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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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 시간 가족 단체대화방에서 어머니의 메시지를 적당히 무시했다. “아들, 베란다에 풍란꽃이 예쁘게 폈다”, “여보, 꽃이 활짝 폈어요.” 어떤 때는 “예쁘네”라고 답했지만 때로는 답장하지 않았다. 메시지와 함께 전송된 파일을 눌러본 적도 별로 없다. 그저 ‘또 꽃 사진이구나’ 생각할 뿐이었다. 어차피 무슨 꽃인지도 잘 모르니까.

어머니가 카카오톡의 가족 단체대화방에 여러 날에 걸쳐 보낸 메시지

어머니가 카카오톡의 가족 단체대화방에 여러 날에 걸쳐 보낸 메시지

어머니의 말은 대체로 수수께끼 같았고 때로 번거로웠다. 그는 “아로니아 가루 보냈다”며 요구르트에 넣어 먹으라는데, 요구르트를 챙겨 먹어본 일이 있어야 가루를 넣든 말든 할 것이었다. “홍삼 보냈으니 매일 챙겨 먹어라”는 충고는 아침마다 허둥대는 인생엔 큰 의미가 없었다. ‘화분(꽃가루)’은 대체 왜 보내주는 걸까. 허리 건강이 중요하다며 그가 권한 유튜브 채널 <정선근TV>의 영상은 거꾸로 내가 부모에게 일러줘야 할 무엇에 가까워 보였다.

대전 고향집의 TV 앞에서 그는 매일 노트에 무언가를 휘갈겨 썼다. <나는 몸신이다>, <아궁이> 같은,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의 시청 기록이었다. 나는 “쓸데없이 걱정만 키운다”며 그의 노력을 부정했다. 외려 짓궂게 KBS <위기탈출 넘버원>을 두고 누리꾼들이 만든 ‘밈’을 보여드리곤 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순간 후드에 시야가 가려 차에 치였다거나, 선글라스를 끼고 길을 걷다가 앞을 보지 못해 계단에서 굴러 죽었다는 황당한 사연에 그가 머쓱하게 웃던 기억이 난다.

생각이 바뀐 건 2020년,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다. 가족 모두가 집을 비운 상황에서 어머니가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전화를 걸자 아버지는 바로 119에 신고를 했다 한다. 다행히 어머니는 무사히 수술을 마쳤고 부작용도 크지 않다. 구급대원이 도착하기 전, 현관문을 열어둔 채 쓰러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런 기지를 발휘한 거야?” 물었다. 어머니의 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방송에서 봤어. 뇌출혈이 의심되면 문을 열어두라던데.”

그후 어머니가 보낸 낯선 단어를 발음하는 습관이 생겼다. 동양란, 호야꽃, 군자란 같은 꽃의 이름이다. 만개한 꽃은 그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조짐’이어서, 어머니께 한 번씩 “행복한 하루가 될 것 같다”고 답한다. 포털사이트에서 꽃의 겉모습과 꽃말을 검색해본다. 그가 부르는 이름은 그때그때 만개한 꽃들, 저마다 지고 피는 계절이 다르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가족과 어딜 가든 “예쁘다”는 말을 반복할 때 그가 자칫 잃어버릴까 두려워했을 생의 기쁨을 확인한다.

어머니가 스마트폰 한 화면에 담기 어려울 만큼 방송 내용을 언급할 때는 ‘전체보기’를 눌러 찬찬히 읽는다. 남편과 두 아들 걱정으로 기록한 방송이 돌고돌아 그녀를 살렸다는 사실에 ‘기적’이란 단어를 붙이는 것이 부끄럽다. 대신 침대 머리 맡에서 <식물학자의 노트> 같은 제목의 책 몇 권을 슬며시 쥐어 본다. 다 읽고 나면 어머니가 보는 세상을 조금은 알게 될까.

어느샌가 거리에 정체를 아는 꽃은 하나둘 늘어가는데,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무엇인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올여름엔 어머니와 좋아하는 꽃 이야기를 해야겠다.

<조문희 정치부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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