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병기 교수 “과감한 재정운용으로 취약부문 충격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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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지난 7월 7일 정부 출범 후 연 첫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긴축재정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물가와 금리, 수출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진 시점에서 이러한 재정운용 기조가 적합한지 물음표가 붙는다. 한국사회의 불평등·불공정 문제 완화와 재정의 재분배 기능 강화를 주창해온 대표적인 진보 경제학자인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7월 12일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긴축재정으로는 경기침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취약부문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의 과감한 재정적 대응을 주문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국가재정전략회의 내용을 총평하자면.

“당장 건전재정을 걱정할 만큼 부채 문제가 크다는 정부 인식에 공감할 수 없다. 코로나19 위기가 진행 중이고,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확실시되는 위기국면에서 긴축재정 전환을 선언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정부의 위기관리에도 걸림돌을 만드는 행위다. 부자 감세로 요약되는 (법인세 등을 완화하는) 세제 개편은 이러한 건전재정 기조와 상충해 내적 정합성도 없다. 법인세 인하가 기업에 활력을 가져온다는 것은 추상적이고 근거 없는 기대일 뿐이다. 또 세계경제의 경기침체 국면에서 세수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더 악화된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증세와 재정 확장이 필요하다고 줄곧 강조해왔다. 지금의 경제위기에서도 유효하다고 보나.

“정부의 재정운용 방향은 높은 복지, 낮은 조세부담, 낮은 국가채무 등 3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을 표방한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이 3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한 나라가 없다. 조세부담을 낮추면 경제의 활력이 생겨 조세수입이 증가하고, 이를 기반으로 복지를 확충하고 국가채무를 낮출 수 있다는 이론이 1970~1980년대 미국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 주장은 40년이 지난 지금 다양한 자료에 기반을 둔 연구들에 의해 기각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들도 이미 오래전 폐기했다. 이른바 낙수효과도 마찬가지다. 지금 정부는 이미 오래전 폐기된 감세정책과 낙수효과를 다시 간판으로 걸고 있는 셈이다. 이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면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의 위상에 대한 합리적인 현실 인식이 전제돼야 한다. 정부의 발표 자료를 보면 지금 한국경제의 발전단계에 부합하는 정책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1990년대 혹은 2000년대 한국경제의 발전단계를 전제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정책이 오래된 성장주도형 개발경제 정책의 부활로 보인다. 한국경제는 과거처럼 높은 성장률을 지속할 수 없는 발전단계에 도달했다. 이제는 낮지만 지속가능한 성장을 고민해야 하고, 성장잠재력과 질적 성숙을 고민해야 할 단계다. 지금처럼 낮은 국민 복지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이 공감하는 인식이고 IMF와 OECD 등 국제기구들이 강조하는 정책 방향이다. 한국경제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낮은 복지 수준을 가지고 있다. 이는 자명한 사실이다. 최하위권의 공공사회 복지지출 비중을 봐도 그렇고 최상위권의 노동시장의 양극화 현상을 봐도 그렇다.”

-정부는 국가채무 등 수준을 근거로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강조한다.

“경제발전과 함께 정부부채(국가채무+비영리 공공기관 부채·D2)가 늘어나는 것은 모든 국가의 공통된 현상이다. 경제발전이 빠르면 정부부채도 빨리 늘어날 수밖에 없다. 부채의 증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비슷한 발전단계에 있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얼마나 부채의 절대적 규모가 크냐가 더 중요하다. 지난 10년간 다른 선진국들이 지속적으로 재정수지 적자를 기록하는 동안 한국은 재정수지 흑자를 지속했다. 최근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재정수지 적자가 있었지만, 그 적자 폭은 평균적으로 다른 선진국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몇개의 작은 나라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선진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비율이 우리보다 적게는 20%포인트, 평균적으로는 60%포인트 이상 높다. 정부는 이런 사실을 인정하기보다는 (우리와 다른) 기축통화국이라는 객관성이 없는 개념을 적용해 비교 대상을 비기축통화국으로 제한하고 있다. 대부분 우리보다 발전단계가 낮고 복지국가 발전이 뒤처진 국가들이다. 이들 비기축통화국 평균과 비교해 재정건전성 회복이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기재부에 따르면 올해 D2 비율은 52.0%로, 노르웨이·덴마크 등 비기축통화국 평균치인 54.0%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비교 대상이 매우 자의적이고 비합리적이다. 한국의 복지 수준이 낮은 것은 무엇보다 복지 확충에 쓸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방이나 경제부문의 정부지출 비중이 다른 선진국보다 높은 점도 원인이지만 무엇보다 조세부담률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경제발전과 함께 조세부담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우리도 이런 발전경로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현실이다. 조세부담은 낮추기는 쉬워도 높이기는 어렵다. 조세부담률 인상은 국민 설득과 사회적 타협이 요구되는 매우 어렵고도 장기간에 걸쳐 이룰 수 있는 과제다. 정부의 감세 정책은 이런 현실 인식에 상반된다. 게다가 정부가 감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법인세 역시 실효세율로 비교하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높은 수준이 아니고, 기업의 사회보험 부담까지 고려하면 낮은 수준이라 할 수 있어서 감세안은 설득력도 부족하다. 결론적으로 복지 수준은 낮고, 조세부담률도 낮으며 정부부채도 낮다. 이미 낮은 조세부담률과 정부부채비율을 더 낮추겠다면 복지 수준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정책 방향은 전혀 합리적이라 볼 수 없다. 낮은 조세부담률은 높여야 하고 낮은 정부부채도 높일 수 있는 여력이 있으니 이 둘을 통해 적극적으로 복지확충을 위한 방안을 찾는 것이 한국경제의 발전단계에서 합리적인 정책 방향이다.”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6월 20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전면 수정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6월 20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전면 수정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과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재정위기를 맞은 유럽국가들이 긴축재정에 나섰고, 그 결과 경기침체와 실업률 증가, 소비 둔화, 성장률 하락, 세수 감소 등으로 이어져 당초 목표한 재정건전화도 지연되고 성장률만 깎아먹었다는 분석이 있다.

