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소설 속 인물은 또 다른 나…여전히 하고 싶은 얘기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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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100쇄 찍은 소설가 은희경

소설가 은희경씨(63)의 첫 장편소설이자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새의 선물>이 최근 100쇄를 찍었다. 1995년 1쇄를 찍었으니 27년 만에 이룬 영예다. <새의 선물>은 화자(話者)인 열두 살의 조숙한 소녀 진희의 시선을 통해 가족과 이웃,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담아낸 성장 소설이다. 이후에도 꾸준히 새 작품을 발표해온 은 작가는 사람 간 관계의 상투성과 그로 인한 진정한 소통의 단절을 이야기했다. 사람과 사랑에 대한 냉소를 경쾌한 농담과 시니컬한 문체로 담아냈다.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지난 7월 19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북카페에서 은희경 작가를 만났다. 머리카락을 와인색으로 물들인 모습이었다. 그는 “작가 하면 연상되는 특정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싶어 적극적으로 선택한 색상”이라고 말했다. “한때는 붉은색으로 염색한 적도 있다”고 했다. 안주하거나 고여 있는 삶 또는 사고를 거부하고 귀를 한껏 연 채 세상의 부조리에 의문부호를 표해온 작가다운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순세 살의 은희경은 27년 전 서른여섯 살 은희경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하는 질문을 품은 채 그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새의 선물> 100쇄, 소회가 어떤가요.

“100쇄를 찍게 될 줄은 정말 몰랐는데, 이 책을 27년 전에 쓴 거잖아요. 그래서 좀더 각별하게 다가와요. 27년 전 내가 던진 질문이 아직도 유용하다는 거니까요.”

-왜 <새의 선물> 독자들이 꾸준히 있다고 생각하나요.

“100쇄 기념 개정판 작업을 하면서 27년 만에 이 작품을 다시 읽어봤어요. 너무 직설적으로, 내가 마치 다 아는 양 써서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쳐야 할 곳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읽는 과정에서 왜 이 작품이 지금도 유효한지를 생각하게 됐어요. <새의 선물>에는 에너지가 아주 많아요. 그만큼 당시 제가 절박했기 때문이에요. 첫 책인 만큼 한명의 독자도 없었어요. 그러니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얘기 하며 정면대결한 거죠. 그런 패기가 독자들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게 아닌가 해요.”

-개정판에서 손본 곳이 많습니까.

“처음에는 많이 고칠까 하다가 지금의 내 방식으로 고치면 이 작품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의 저는 필터가 훨씬 많아서 깎고 깎고 깎아서 작품을 완성하거든요. 문장도 문어체 글로만 쓸 수 있는 사유를 담으려 하고요. 반면 <새의 선물>은 그런 것 없이, 그냥 말해요. 촌스럽지만 원석이나 순정 같은 게 있어요. 그래서 혐오 표현만 고쳤어요. 가령 당시엔 무심히 썼던 ‘앉은뱅이책상’, ‘벙어리장갑’, ‘곰보 아줌마’ 같은 편견과 비하의 의미가 담긴 단어들이요. ‘불륜’도 ‘공인되지 않은 관계’로 고쳤어요.”

<새의 선물>의 화자(話者)는 “삶이 시작부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열두 살 여자아이 진희다. “나는 열두 살 이후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고 단언할 만큼 당돌하고 냉소적인 진희는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로 자신을 분리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본심을 감추는 방법을 일찌감치 터득한다. 이모와 삼촌, 이웃 등 주변인들의 삶은 이러한 진희의 시선을 통해 섬세하고 유머러스하게 묘사된다.

-어느 인터뷰에선가 ‘<새의 선물>은 나의 답답한 인생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에서 탄생한 소설이다. 내 삶이 왜 이렇게 됐는지 거슬러서 생각하다 보니 열두 살 무렵까지 올라가게 됐다’고 말했어요. <새의 선물>을 자전적 이야기라고 할 수 있나요.

“소설 속 진희가 부모 대신 외가에서 사는 것과 달리 저는 부모님과 같이 살았으니까 꼭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를 많이 가져왔어요. 특히 진희와 저는 닮은 점이 있어요.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를 분리하는 것. 제가 어려서부터 그렇게 행동하는 게 익숙했거든요.”

