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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사실 너머를 헤아리는 마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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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숙의 <어떤 호소의 말들>을 읽고

10년 전 어느 여름날이었다. 저자가 원고를 건네며 한번 읽어보라 했다. 아들과 함께 미국에서 보낸 좌충우돌 체험기였다. 영어 때문에 겪은 에피소드에선 웃음이 묻어났고, 대자연 속에서 이웃과 나눈 이야기는 푸근했다. 당시 인권위 노동조합 소식지에 연재된 미국 이야기는 나름 독자층이 두터운 휴먼 에세이였다. ‘이분이 언젠가 따뜻한 책을 쓰겠구나’라고 생각한 건 그때였다.

<어떤 호소의 말들>의 저자 최은숙씨(오른쪽)는 “‘인권’을 빼고 쓰려 했는데 편집하고 보니 ‘인권 책’이 되었다”라고 말한다. / 최은숙 제공

<어떤 호소의 말들>의 저자 최은숙씨(오른쪽)는 “‘인권’을 빼고 쓰려 했는데 편집하고 보니 ‘인권 책’이 되었다”라고 말한다. / 최은숙 제공

<어떤 호소의 말들>은 ‘인권위 조사관이 만난 사건 너머의 이야기’란 부제를 들고 세상에 나왔다. 편집자는 텍스트에 보라색 물감을 흠뻑 뿌려 이 책이 ‘인권 서적’임을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인권에 관한 서사가 마냥 흥미롭게만 읽히기 어려운 시절이나, 저자의 품에서 걸러진 인권 이야기는 아침방송 청취자 사연만큼이나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무소불위 권력기관의 민낯

인권위 진정접수 e메일 아이디는 ‘hoso(호소)’다. 조선시대 신문고처럼 누구나 억울한 일이 있으면 문을 두드릴 수 있다는 뜻이다. 두드린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문이 열리는 건 아니다. 인권위 조사관들이 사석에서 “조사관을 잘 만나는 것도 복”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아무런 ‘호소’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사건이, 저자 같은 조사관을 만나 새롭게 주목을 받았다면 그것도 “인복”이다.

저자는 서류 뭉치보다 진정인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인권위 조사관도 감정노동자이다 보니 사건이 쌓이면 내면을 들여다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배당 사건이 100건이라면 1번부터 100번까지 숫자로만 읽힌다. 반면 ‘호소의 문’을 두드린 진정인은 늘 1번 자리에 자신의 진정사건을 꽂아두고 조사관을 압박한다. 이 넘어설 수 없는 간극을 메우자면 뭔가 특별한 감성적 역량이 필요하다. 저자는 그것을 “사실 너머를 헤아리는 마음”이라 말한다.

“거짓말 잘하는 사람, 흉악한 사건의 범인, 그들도 어릴 때는 다 귀여운 아이였을 거예요. 내가 맡은 사건의 진정인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까 사건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더라고요.”

2002년 10월, 서울지검 지하 특별조사실에서 피의자가 사망했다. 인권위는 긴급히 직권조사를 결정하고 조사단을 투입했다. 조사관 4명 중 3명이 여성이었고 저자도 일원이었다. 현장조사 첫날, “지하 특조실은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며 조사를 방해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의 궤변과 인권위 조사단이 특조실 매트리스 밑에서 우연히 경찰봉을 발견하자 당황해하던 대검찰청 공보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창비

창비

저자는 그날 무소불위 권력기관의 민낯을 보았다고 썼다. 정작 책임을 져야 할 검사들은 뒤로 빠지고, 힘없는 수사관들만 일렬횡대로 인권위 조사단을 맞았기 때문이다. 그날 인권위 여성 조사관들이 진실을 말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하자, 일부 수사관들은 “윗분이 시키는 일을 해오던 대로 했을 뿐이다”고 털어놓았다. 지시한 사람은 보이지 않고 말단 직원이 모든 걸 덮어쓰는 상황, 저자는 지금까지도 그 사건을 더 독하게 파헤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우리가 참 순진했어요. 검찰은 청소까지 다 끝내고 아무것도 나올 게 없다는 식이었어요. 특조실 바닥에 핏물 자국이 보였는데, 혈흔을 채취해 국과수에 넘길 생각도 못 했어요. 그때 특조실에서 조사받은 사람 전체를 조사했다면 억울한 사람 누명도 많이 밝혔을 텐데….”