“맞다. 긴축재정은 경제위기 국면에서 경기침체를 가중시키고 실업률을 높이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반대로 긴축재정을 강조하는 측에서는 더 큰 위기를 대비해 재정 여력을 비축해야 한다고 한다.

“긴축재정으로 코로나19와 세계경제 등 대내외 경기침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 정부의 재정 여력은 충분하고, 이번의 위기야말로 재정 여력을 최대한 활용해 극복해야 할 만큼 중대하다. 경제위기의 충격은 취약계층, 취약 고용, 취약 산업, 취약 중소기업, 자영업 등에 가장 먼저 가해진다. 그리고 한국경제에 이런 취약한 부문은 매우 넓게 존재한다. 긴축재정으로는 이런 넓은 취약부문이 겪을 수 있는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 현재의 위기국면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태도가 매우 안이하다. 취약부문이 쓰러지면 한국경제도 쓰러진다. 취약부문의 충격에 대해서는 정부의 과감한 재정적 대응이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타격이 적은 부문이 이런 충격을 나눠 부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인플레이션에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국에 부자 감세는 그야말로 역주행과 같다. 오히려 한시적으로라도 부유세와 같은 부자 증세를 고민해야 한다.”

-글로벌뿐만 아니라 한국도 경기침체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아지면서 이 같은 기조가 경기침체 우려를 더 가속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뚜렷한 해법이 없을 때 공무원들이 내놓는 정책이 지출 구조조정이다. 지출 구조조정으로 이런 경제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발상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동안 수없이 반복된 지출 구조조정을 보면 그 성과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있다. 회의적이다. 지금은 그 이상의 정책이 필요한 때다. 정부가 제시하는 구조조정 방안 자체도 문제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위기 극복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공공부문을 오히려 감축하고 위기에 취약하고 공공성을 결여한 민간부문에 이양하겠다는 방향으로 보인다. 위기 상황에 민간부문을 확대하고 시장주도로 가겠다는 것은 ‘정부는 손 놓고 있겠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매우 우려스럽다.”

-내년도 예산안에 윤석열 정부의 긴축재정 운용 방안이 담길 가능성이 높다고 보나.

“현재 각료들의 과거 행적을 보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지금 내놓는 정책은 경제상황과 무관하게 과거부터 이들이 주장해오던 정책 방향이다. 한국경제는 이제 새로운 발전단계에 접어들었다. 세계경제도 격변하는데 이분들의 정책 패러다임은 20년 전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지난 1분기와 2분기 등 2개 분기 연속 역성장하면서 본격적인 경기침체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IMF 총재는 내년에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을 미리 전망해본다면.

“대외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은 한국은 세계 경기침체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다행인 것은 그동안의 코로나19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우리 경제가 입은 타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적다는 점이고 재정 여력도 다른 나라에 비해 양호하다는 점이다. 그만큼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정책 공간이 다른 나라보다 넓다. 모두가 어려운 위기는 한국이 도약할 기회이기도 하다.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전환과 같은, 미래를 위한 공공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이를 통해 내수경기 진작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전력을 기울인다면 대전환의 시대에 대비하고, 한국경제의 단점을 보완해 국가경제의 기초체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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