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에서 존재감 드러내는 통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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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본업 아닌 ‘탈북어민 북송’ 사건 주도

치솟는 물가, 코로나19 재확산 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촉발한 국제질서 변동 역시 지정학적으로 ‘끼인’ 나라 한국을 압박하는 중이다. 대내외적 위기의 동시 발생은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한국 정부와 정치권도 위기 상황 속에 집중 대응할 대상을 찾았다. 이들이 선택한 것은 물가도 코로나19도 아닌 ‘북한’이다.

통일부가 공개한 2019년 11월 탈북어민 북송 현장 모습. 판문점을 통해 북송되는 과정에서 북한군이 팔을 붙잡고 끌고 가려 하자 탈북어민이 저항하고 있다. / 통일부 제공

통일부가 공개한 2019년 11월 탈북어민 북송 현장 모습. 판문점을 통해 북송되는 과정에서 북한군이 팔을 붙잡고 끌고 가려 하자 탈북어민이 저항하고 있다. / 통일부 제공

경제침체, 세계적인 질병보다 화급한 사안처럼 다뤄지는 ‘북한’ 문제는 3년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19년 문재인 정부 당시 발생한 이른바 ‘탈북어민 북송’ 사건이다. 해당 사건을 두고 여야 모두 열을 올린다. 매일 새로운 논평을 내고, 정부 부처들까지 나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쟁은 날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지만 사건의 본질이 변한 것은 ‘아직’ 없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 ‘인권이냐’, ‘흉악범 추방이냐’는 해석만 바뀌었다. 한국의 정치 지형이 좌·우로 극명하게 갈린 상황에서 어느 쪽으로도 결론을 내기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단순한 정쟁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시각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 초반까지 하락했다는 점’, ‘사적 채용 논란이 불거졌다는 점’ 등까지 더해지면서 논란은 더욱 격화된다. “이슈로 이슈를 덮기 위해 3년이 지난 사건을 되살린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도 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의혹 제기와 주장은 혼란을 가중시킨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분명하게 부각되는 지점은 있다. 하나는 이번 정쟁을 주도하고 있는 통일부의 행보다.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존폐논란’까지 일었던 통일부가 본업도 아닌 영역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의문이다. ‘대담한 계획’을 말하며 북한과의 협력 가능성을 내비침과 동시에 북한을 정쟁의 도구로 활용 중이다. 정부의 대북정책이 단순한 ‘수사’인지 실효성 있는 ‘정책’인지 의문이 커져만 간다.

통일부는 왜 존재할까 “통일부는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인도지원에 관한 정책의 수립, 북한정세 분석, 통일교육·홍보, 그 밖에 통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통일부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는 설립목적이다. 통일부는 남북관계가 갖는 양면성 때문에 존재한다. 북한 문제는 남북관계라는 측면에서 ‘특수성’이 있다. 동시에 대화와 타협의 상대가 있다는 측면에서 외교적 ‘일반성’도 갖는다. 정부가 외교부와 별도로 통일부를 두고 북한 관련 대화 및 협력 업무를 맡긴 건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역시 표면적으로는 통일부의 업무를 존중하고 있다. 새 정부 대북정책인 ‘담대한 계획’은 아직 구체적 실체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되, ‘대화와 타협’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통일부는 남북 간 기존 합의를 존중한다는 이른바 ‘이어달리기’ 원칙하에 ‘인도적 지원’ 방안 등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를 두고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 7월 13일 “지난 정부들의 대북정책 성과들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의 정책을 부정하고 단절하는 과거의 실수를 결코 반복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해당 발언이 나오기 하루 전, 통일부의 행보는 이런 정책 기조나 설립목적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였다.

통일부는 지난 7월 12일 2019년 발생한 탈북어민의 북송 상황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북방한계선을 넘어 내려온 북한 어선에 있던 선원 2명을 추방했다. 이들이 선장과 선원 16명을 살해하고 도망치다 넘어온 만큼 ‘귀순’의사가 있다고 보지 않은 것이다. 국민의힘은 해당 사안을 3년여 만에 쟁점화했다.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6월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이어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도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하루 뒤인 21일, 윤 대통령이 출근길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많은 국민이 의아해한다”며 진상규명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자 7월 6일 국가정보원은 당시 탈북어민 조사를 강제로 일찍 끝냈다며 서훈 전 국정원장을 고발했다.

국민의힘→대통령→국정원→통일부→다시 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순환과정은 의혹 제기→폭로→입장번복→정치 쟁점화의 순서를 동반한다. 특히 통일부는 현장 사진 공개에 이어 지난 7월 18일 당시 상황을 촬영한 영상도 공개했다. 앞서 공개했던 사진 속에 북송 장면을 촬영 중인 인물이 있었고, 이를 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등이 영상 제출을 요구하며 존재를 확인했다는 설명이다.

