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상이 나빠지는 데 일조하는 세제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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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이 정말 부자를 위한 정당을 지지할까. 최근 이른바 ‘계급 배반 투표’가 실재하느냐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사실 계급 배반 투표는 정치학계의 오래된 주제이고, 국내외로 수많은 연구가 존재한다. 이 논의를 생산적으로만 한다면 각 정당도 상당히 얻는 게 있을 것이다. 각 정당이 자신에게 친화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왜 지지를 얻었는지 혹은 얻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7월 27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에서 윤석열 정부 세제개편안 평가와 제언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7월 27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에서 윤석열 정부 세제개편안 평가와 제언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계급 배반 투표라는 담론은 사후적 분석이란 분명한 한계가 있다. 선거결과를 두고 왜 유권자가 이런 선택을 했느냐를 분석하는 담론이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에게 왜 이런 선택을 했느냐고 묻기에 앞서 정부와 정당들에 먼저 물어야 할 것들이 있다. 왜 이런 정책을 내거나, 내지 않느냐고 말이다. 당신들이 추진하는 정책이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한지, 또한 각각의 정책이 나오기까지 무엇을 문제라고 생각하고, 어떤 것을 괜찮다고 판단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그래야 유권자의 선택을 분석하는 사후적 분석과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이런 시각으로 이번 연재에서 살펴볼 주제는 윤석열 정부가 7월 21일에 발표한 세제(세금제도) 개편안이다.

오바마의 세제 개혁안이 실패한 이유 사실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건 그리 놀랄 만한 사실이 아닐 수 있다. 정부나 정당이 정책을 발표하면서, 또는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이 발표된 정책을 논평하면서 끊임없이 왜곡하기 때문이다. 미국 오바마 정부가 2015년 추진하다 실패했던 ‘529 대학 저축 플랜’의 개혁안이 대표적이다. 고소득층에 유리한 세제 혜택을 축소하려던 이 개혁안은 보수인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주류 인사들의 반대로 좌절됐다. 민주당의 당시 하원 원내대표 낸시 펠로시가 직접 오바마 대통령을 설득한 일화가 유명하다. 민주당 인사들은 이 세제 개혁안이 “중산층에게 피해가 간다”고 주장했다. ‘중산층을 위한 행동’으로 둔갑한 ‘고소득층을 위한 반대’는 금세 여론의 호응을 얻었다. 결국 오바마는 세제 개혁안을 철회했다. 이 사례를 두고 브루킹스연구소의 연구원 리처드 리브스는 상위 1% 계층이 아닌, 상위 20% 계층이 불평등 심화의 주범이란 주장을 담아 2017년 <20 vs 80의 사회>라는 책을 펴냈다. 민주당의 주류 인사들조차 상위 20% 계층의 이익에 복무한다는 게 이 책의 지적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기획재정부도 이때의 미국 민주당과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8월 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 출석해 지난달 발표된 세제 개편안이 부자 감세가 아니고, 오히려 “저소득층이 더 큰 수혜를 입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번 세제 개편안이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한지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소득세는 과세표준 구간을 조정하고, 식대 비과세 한도를 확대했다. 소득세는 소득구간별로 다른 세율이 적용되는데, 이 구간을 조정했다는 의미다. 6%의 세율이 적용되는 소득구간을 기존 연 1200만원 소득 이하에서 1400만원으로, 15%의 세율이 적용되는 구간을 기존 1200만~4600만원 이하에서 1400만~5000만원 이하로 변경했다. 기획재정부는 이 개정의 이유를 “서민·중산층 세 부담 완화”라고 보도자료에 적시했다. 정부는 세제 개편안에서 소득세 부문에서만 2023년 3조5000억원의 세수가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소득 많을수록 더 많은 혜택” 추경호 부총리가 “저소득층이 더 큰 수혜를 입는다”고 자신 있게 발언한 근거는 ‘세제 개편안 문답 자료’에 나온다. 총급여 3000만원인 소득계층은 이런저런 공제를 제외하면 ‘세금이 부과되는 기준소득’인 ‘과세표준’이 평균적으로 1400만원이고, 여기에 부과되는 세금은 30만원에서 22만원으로 기존보다 27%나 줄어든다. 총급여 7800만원인 소득계층은 530만원의 세금을 내다가 476만원을 내게 돼 5.9% 줄어든다고 밝혔다. 감면액의 차이보다는 감소율에 집중해 27%(감면액 8만원)가 5.9%(감면액 54만원)보다 크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감세액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만 따지면 저소득층엔 적게 감세해도 효과가 크다는 기적의 논리가 탄생한다.

오히려 이번 소득세 개편의 의미는 연 소득 8000만원을 넘겨야만 최대한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번 개편에서 최대한의 혜택인 52만원의 감면을 누리려면 과세표준이 5000만원 이상이어야 한다. 2020년 종합소득과 근로소득을 합친 자료를 기준으로 과세표준이 5000만원을 넘으려면 연 소득이 7800만원 이상이어야 한다. 매년 계층별 소득금액과 감면액이 조금씩 늘어나기 때문에 올해엔 이 기준이 연 소득 8000만원을 넘길 것이다.

다시 말해 소득이 적을수록 적게, 많을수록 많은 혜택을 받는 게 이번 세제 개편의 효과다. 이런 정책을 발표하고서 그 취지를 “서민·중산층 세 부담 완화”라고 하는 것은 기만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가난한 유권자에게 왜 부자 정당에 투표했느냐고 묻기 전에 정부에게 왜 부자를 위한 정책을 발표하면서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책”이라고 기만하는지를 따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보도자료에 명시된 세제 개편의 취지 역시 “소득이 많을수록 더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해”로 바뀌어야 한다.