서울지검 피의자 사망사건 담당 검사는 고문 및 폭행치사 공모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1년 6개월 실형이 확정됐으나, 몇 년 뒤 특별 복권됐다.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물러난 사건임에도 검찰의 인권침해 수사 관행은 사라지지 않았다. 저자는 공권력의 가혹행위로 사망한 피해자 가족을 떠올리며, 가해자에 대한 심판 이후에도 피해자의 삶은 계속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파주 용주골, 허름한 유흥업소가 딸린 방에서 노모와 피해자의 대여섯 살 아들이 살고 있었는데, 노모는 수사상황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손자 키울 걱정만 했어요. 어두컴컴한 방에서 낙서를 하던 아이가 이제 20대 청년이 됐겠네요.”

‘정의구현 행정단’을 꿈꾸며

<어떤 호소의 말들>은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받았다. 원작은 ‘우린 조금 슬프고 귀여운 존재’인데, 이 책의 2부 소제목 ‘고작 이만큼의 다정’과 일맥상통한다. 저자는 “살아가면서 기억에 오래 남는 이야기를 내 방식으로 풀어본 이야기”라며, “‘인권’을 빼고 쓰려 했는데 편집하고 보니 ‘인권 책’이 됐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 교지 편집부에서 일하며 국문학도를 꿈꾸었다는 고백으로 미뤄 저자도 그 시절 문학소녀였을 게다. 대학 졸업 후 전국구 학습지 교사로 이름을 날리며 돈벌이도 괜찮았지만, 어느 순간 ‘이렇게 사는 건 아니다’ 싶어 YMCA 시민중계실 활동가로 일하게 됐다고 한다.

“쌍문동에서 가난한 집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10분 정도밖에 안 되는 거예요. 아이들이 나를 많이 좋아하고 따랐지만, 학습지 교사는 1분이라도 빨리 떠나는 게 능력이에요. 한창 좋을 땐 이틀 일하고 250만원까지 벌었는데, 시민단체 가니까 한 달 월급이 40만원이더라고요. 신발이 짝짝이인 줄도 모르고 수원에서 서울까지 지하철 타고 다니며 열심히 일하다 인권위 출범하고 공무원이 됐어요.”

공무원 조직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20년 남짓 공무원을 하고 있다면, 그에겐 남들이 모르는 ‘공적’ DNA가 있을 것이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발생한 성희롱 사건을 조사하겠다며 예산 한푼 없이 해외 출장계획서를 들이밀던 배포는 시민단체 시절 단련된 ‘무데뽀’ 정신에서 나왔다. 인권위 최초의 해외 출장조사, 최고 손해배상액, 여성단체 선정 인권디딤돌상 수상 등이 그해 저자가 이룬 빛나는 성과였다.

저자가 청춘의 뼈를 갈아 넣은 인권위도 출범 20년을 넘겼다. 어느덧 그에게도 인권위와 이별할 시간이 차츰 다가오고 있다. “퇴직하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으니, ‘(가칭) 정의구현 행정단’이라는 생뚱맞은 답변이 돌아왔다. 인권위에서 만난 ‘착한’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그동안 배운 걸 값지게 쓰고 싶다는 포부였다. 남다른 비정부기구(NGO) 감수성에 공직자 경험까지 아우른다면, 희망을 일구는 광야의 홀씨로서 손색이 없을 듯하다. 산과 책을 좋아하는 저자의 인생 3부작이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그 3부작의 프롤로그(서문)이자 벗들에게 보내는 환대의 식탁이다.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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