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명배 명예교수 “민간과 협업 통해 재정건전성 회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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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한국재정정책학회장을 지낸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7월 12일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재정지출 효과에 대한 의심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재정의 지속가능성 회복을 강조해온 그는 “윤석열 정부의 재정건전성 회복 기조는 옳다”면서도 “경제위기를 감안해 그 규모와 속도는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염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재정정책에 대해서는 “재정의 방파제 역할이 많이 약화됐다”고 평가했다. 무너진 재정 규율을 복구하기 위해 강화된 재정준칙을 도입하라고 현 정부에 주문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윤석열 정부의 국가재정전략회의 내용을 총평하자면.

“우선 긴축재정이라는 표현보다는 재정의 효율화 또는 재정의 건전화라는 표현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총량적 측면에서 보면 재정을 확대하지 않기 때문에 긴축재정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지향점이 재정의 낭비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도하던 역할을 민간으로 이전한다는 의미도 있다. 윤석열 정부는 장기적으로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원칙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대내외 경제 여건이 어렵다는 점에서, 재정건전성 회복이라는 방향은 명확히 설정하되 구체적 로드맵은 경제 여건을 봐 가면서 속도와 규모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임기 초부터 재정을 급속히 확대한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가 발생하자 이에 대응해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재정을 더욱 확대했고, 결과적으로 줄곧 유지돼온 재정의 방파제 역할을 상당 정도 훼손했다. 또 임기 마지막까지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한 결자해지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임기를 마쳤다. 정작 기대했던 경제성장이나 분배개선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 채 나랏빚만 역대 최대로 늘린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지금의 경제위기에서 재정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재정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이전에는 정부의 재정지출이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정부의 재정지출 효과가 의심받는 최근 상황에서는 정부가 모든 것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민간이 분업과 협력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에서는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무리하게 공공부문 고용을 늘렸다. 고용은 원래 기업의 소관이니 기업이 자발적으로 늘릴 수 있도록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고 기업활동을 지원하는 유인책을 쓰는 게 맞다. 굳이 정부가 예산을 들여 고용을 담당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민간부문과의 협업을 통해 예산을 절감하면서 재정건전성을 회복하는 게 바람직하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들은 뭔가.

“재정의 직접적 변수는 재정지출과 조세다. 재정 변수들은 여타 경제 변수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다른 변수에 영향을 받거나 주기도 한다. 재정지출을 늘리면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물가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 또 국채를 발행해 재정지출을 늘릴 경우 이자율 상승과 국가채무비율 상승으로 인한 국가신인도 추락, 이로 인한 환율 상승과 수입원자재 가격 상승 등 복합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기재부가 재정수지 기준 지표를 통합재정수지보다 더 엄격한 관리재정수지로 바꾸겠다고 했다. 무엇이 배경이라고 보는가.

