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신에게 도전한 아라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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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과 자존감이 하늘을 찌른다는 건 좋은 일이다. 넘치는 자신감으로 열정적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감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스스로 잘 나간다는 생각 때문에 제대로 상황 파악을 못 하고 행동하면 걷잡을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실 잣는 여인들 (아라크네의 우화)’ (1644~1648, 캔버스에 유채, 167X252,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실 잣는 여인들 (아라크네의 우화)’ (1644~1648, 캔버스에 유채, 167X252,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지나친 자신감으로 신에게 도전하고, 이에 대해 대가를 치른 여인이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아라크네다. 리디아 출신의 아라크네는 직조기술이 뛰어나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직조기술이 최고라고 여겨 아테나 여신에게 도전한다.

아테나 여신은 노파로 변장한 뒤 아라크네에게 도전을 취소하라고 충고하지만 아라크네는 오히려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다. 이에 분노한 아테나 여신은 그의 도전을 받아들여 직조 시합을 벌인다.

이 시합에서 아테나 여신은 감히 신들에게 도전한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가혹한 최후를, 아라크네는 신들의 애정 행각을 직조했다. 아테나 여신은 아라크네의 직조를 살펴봤지만, 그 어떤 결점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아라크네를 이기지 못했다고 생각한 아테나 여신은 화가 나 짠 직조를 갈기갈기 찢으면서 베틀의 북으로 그를 후려쳤다.

아라크네는 아테나 여신에게 두들겨 맞자 그 치욕감으로 자살한다. 아라크네의 죽음을 불쌍하게 여긴 아테나 여신은 그를 거미로 둔갑시켜 영원토록 자기가 짠 거미줄에 갇혀 지내도록 했다.

아라크네의 도전을 그린 작품이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의 ‘실 잣는 여인들(아라크네의 우화)’다.

이 작품은 상단과 하단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단 전경에 좁고 초라한 공간에서 왼쪽의 노인은 물레바퀴를 돌리고, 등을 돌리고 있는 오른쪽의 여인은 실을 감고 있다.

중앙에 있는 여자는 찌꺼기를 골라내고 양쪽의 여자들은 양털을 가져오고 있는데, 3명의 여자는 심부름꾼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바닥에 실뭉치를 깔고 앉아 있는 고양이는 어수선한 작업장임을 암시한다.

화면 상단, 계단으로 이어지는 방에는 귀족 부인들이 서서 벽에 걸려 있는 태피스트리를 바라보고 있다. 태피스트리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제우스의 애정 행각 중의 하나인 에우로페의 납치 장면으로 티치아노의 작품에서 따왔다. 이는 티치아노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들 앞에 고대식 투구를 쓰고 팔을 들어올리고 있는 여인이 아테나 여신이다. 여신 맞은편에는 젊은 아라크네가 서 있다.

화면 하단, 실을 감고 있는 여인이 아라크네, 물레의 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실을 잣고 있는 늙은 여인이 변장한 아테나 여신이다.

이 작품에서 아라크네의 도전을 강조하기 위해 아라크네와 아테나를 동등하게 그렸다. 아테나 여신을 그린 상단의 장면보다 하단의 여인들을 크게 부각한 것은 신성한 노동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자신감도 상황에 맞아야 꽃을 피운다. 맞지 않으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도 있다. 특히 권위에 도전할 때는 상황 파악을 먼저 해야만 한다. 자신이 그럴 위치인가를….

<박희숙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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