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에너지 시민’이 나서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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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전환 운동·개인 RE100 등 움직임

“정부, 재생에너지 컨트롤타워 세워야” 주장도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한국 역시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한국 온실가스 배출량 중 전력 생산과 산업 분야가 각각 35%씩을 차지한다. 나머지 30%는 건물 냉난방과 수송, 농축산업 분야 등에서 나온다.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지키려면 전력 생산과 산업 부문에서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7.5%로 OECD 국가 중 27년째 꼴찌에 머물고 있다. 반면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세계 5위권을 차지한다. 한국을 ‘기후악당’이라고 불러도 변명할 여지가 별로 없다.

서울 동작구 상도3동에 있는 대륙서점 안에 기후위기를 주제로 한 책이 전시되어 있다. / 주영재 기자

서울 동작구 상도3동에 있는 대륙서점 안에 기후위기를 주제로 한 책이 전시되어 있다. / 주영재 기자

태양광과 풍력발전을 빠르게 확충해야 하지만 국내에선 재생에너지 보급은 더디기만 하다. 입지가 없어서가 아니다. 에너지전환에 대한 인식 부족과 지난한 인허가 과정, 이격거리 규제 등이 가로막고 있어서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지지하는 에너지 시민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재생에너지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에너지 시민이 전환 이끈다

서울 동작구 상도3동과 4동을 묶어 ‘성대골’이라 부른다. 신대방삼거리와 장승배기역 사이로 난 성대로를 끼고 두 동이 나뉜다. 성대로의 얕은 오르막길을 300m쯤 올라가면 상도3동에 속한 오른편에 ‘대륙서점’이 있다. 35년 역사를 가진 서점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다 성대골 마을기업 ‘마을닷살림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에너지슈퍼마’(ㅅ 받침 대신 에너지의 영문자와 모양이 같은 ㅌ을 썼다)과 합쳐져 ‘성대골 전환센터’가 됐다. 원전과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현재의 에너지 소비를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바꾸려는 이곳 주민들의 ‘에너지전환’ 운동 거점이다.

성대골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2011년부터 마을 차원의 에너지전환 운동을 시작했다. 그 중심에 2013년 생긴 마을닷살림협동조합을 비롯한 4곳의 협동조합이 있다. 가장 먼저 생긴 마을닷살림협동조합은 에너지전환을 주제로 한 교육사업과 마을축제 등 성대골 에너지 운동의 맏이 역할을 한다. 2016년 2월 ‘둘째’인 국사봉중학교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다.

2018년 9월에는 성대골에너지협동조합이 출범했다. 동작구 곳곳에 흩어진 소규모 옥상 태양광발전시설이 생산한 전기를 모아 전력 중개시장에 판매하는 가상발전소 사업을 하고 있다. 발전 수익을 지역 주민과 나누는 이익 공유형 재생에너지 사업이다. 시민들이 전력회사의 주인이 되는 셈이다. 2021년 만든 네 번째 협동조합은 건물 에너지 효율 개선을 위한 활동을 주로 한다. 여기에 신협을 더해 5개의 협동조합이 협의체를 구성해 활동한다.

협동조합은 탄소중립을 위한 싸움에 동참할 동지를 규합하는 통로가 됐다. 에너지전환 운동의 대의를 전파하고, 시민을 에너지전환의 이해당사자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성대골의 에너지전환 운동을 이끌어온 김소영 마을닷살림협동조합 대표는 “기후위기는 비상사태라고 표현할 정도로 전시(戰時)와 흡사하다. 위기의 시대엔 결국 개개인이 생존을 위해 행동을 취해야 한다. 개인과 마을, 국가 단위로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구조를 짜야 한다”고 말했다.

대륙서점 안의 칠판에 태양광발전의 장점을 소개하는 글이 적혀 있다. / 주영재 기자

대륙서점 안의 칠판에 태양광발전의 장점을 소개하는 글이 적혀 있다. / 주영재 기자

김 대표는 기후위기의 가장 큰 이해당사자가 청소년이라는 점에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생태 전환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탄소중립을 주제로 정규 과목을 개설하고, 에너지전환과 탄소 감축·흡수, 기후적응을 주제로 수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정치와 자본에 기대기보다는 시민이 에너지전환의 중요성을 깨닫고, 소비자와 유권자로서 선택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면서 “결국 당사자인 시민이 거의 준(準)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전환은 참여에서 시작

일찍부터 생태·에너지전환 교육을 해온 국사봉중학교에서는 다수의 학생이 청소년 기후운동에 참여해 2019년부터 청와대 행진 등을 하며 기후위기 대응의 시급함을 환기시켰다. 서울시 교육청과의 간담회 자리도 이끌어냈다.