-그 같은 분리가 왜 필요했나요.

“전북 고창에서 1남2녀 중 맏딸로 태어났는데 저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가 크셨어요. 토건업자였던 아버지는 제가 똑똑하다고 생각해 다섯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시킬 정도였어요. 공부는 잘했지만 정서적으로는 같은 학년 친구들보다 어렸어요. 오랫동안 왕따를 당하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그런 불균형을 표내지 않으려 애썼어요. 모르더라도 모르는 것을 티내지 않았어요. 어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그런 약간의 자아분열이 제 첫 번째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죠.”

<새의 선물>. 화자(話者)인 열두 살 소녀 진희는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로 자신을 분리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본심을 감추는 방법을 일찌감치 터득한다. 은희경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투영한 인물이라고 했다.

<새의 선물>. 화자(話者)인 열두 살 소녀 진희는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로 자신을 분리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본심을 감추는 방법을 일찌감치 터득한다. 은희경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투영한 인물이라고 했다.

-어린 은희경은 생각이 많았겠군요.

“내 세계가 따로 있었던 것 같아요. ‘어른들은 이런 아이를 원하겠지?’ 생각하며 행동하는 내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지만 나는 그런 말 안 믿어, 어른들은 다 저렇게 말하고 약속도 지키지 않아’ 하는 불신하는 내가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누구에게도 제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때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어요. 어쨌든 무사히 성장해 청소년기를 지나 30대가 됐는데 내 안의 내가 자꾸만 질문했어요.”

-어떤 질문이었나요.

“그래서 내가 지금 다 잘 된 거냐는 질문. 잘 살려면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돼야 하는데, 그렇게 살고 싶냐는 질문….”

-싫어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불합리한 이데올로기라고 여겨도 순응해야 유리하게 사니까요. 일부일처제, 직장 내에서의 서열과 남녀차별 등. 그런데 취업, 결혼 등 사회에서 정해놓은 방식을 성실히 취해왔다고 해서 유리한 어떤 뭔가를 내가 얻었는가 생각해보니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결혼도 해보니까 별게 없었고…. 이렇게 똑같은 삶을 복제하며 살다 갈 거면 나는 왜 태어났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질문을 안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거예요.”

-작가의 꿈은 언제부터 가졌습니까.

“어려서부터예요. 잡념이 많고, 글을 잘 썼으니까요. 이야기 짓는 것도 좋아했고요. 중학생 때 친구들이 제 일기장을 볼 걸 알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지어내 쓰기도 했어요. 그것도 단계가 있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만들어가면서 결말을 달리해 보기도 하고 다른 인물을 등장시키기도 하면서 발전하는 것 같았어요.”

-일기는 지금도 쓰나요.

“작가가 된 후에는 소설로 다 분출하니 쓰지 않지만, 그 전까지는 썼어요. 주로 화나거나 슬프거나 외롭거나, 그렇게 일상적 평정심을 잃을 때 일기를 썼어요. 당시 일기장을 보면 감정이 굉장히 격해 있어요. 제가 그럴 때 일기를 썼다는 것은 나답게 살고자 하는 갈망을 포기하지 않은 방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1994년 글을 쓰기 위해 작심하고 떠난 여행에도 일기장을 챙겨 갔어요. 그걸 펼쳐 제가 느낀 억압을 복기하며 소설을 써내려갔어요.”

그는 숙명여대와 연세대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여러 일을 전전했다. 경기 고양시에서 국어교사로 일하기도 했고 서울에서 중학교 시간강사를 하기도 했다. 잡지사에서 신입기자들의 기사 문장을 손보는 리라이터(rewriter)로 일하기도 했고, 마지막에는 4인이 모여 출판컨설팅 회사를 만들기도 했다. 1984년 만 스물다섯 살에 결혼해 연년생으로 딸 새남과 아들 이롭을 낳았다. 그가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부문에 <이중주>가 당선된 데 이어 <새의 선물>을 발표한 1995년, 새남과 이롭은 초등학교 2, 3학년이었다.

-등단작 <이중주>는 어떻게 탄생했습니까.

