등에서도 참석했다. 법제처는 경찰위원회가 합의제 행정기관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현재 행안부가 “경찰위원회는 자문기구”라고 평가하는 데는 이런 법제처의 해석을 근거로 한다.

법제처는 경찰위원회를 자문기구라고 판단하지도 않았다. 대신 ‘기속력 있는 합의제 의결기관’에 해당한다고 봤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위의 심의·의결 내용을 두고 재의 요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기속력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이유였다.

법제처는 천 의원이 요구한 당시 유권해석 자료를 제출하면서 총 12쪽 가운데 4쪽만 냈다. 4쪽에는 합의제 행정기관이 아닌 근거가 담겼다. 기속력 있는 합의제 의결기관이라는 판단이 담긴 부분은 제출하지 않은 것이다. 천 의원이 원본 전체를 재차 요구했으나 법제처는 거절했다. 이 때문에 법제처가 행안부의 논리에 힘을 싣기 위해 선별적으로 유리한 자료만 공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천 의원은 “이 장관의 발언을 엄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행위가 바로 ‘중대한 국기문란’”이라며 “법제처가 권력의 입맛에 따라 해석을 바꾸는 기관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파업 대책회의 주재

이와 별도로 행안부는 경찰위원회에 대한 재의 요구권도 적극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행안부 장관은 경찰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한 내용이 적정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경찰법에 명시된 권한이다. 다만 지금까지 한 번도 행사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국의 업무에도 재의 요구에 관한 사항이 포함됐다. 특정 안건이 행안부와 경찰위원회를 오가며 표류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장관이 대우조선해양 파업 당시 보여준 행보에 비춰봐도 치안 업무에 관여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이 장관은 지난 7월 20일 대우조선해양 파업과 관련한 대책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경찰청장 직무대행) 등이 참석했다.

지난 7월 22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 농성장 인근에 경찰이 배치돼 있다. / 문재원 기자

지난 7월 22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 농성장 인근에 경찰이 배치돼 있다. / 문재원 기자

경찰위원회는 이를 문제 삼았다. “치안 사무를 관장하지 않는 장관으로서 그런 회의를 주재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고 직격했다. 앞서 2018년 12월 김부겸 당시 행안부 장관이 ‘법질서 확립 대책’ 등의 안건을 경찰위원회에 회부한 것과는 대비된다.

이 장관이 주재한 회의에 서울경찰청 소속 경찰특공대장이 참석한 점도 특이하다. 경찰특공대의 본래 임무는 본래 임무는 대테러다. 특공대장이 특공대 투입과 관련한 제반 사항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 장관이 경찰특공대 투입을 검토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장관은 “폭발이나 화상이 굉장히 걱정됐기 때문에 제가 알기로는 경찰청과 소방청이 함께 모여서 브레인스토밍 (차원에서)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부인했다.

경찰청은 2019년 관련 규정을 개정해 집회·시위나 노사 갈등 현장에 경찰특공대를 원칙적으로 투입하지 않기로 했다. 2009년 용산참사 당시 경찰특공대를 투입했고, 철거민 5명과 특공대원 1명이 사망했다. 이 장관 주재 회의에서도 실무진이 용산참사를 언급하면서 특공대를 파업 현장에 보내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국? 세제실?

여권에서는 법무부 검찰국과 기획재정부 세제실을 거론하면서 행안부에도 경찰국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검찰 업무를 담당하는 검찰국과 국세청 업무를 보는 세제실은 정부조직법에 근거가 있어 절차상 문제가 없다. 또 경찰청이 1991년 내무부 소속에서 외청으로 독립한 것은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하면서 중립성 요구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경찰은 공식적으로 시민을 향해 물리력을 쓸 수 있는 기관이다. 정권에 의한 통제가 아니라 경찰위원회라는 장치를 둔 것은 이 때문이다. 검찰과 국세청과는 결이 다르다는 얘기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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