국사봉중학교사회적협동조합은 생태전환 교육을 목표로 만들어진 만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생태 교육과 학생들의 환경 동아리 활동이 활발하다. 최소옥 교사 조합원은 “학교에서 생태·에너지 교육 과정을 운영하면서 이를 지속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으로 학교 협동조합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은 교육과정과 연계해 마을과 함께 다양한 생태에너지 교육 과정을 만들고, 마을 생태축제를 연다. 단열창과 LED 등으로 학교시설을 교체해 건물의 에너지 소비를 효율화하는 활동도 한다. 협동조합이 교내에 생태전환 카페와 매점도 운영 중이다.

2018년부터는 학교 옥상에 84.6㎾ 규모의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해 직접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미란 국사봉중학교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한전이나 외부의 협동조합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이 직접 협동조합을 꾸려 태양광발전시설을 소유하고 에너지 사업을 하는 곳은 우리가 국내에서 유일하다”면서 “협동조합의 4주체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와 마을이라 이사 10명 중 3명을 학생 이사로 선임해 학생들이 직접 조합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에너지 전환의 중요성을 배울 뿐만 아니라, 협동조합 운영과 민주주의 의사결정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성대골에서는 상인회도 재생에너지 보급에 적극적이다. 성대골에너지협동조합의 주축이 바로 상인들이다. 성대전통시장 상인회에 속한 상인의 40%가 건물주를 설득해 입주한 옥상에 태양광발전 시설을 설치했다. 성대골에너지협동조합 이사장이기도 한 윤혁 상인회 회장은 “미세먼지나 황사가 심하면 대형마트에 가지 전통시장을 누가 오겠냐”면서 “기후위기를 막는 데 동참하자는 의미에서 건물주를 설득하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전기요금을 올리고, 탄소세도 도입해 에너지전환을 위한 동력을 만들고 에너지 취약계층을 지원해줘야 한다”면서 “지금 서울시는 태양광의 역할을 대신할 만한 에너지원을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것인지도 밝히지 않고 태양광이 나쁘다고만 말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소영 마을닷살림협동조합 대표(왼쪽)와 윤혁 성대골에너지협동조합 이사장(성대전통시장 상인회장)이 서울 성대전통시장 내 신협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발전소 앞에 서 있다. / 주영재 기자

김소영 마을닷살림협동조합 대표(왼쪽)와 윤혁 성대골에너지협동조합 이사장(성대전통시장 상인회장)이 서울 성대전통시장 내 신협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발전소 앞에 서 있다. / 주영재 기자

개인도 RE100 나선다

글로벌 기업들이 전력 사용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한다는 RE100 운동을 하듯, 개인도 자기가 쓰는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단독주택에 살면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지만, 그런 환경을 갖추지 않은 가정도 많다. 이 경우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에 투자해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고, 판매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에너지 스타트업 H에너지가 제공하는 ‘우리집RE100’과 같은 서비스가 대표적인 예다. H에너지의 모햇(모두의 햇살) 플랫폼을 이용해 일반 시민이 소규모 옥상 태양광발전소에 투자하고, 조합원으로 참여해 분기별로 발전 수익을 배당받을 수 있다.

방혜빈씨는 기후위기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방안이 없을까 고민하다 모햇에 조합원으로 참여한 경우다. 방씨는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느끼면서 개인적으로 3개월 혹은 6개월은 옷을 구매하지 않는다거나 일주일 3회 이상은 지출을 하지 않는 개인 프로젝트를 했는데 그것도 부족하다고 느껴서 궁리하다 보니 실질적으로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재생에너지 직접 생산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참여 이유를 밝혔다.