통일부 스스로 만드는 ‘존폐위기’ 통일부발(發) 자료가 의혹 제기의 핵심이 되면서 통일부는 정쟁의 한가운데에 놓였다. 동시에 ‘통일부가 왜 존재하느냐’는 비판에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스스로 모순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사건이 발생한 2019년 당시 “(탈북어민의) 우리 사회 편입 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이 되고, 흉악범죄자로서 국제법상 난민으로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추방을 결정했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지난 7월 11일 조중훈 통일부 대변인은 “탈북어민 북송은 분명하게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입장을 뒤집었다. 그러면서도 판단을 뒤집을 만한 사실관계의 변화, 책임, 쇄신안 등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지난 정부의 정책을 부정하고 단절하지 않겠다”는 권 장관의 발언과도 엇박자가 생겼다. 오히려 통일부가 ‘전임 정부와의 단절’에 앞장서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는 장관의 능력 부재이거나 장관이 애초에 진의와 다른 말을 한 셈이 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권영세 통일부 장관 /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과 권영세 통일부 장관 /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통일부가 정쟁에 뛰어든 상황은 존재 목적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대북정책 주관부서가 정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일들을 폭로하는 상황은 향후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심지어 통일부는 정부 정책에 대해 옳고 그름까지 평가하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대한민국 통일부는 없고 문재인 정부의 통일부, 윤석열 정부의 통일부만 있는 것 같다”며 “평화통일에 이바지한다는 정신은 외면한 채 남남갈등, 남북갈등만 유발하면서 통일부 스스로 폐지나 축소를 향해 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정부 부처가 정쟁에 휘말리면 기관의 정책추진 동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입장번복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통일부 내부에서도 나온다. ‘국가공무원노동조합 통일부지부’는 지난 7월 19일 통일부 내부 게시판에 ‘통일부는 통일부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는 “지금에 와서 기존의 의사결정을 돌이킬 만한 상황변화가 있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이것은 단순히 입장번복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일관되고 신뢰성 있는 통일정책을 추진하는 데 악영향을 줄 것이다. 통일부가 정쟁의 도구가 아니라 남북관계의 핵심부서로서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찾아야 할 것이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결국 통일부가 힘이 없으니 이런 식의 자충수를 두는 것”이라며 “이번 사태 역시 통일부의 자체적 결정이라기보다는 실제로는 더 높은 곳에서 결정하고 통일부는 단순히 집행하는 역할만 맡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통일부를 해체하지는 않더라도 껍데기만 남는 수순”이라고 덧붙였다. 보수 정부가 들어서면 ‘통일부 폐지론’이 나오고, 진보 정부가 들어서면 ‘통일부 패싱’ 이야기가 나온다. 통일부의 정쟁 개입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다.

‘대담한 계획’은 실효성이 있을까 ‘ 탈북어민 북송’ 논란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대목은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이다. 이미 정책이 성공할 수 있는 ‘기본전제’가 비틀리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비핵화 단계에 따른 동시적이고 단계적인 상응 조치’다. 북한과의 ‘대화와 타협’은 이를 위한 필수요건이다. 권 장관 주장대로 ‘선 비핵화’가 핵심 요소가 아니라면 ‘대화의 장’ 조성은 더욱 중요해진다. 북한이 대화를 거부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가 아닌 ‘대립’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탈북어민 북송’ 사건을 두고서도 정부는 지금 모순을 만들고 있다. 윤 대통령은 모든 영역에서 “법과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정치·외교의 영역에서도 사법적 원칙을 앞세운다면 일본과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한 민관협의회 출범, 외교적 해법 모색 등은 모순이다. 해당 사안에 대해서는 이미 배상 확정판결이 났고,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현금화를 앞두고 있다. 외교적·정치적 해결법 모색은 그 자체로 꼼수가 된다.

남북관계를 사법적 잣대로 재단할 수 있느냐 역시 논란이다. 남북을 아우르는 법적 체계가 미비하다. 이 때문에 대북정책은 정치적 판단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윤석열 정부 역시 향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결정적 기회를 잡더라도 스스로 들이댄 사법적 잣대에 가로막힐 수가 있다. 정부가 대북정책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행동반경을 좁히는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북 전문가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은 총체적 모순”이라며 “정부 부처 간에도 안보실,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의 이야기가 다 다르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번 탈북어민 북송 문제만 봐도 통일부가 부처의 법적·역사적·업무적 정체성을 이해하고 나서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탈북어민 북송’ 사태가 향후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양 교수는 “남북관계가 더 악화될 것도 없다 보니 티가 나지 않지만 언젠가 남북관계를 복원할 시점이 오면 이번 사태가 비용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정 센터장은 “북한은 5년마다 바뀌는 한국 정부를 더욱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가 ‘대담한 계획’을 통해 비핵화를 이끌려면 국민통합, 국회의 초당적 협력 등이 필요한데 전(前) 정부와 싸우는 상황에선 그런 게 가능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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