식대 비과세 한도를 늘리는 개편도 마찬가지다. 식사 비용을 과세하는 소득에서 제외하는 식대 비과세 한도를 월 10만원에서 월 20만원으로 바꾸는 게 이번 개편의 골자다. 비과세 한도가 늘어날수록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고소득자의 혜택이 커진다. 물론 과세표준 구간과 식대 비과세 한도가 오랫동안 고정돼 있던 것이 사실상의 증세 조치였다는 지적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를 조정하는 것에 앞서 고소득일수록 더 큰 혜택을 얻는 비과세·감면 제도를 대거 정비해 세금 제도를 공정하고 단순하게 만드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정책과 딜레마 4편 참조).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7)세상이 나빠지는 데 일조하는 세제 개편

대기업·다주택자에 유리한 세제 개편 소득세는 소득이 많을수록 혜택이 비례적으로 많아지는 개편인 반면 법인세와 부동산, 금융자산 등에 부과되는 자산세 개편은 아예 대기업, 다주택자, 금융자산가만 특정해 혜택을 주는 ‘타깃형 감면책’이다. 법인세는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했다. 윤석열 정부는 전임 문재인 정부가 22%에서 25%로 올린 것을 정상화했다는 취지라고 밝혔지만, 문재인 정부는 법인세율을 인상하는 대신에 통합투자세액공제를 도입해 실효세율을 크게 낮췄다. 게다가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기업은 공제를 제외한 이익이 3000억원이 넘어야 하고,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구간도 3000억원 이상의 이익에 해당한다. 이 정도 이익을 거두는 기업이 얼마나 될까. 국회 예산정책처가 ‘2022 조세 수첩’에 기재한 내용에 따르면 법인세 신고법인 83만8000개 가운데 80여개뿐이다. 사실상 25%의 세율은 아주 일부의 대기업에만, 또 이들의 이익 가운데 3000억원이 넘는 금액에만 적용된 셈이다.

종합부동산세의 경우 전반적으로 세율을 인하하고, 다주택자에게 무겁게 과세하던 제도들을 모두 걷어내는 안이 이번 세제개편안에 담겼다. 다주택 중과(무거운 과세) 제도는 지난해 처음 부과되고서 보수정당뿐 아니라 민주당 내에서도 반대의견이 나왔던 사안이다. 특히 가격이 20억원인 집 한채보다 세채 합쳐 10억원인 집값에 더 무겁게 과세하는 이 제도가 비합리적이고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문재인 정부가 이런 사실을 모르고 발표한 정책은 아니었다. 2019년 12월 다주택 중과 정책 발표 당시엔 대출규제 등 다른 정책의 효과가 없자, 어쩔 수 없이 동원한 특단의 대책이었다. 3주택자 이상의 경우 세율을 3.6~6.0%까지 적용하는 놀라운 수준의 대책이었지만, 발표 당시에도 그다지 논란이 되지 않았다. 시장에서도 다주택자의 매물이 나오지 않는 기이한 상황이 지속됐다.

그러다가 1년이 넘는 유예기간을 지나 2021년에 부과되기 시작하자, 보수언론은 물론 일부 진보적인 지식인들에게조차 회의론이 나오기 시작했고, 정권이 교체되고서 이번에 해당 제도가 폐지됐다. 아마도 매물을 내놓지 않았던 다주택자들은 조용히 그들의 이익에 복무해줄 세력으로 권력 교체를 꾀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주식 양도소득세의 경우 대통령선거 당시에 아예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지만, 이번엔 과세 대상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기존 주식 종목당 10억원 이상에서 종목당 100억원 이상 주주에게만 과세하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상당수의 고액 자산가들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됐다. 어쩌면 이번 세제 개편에서 최대의 수혜를 입은 이는 수백억원 이상의 주식 자산을 보유하고서 매년 수억원 이상의 수익을 얻지만, 종목당 100억원 이하의 주식을 보유하던 자산가들과 재벌 가문의 일원들일 것이다. 이들은 이번 세제 개편으로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게 됐다.

정치의 역주행을 멈추려면 이번 세제 개편의 진정한 문제는 단순히 고소득자, 대기업, 자산가, 다주택자들이 이익을 얻는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외면하는 것을 넘어 오히려 문제가 악화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는 게 진정한 문제다. 한국의 자살률과 출생률은 각각 세계 최대와 최저 수준을 차지한 지 오래됐다. 자살과 출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낮은 수준의 복지와 강도 높은 경쟁 압박 등이 문제라는 점을 부인할 이는 거의 없다. 소득불평등도 악화 일로를 걷다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의 영향으로 일부 완화됐지만, 같은 시기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해 피케티 지수 등으로 표현되는 자산불평등은 사상 최악의 수준에 이르렀다. 이게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는 한국의 현실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결국 안전망 강화다. 한국의 복지 지출 수준은 빠르게 늘고 있으나, 여전히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현저히 부족한 편이다. 가장 최근의 국제비교 통계인 2019년 기준으로 한국의 공공사회복지지출 규모는 GDP 대비 12.2%로 OECD 회원국 평균인 20.0%에 현저히 미치지 못한다.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복지를 확충하지 않아도 고령층의 연금과 의료비 등의 폭증으로 복지 지출이 크게 늘어날 예정이다. 재정을 통한 선제적 대응은 해본 적이 없는데다 이젠 재정을 동원하기도 쉽지 않은 구조적 악순환을 목전에 두고 있는 셈이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면 ‘누진적 보편증세’를 통한 안전망 강화가 기반이 돼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핀셋 증세’만 하다 끝났고, 윤석열 정부에선 본격적으로 ‘역진적 특혜 감세’가 시작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정부에 물어야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이런 정책을 펴느냐고 말이다.

<윤형중 정책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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