지금은 ‘에너지 시민’이 나서야 할 때

1000만원을 투자한 후 발전 설비를 설치할 충분한 자금이 모일 때까지는 예치이자를 받고, 실제 발전을 시작한 후에는 분기별로 세후 16만원이 조금 넘는 배당을 받는다고 했다. 그는 “내가 에너지 생산의 주체가 된다는 경험을 오롯이 하면서 확실한 친환경 활동을 한다는 뿌듯함이 크다”면서 “조합을 만들어 내 의결권을 갖고 의사를 표하는 민주적 활동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고, 좋은 일을 하는데 수익금도 있어서 더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친환경 활동이라면 불편하고 아껴야 한다고만 생각하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를 판매해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면 의심부터 한다”면서 “정부가 이런 사업이 더 활성화될 수 있도록 알리고, 정책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방씨는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탄소국경세가 도입될 경우 기업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고, 이는 곧 국민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탄소중립 실현은 빠르면 빠를수록 유리하다”면서 “재생에너지 생산에 참여하는 개인이 늘수록 에너지 전환의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생산에 참여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그만큼 재생에너지를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커지게 된다. 이미 독일과 덴마크 등의 주민참여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에서 확인된 바 있다. 덴마크는 전체 재생에너지 중 약 60%가 시민들이 직접 투자한 발전소다. 독일은 약 42%로 그 규모가 약 51GW에 이른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투자금액만 약 160조원에 이른다. 약 800만명의 독일 국민이 재생에너지 투자로 이익을 얻고 있다. 자발적 투자 과정에서 에너지전환의 필요성을 깨달은 시민들은 에너지 전환의 강력한 지지세력으로 부상하게 된다. 독일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를 요구한 연립정권이 들어설 수 있었던 토대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정치인은 여론에 따라가는데 재생에너지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면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기 어렵다”면서 “결국 시민의 수용성이 중요한데, 이는 무엇보다 ‘해보니 좋다’라는 성공사례가 좌우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 태양광과 풍력발전을 설치해보니 생각보다 환경 피해가 크지 않고, 농사와 어업도 여전히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개인 혹은 지역에 발전수익금이 돌아와 이익이 된다, 돈이 벌린다는 걸 체감해야 한다. 3㎾ 정도의 가정용 태양광을 설치한 사람들은 누진요금을 맞지 않고, 에어컨을 틀어도 1만원 이상은 내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울산시민가상발전소 모햇발전소 18호기의 전경 / H에너지 제공

울산시민가상발전소 모햇발전소 18호기의 전경 / H에너지 제공

재생에너지 전담기구 만들어야

홍 교수는 정부가 이런 변화를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부가 이격거리 등 재생에너지 설치와 관련한 규제를 지자체에 위임한 건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석 위원은 “영국의 육상풍력이 굉장히 빠르게 증가하다 2016년 보수당 정부가 육상풍력의 인허가권을 지자체에 일임하면서 웨일스 지역의 경우 사실상 육상풍력 신규 설치가 중단됐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 선진국이나 다 비슷하게 지자체가 인허가를 처리할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자체가 찬성하든 반대하든 상관없이 인허가 기간이 3~5년으로 크게 늘어나게 된다”면서 “보수당 정부의 의도성이 다분히 강했는데, 이처럼 정부가 육상풍력을 죽이고 싶다면 인허가권을 지자체에 넘기면 된다”고 말했다. 원자력발전이나 화력발전 사업의 경우 정부(산업통상자원부)가 전원개발특례법에 따라 한수원 등 발전사업자를 대신해 모든 행정처리를 일사불란하게 해준다. 석 위원은 “국내는 영국 정부의 그런 의도성과 상관없이 풍력발전과 관련해 지자체에 사실상 일임을 했는데, 광역자치단체로 가도 인허가 담당공무원이 한두명에 불과하다”면서 “이런 상황에서의 풍력 사업은 영국과 같은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준공된 국내 풍력발전량은 77.7㎿에 불과하다. 2020년 풍력발전 보급실적 160.05㎿(준공완료 기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태양광발전도 연간 신규 설치용량이 2020년 4.6GW로 정점을 찍은 후 2021년부터 줄기 시작했다. 태양광 신규 허가는 2년 사이 10분의 1로 줄었다.

유럽에서는 주민들이 주도해 재생에너지 사업에 투자하면 초기 투자금과 투자 수익에 대한 소득 공제 등 세제 혜택을 준다. 우리는 조세특례제한법에서 초기 스타트업 엔젤 투자 시 투자금액 규모에 따라 차등화된 세액 공제 혜택을 제공한다. 투자가 실패할 위험이 있지만 스타트업 활성화로 국가 산업 경쟁력이 높아지는 편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논리로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 보급이 중요하다고 인정한다면, 시민과 기업의 재생에너지 투자와 투자 수익에 세금 혜택을 줄 필요도 있다.

홍종호 교수는 “지자체는 기업이 주민을 다 설득해야 허가를 내줄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 기업이 할 일이 아니다”면서 “주민이 사업에 참여한다면 지분투자나 협동조합의 방식일 수 있는데 여러 방식 중 지역 특성과 선호에 맞게 주민참여가 이뤄지도록 정부 주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에서는 빠르면 6개월이면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착공된다. 시장과 산업의 성장 속도, 그리고 경쟁력이 우리와 비교가 안 되게 커지고 있다”면서 “부처별 이해관계가 다른데 정부가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차이를 조정하는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야지 이렇게 머뭇거리고 눈치 볼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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