“재정수지는 크게 관리재정수지와 통합재정수지로 나눌 수 있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 4대 사회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지표로, 연도별 실질 재정수지의 변화를 나타낸다. 한국이 2017년에 ‘고령사회’에 진입하기는 했지만 아직은 베이비붐 세대가 완전히 퇴직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연금 지급액보다는 연금 수입액(적립액)이 많아 연금수지가 흑자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통합재정수지를 기준으로 할 때는 관리재정수지를 기준으로 할 때보다 적자폭이 줄어들어 실질 적자 상황을 과소평가하는 착시 가능성이 있다. 이전 문재인 정부에서 적자 규모를 작게 보이게 하려고 그동안 관행적으로 사용해왔던 관리재정수지 기준 대신에 통합재정수지 기준으로 바꿨다.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는 (착시를 걷어내고) 재정적자 상황을 보다 엄격하게 판단할 수 있는 관리재정수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한다. 다만 향후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심화해 통합재정수지 적자가 관리재정수지 적자보다 지속적으로 커질 경우에는 그때 가서 적자 기준을 통합재정수지로 바꾸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재정준칙 준수 의무를 강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금융통화위원회와 같은 수준의 독립성을 갖춘 국가재정위원회(가칭)를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역대 정부에서 그동안 불문율처럼 지켜왔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 한도를 문재인 정부에서 전면 부정하면서 국가채무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한 번 무너진 규율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성문법 형태의 재정준칙 도입이 필요하다. 재정준칙은 재정지출 확대 필요성이 있을 때 미리 세워놓지 않으면 나중에 걷잡을 수 없는 통제 불능 사태에 봉착할 우려가 있다. 재정지출을 확대하면서 제대로 재정준칙을 세우지 않았던 그리스와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의 국가파산 사태가 이를 증명한다. 이번 코로나19 위기로 한시적으로 재정을 풀었다가 곧바로 향후 재정건전성의 회복 작업에 들어간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행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용을 막기 위한 궁극적 방안으로 국가재정위원회 설치에 적극 동의한다. 재정위원회는 평상시 엄격한 재정준칙의 시행을 통해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용을 통제하는 한편 경제위기 발생 시 규칙을 신축적으로 운용해 신속하게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양면의 역할을 한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7월 1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월례포럼 모두발언에서 “그동안 재정 쪽이 너무나 망가진 것 같아서 저희는 상당히 가슴이 아팠다. 정부 재정 정책의 방향을 빨리 틀어야 한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7월 1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월례포럼 모두발언에서 “그동안 재정 쪽이 너무나 망가진 것 같아서 저희는 상당히 가슴이 아팠다. 정부 재정 정책의 방향을 빨리 틀어야 한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빠른 것은 사실이지만, 총량 자체는 다른 주요국들과 비교해 큰 문제가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올 연말 기준 49.7% 추산)에 대해 관심을 갖고 봐야 할 것이 있다. 외관상 일본(224%), 미국(107%), 프랑스(123%), 영국(116.4%) 등 선진국에 비해 훨씬 낮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09%)에 비해서도 상당히 낮아 추가 채무증대 여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 국가채무비율이 매우 낮은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1970년대에 고령사회에 진입한 독일, 덴마크, 프랑스, 스웨덴과 같은 유럽국가를 보면 당시 국가채무비율이 모두 30%를 넘지 않았다. 현재는 국가채무비율이 독일 70%를 비롯해 프랑스와 영국 등에서 폭증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무시한 채 이제 막 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 상황과 고령화가 이미 많이 진행된 선진국 상황을 바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 국가부채의 범위를 달리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관리하는 부채 통계는 범위에 따라 국가채무(D1), 일반정부 부채(D2), 공공부문 부채(D3) 등으로 구분되는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국가채무’의 개념은 현금주의로 작성하는 정부(중앙+지방)의 회계·기금상 부채(D1)로, 포괄범위가 가장 좁다. 일반정부 부채(D2)는 국가채무에 비영리 공공기관 부채가 더해진다. IMF나 OECD의 국제비교 대상이 되는 국가부채는 일반적으로 D2를 기준으로 한다. 공공부문 부채(D3)는 일반정부 부채(D2)에 비금융공기업의 빚을 합해 계산한다. 한국의 2019년 GDP 대비 부채비율은 D1 기준 37.6%이지만, D3 기준으로는 59.0%까지 뛰게 된다. 2020년에는 D1 기준으로 43.8%인 반면 D3 기준으로는 66.2%에 달해 세계은행이 개발도상국의 ‘위험수위’로 지정한 64.0%를 이미 넘어섰다. 또한 한국이 기축통화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주요 기축통화국들과 비교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돈을 찍어 재정에 활용할 수 있는 기축통화국과 비기축통화국이면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을 바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긴축재정을 비판하는 쪽에서는 고령화·양극화에 대비해 재정을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재정을 당장 적극적으로 확대하지 않더라도 향후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재정이 확대될 것이다. 이때를 대비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재정의 현실을 바로 볼 필요가 있다. 여기저기 재정을 무작정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근래 들어 재정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이 대규모 재정·금융 완화정책을 실시했음에도 경제성장률이 제대로 오르지 않는 이른바 ‘뉴노멀’ 시대에 봉착했다. 이는 더 이상 전통적인 케인스식 재정확대 정책의 효과가 크지 않음을 증명한다. 따라서 정부가 재정을 풀면서 앞장서서 끌고 가려고 하기보다 민간의 활력을 북돋아주고 정부는 뒤에서 지원·보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즉 재정을 무조건 줄이는 것이 아니라 민간부문에 일부 역할을 이전하는 것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기획재정부가 선언한 대로 내년도 예산안에 윤석열 정부의 긴축재정 운용 내용이 담길 가능성이 높다고 보나.

“문재인 정부에서 급속하게 악화시킨 재정 상황을 바로잡지 않은 채 방만한 재정운용을 지속한다면 그리스 등과 같은 재정위기에 봉착할 우려가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재정건전화 의지를 윤석열 정부의 중기재정전략에 반드시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년에도 미국 등 글로벌 경기침체가 우려된다.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전망하자면.

“미국과 세계의 경기가 침체하면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또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대폭 올리고, 우리도 따라서 금리를 올릴 경우 (가계부채가 이미 세계 최대수준인 점을 감안할 때) 돈을 빌린 취약계층이 받을 충격이 커진다. 그렇다고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자니 외환 유출로 환율 폭등 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이를 막겠다고 국채를 발행하면 이자율이 높아져 채무자에게 큰 고통을 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국가채무가 늘어나면 국제신인도가 하락해 외환이 다시 더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 개방경제 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아주 복합적인 영향권 아래 놓이는 셈이어서 적잖이 우려스럽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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