“1994년 직장에 휴가를 내고 전북 무주군 적상산에 있는 휴양시설에 혼자 운전해 찾아갔어요. 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이에요. 리조트에 틀어박혀 글을 썼어요. 내가 누구인지 다섯 가지로 나눴어요. 딸로서 느낀 억압부터 시작해 직장인, 아내, 인간 그리고 여자로서 나에 대해 각각 썼어요. 그렇게 한 달간 다섯 편의 단편소설을 완성한 후 돌아왔어요. 스스로 강해진 느낌이었어요. 돌아온 후에도 퇴근 후 틈틈이 중편소설 <이중주>를 썼어요. 여섯 편 모두 이런저런 신춘문예에 제출했는데, <이중주>가 당선된 거예요.”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가지만, 원고 청탁은 없었다. 장편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상산 정상 부근인 해발 1000m 고지에 있는 전북 무주의 ‘안국사’로 들어갔다. 거기서 <새의 선물>이 탄생했다.

은희경 작가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질문을 안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올해도 <장미의 이름은 장미>를 펴내는 등 27년간 꾸준히 신작을 발표할 수 있었던 힘에 대해 그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은희경 작가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질문을 안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올해도 <장미의 이름은 장미>를 펴내는 등 27년간 꾸준히 신작을 발표할 수 있었던 힘에 대해 그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 / 우철훈 선임기자

그는 지금까지 15편의 소설책을 펴냈다. 장편소설로는 <새의 선물> 외에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그것은 꿈이었을까>, <마이너리그>, <비밀과 거짓말>, <소년을 위로해줘>, <태연한 인생>, <빛의 과거>가 있다. 소설집은 <타인에게 말걸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상속>,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중국식 룰렛>, <장미의 이름은 장미>이다. 문학동네소설상, 동서문학상, 이상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7년 전 은희경과 지금의 은희경은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턱에 손을 괸 채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제 글이 조금씩 달라졌음을 깨달을 때가 있어요. 그 전에는 제 작품에 대해 독설적이다, 냉소적이다, 위악적이다라는 평가가 많았잖아요. 그에 대해 저도 반감이 없었어요. 정해진 화해나 미봉적 위로를 통해 글이 마무리되는 것에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뭐가 문제인지 똑바로, 정확히 보자는 게 제 생각이었고 그것을 직설적으로 소설에 담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많은 분이 어떤 사안들에 대해 이미 문제의식을 느껴요. 그래서 이야기를 바로 출발시킬 수 있게 됐어요. 제 소설이 부드러워진 이유를 나이듦에서 찾는 분들도 있지만, 그건 아닌 거예요.”

-등단 이래 올해까지 1년에 한 번, 길면 3년에 한 번꼴로 새 작품을 발표해왔어요. 어떤 힘이 계속 소설을 쓰게 하나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계속 있으니까요. 내가 인물은 물론, 관계와 상황을 만드는 작업이 재미있어요.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해요. 소설은 내가 하는 이야기를 모르는 다수가 듣는 거니까요. 대단한 권력이라고 생각해 그만큼 두려워요.”

-소설을 어떻게 쓰나요.

“주인공들과 사건에 대해 집중하다 보면 그다음 동선에 대한 어떤 영감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게 어디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에요. 언젠가 내가 느끼고 겪고 문제 삼고 써보고 싶었던 것들이죠. 저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아 열심히 관찰해요. 또 여행을 해도 어떤 목적의식을 갖지 않은 채 오감을 다 열어서 느끼고 보죠. 그게 제 안 어딘가에 있다가 제가 어떤 이야기를 쓸 때 올라와주는 거예요.”

-<새의 선물>의 진희가 그랬듯, 은 작가 소설의 주요 인물은 작가 은희경의 또 다른 자아 또는 분신일까요.

“그렇다고 할 수 있어요. 전혀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내 속에 또 다른 내가 아주 많은 것 같아요. <새의 선물>에선 진희뿐 아니라 이모에게도 내가 투영돼 있어요. <소년을 위로해줘>의 여러 유형 엄마 중에도 있고요.”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작품을 위해 평소 메모를 많이 하나요.

“그냥 보고 상상하고 기억해요. 대신 사진은 많이 찍어둬요. 그런데 이제는 스마트폰 앱을 활용해보려고 해요. 그동안 내 목소리를 듣는 게 싫어 어떤 생각이 떠올라도 녹음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음성을 글로 바꿔주는 앱이 있으니까요.”

-현역작가로서, 감각을 젊게 유지하는 비결은 뭔가요.

“이 세상에 관심이 많고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려다 보니 항상 긴장감을 느껴요. 어떤 일이 일어나면 먼저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건 나의 오래된 어떤 생각이잖아요. 그러면 그게 틀렸을 거라고 생각하는 과정에 이어 내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있어요. 그런 일들의 연속이 저를 긴장하게 만들고 탄력을 주는 것 같아요.”

-요즘도 직장인처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글을 쓰나요.

“요새는 그렇게 오래 집중을 못 해요. 대개 오전에만 쓰는데, 오전 시간은 온전히 읽거나 쓰거나, 생각하는 시간이에요. 집안일은 물론이고 e메일도 안 쓰고 사무도 안 보고 딱 앉아 있어요.”

-글이 잘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하나요.

“다른 작가의 소설을 읽거나 OTT로 영화를 봐요.”

등단작 <이중주>가 두 모녀의 삶의 모습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을 시작으로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등 은 작가의 상당수 작품에는 여성의 삶과 의식에 대한 문제 제기가 담겨 있다.

-페미니즘 논쟁이 정치권까지 확산됐어요. 요즘 여성들의 삶이나 페미니즘 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은희경 작가는 지난 27년간 모두 15권의 소설책을 펴냈다. 문학동네소설상, 동서문학상, 이상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은희경 작가는 지난 27년간 모두 15권의 소설책을 펴냈다. 문학동네소설상, 동서문학상, 이상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우철훈 선임기자

“1990년대만 해도 남녀를 불문하고 본원적으로 차별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페미니즘이 자신의 기득권을 침범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당시만 해도 페미니즘이 세력화되진 않았으니까요. <빛의 과거>를 펴냈을 때 말한 적이 있었어요. 40여년 전에도 페미니즘 강좌가 있었고, 저처럼 교육받은 기득권 여성들은 문제의식을 가졌지만 결국 기존 시스템에 안주했기 때문에 젊은 여성들이 아직까지 싸우고 있는 거라고…. 성평등을 이루기까지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저는 낙관해요.”

-오히려 남성들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일부 2030 남성들의 주장에 대해선 어떤 생각인가요.

“여러 생각이 있지만 한 마디로 정리하긴 어려워요. 다만 사람들이 커뮤니티 등 특정 집단의 선동에 자신의 사고를 위탁하지 말았으면 해요. 자꾸 그러다 보니 반목이 심해지는 것 같아요. 자기 생각을 가지려면 스스로 질문을 해야 해요. 90년대와 비교하면 성평등이 많이 이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기득권자들은 시혜적 시선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원래 내 것인데 조금 준다는 생각이요.”

-문학의 위기, 너무 오래된 화두라 새삼스럽지 않아요. 하지만 이런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고, 재능 있는 스토리텔링 작가들은 영화나 드라마 쪽으로 많이 가 있어요.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과거 어떤 책이 5만부가 팔렸다면 그중 순수 독자는 1만명일 거예요. 나머지는 트렌드 등 어떤 다른 이유로 책을 구매한 건데 그런 분들이 지금은 책을 안 사보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문학을 원하는 순수 독자만 지금 남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현상이 잘못된 것이라는 판단은 유보하고 있어요. 세상이 다양해지면서 문학은 변형된 형태로 존재하기도 하거든요. 게임에도 문학이 있고, 심지어 음식점 마케팅에도 스토리텔링이 있으니까요.”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좋아하던 여행과 마라톤을 3년간 못 했지만, 이제 다시 할 것”이라고 했다. “예스24에 산문 연재를 곧 시작한다”는 그는 “차기 장편소설로 ‘몸’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왜 몸이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몸이 인간의 조건이자 개인의 조건이니까요. 몸을 통해 삶을 영위하는데, 몸의 조건이 제약이 될 수도 있고 장점이 될 수도 있어요. 또 관계가 될 수도 있고 소멸이 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오래전부터 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특히 요즘은 주변에서 늙음과 죽음을 많이 봐요. 느끼는 게 있어요. 내년부터 문학동네에 연재할 예정이에요.”

<박주연 선임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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