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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후핵연료를 유산으로 남기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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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출범 일주일 전인 지난 5월 3일 110개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국정과제 중 첫 번째 약속인 “상식과 공정의 원칙을 바로 세우겠습니다”의 이행방안에 ‘탈원전 정책 폐기 및 원자력산업 생태계 강화’가 포함됐다. 에너지 안보 및 탄소중립을 위해 원자력 발전을 적극 활용하고, 원전 최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지난 6월 5일 국무회의에서 ‘새 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을 심의·의결했다. 그에 따라 이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 자체를 백지화했다. 원전 비중을 24%로 줄이겠다는 계획은 폐기되고 30%로 상향조정됐다. 또한 2030년까지 현재 가동 및 건설 중인 원전 28기 중 수명이 끝나는 원전을 폐쇄해 18기로 줄이기로 했던 계획도 폐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2일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에서 한국형원전 APR1400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2일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에서 한국형원전 APR1400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는 내년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하고 설계수명 만료원전 8기의 계속 운영을 통해 2030년까지 원전 발전 비중 30%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해 74.5%였던 원전이용률을 올해 82%까지 높이기로 했다. 원전업계는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전환계획이 본격화되면 원전 이용률이 85~90%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해법 먼저 내야

원전 정책의 여러 기조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한국 원전에서 여전히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하고 있고, 이를 영구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이 없다는 점이다. 핵연료는 3~5년간 발전에 사용된 후 ‘사용후핵연료’가 된다. 이 사용후핵연료의 방사능 독성은 10만년이 지나야 사라진다. 때문에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리시설의 문제는 비단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난제다.

사용후핵연료의 영구처분 방식은 해양처분, 우주처분, 빙하처분 등 여러 종류가 있다. 현재로서는 ‘심지층처분(deep geological disposal)’만이 타당한, 장기적인 대안으로 고려되고 있다. 높은 열과 방사능을 가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를 부식과 압력에 초장기적으로 견딜 수 있는 용기에 넣어 지하 500~1000m 깊이의 안정된 지질층에 수백~수천 년 이상 묻는 방식으로 처분한다. 전 세계에서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장의 부지를 확보한 나라는 핀란드와 스웨덴뿐이다. 그중 핀란드에서만 현재 영구처분장 건설공사를 진행 중이다. 2024~2025년쯤 세계 최초로 약 6500t의 우라늄을 저장할 수 있는 사용후핵연료 심지층처분시설인 온칼로(Onkalo) 처분장을 운영할 예정이다.

핀란드 서부의 올킬루오토 섬에 있는 온칼로 처분장의 인근 지역주민들은 원자력이 낯설지 않아 수용성이 높다. 또한 핀란드 정부에 대한 높은 신뢰, 지역사회의 인지와 참여, 분산화 에너지 공급 환경 그리고 산업계와 이해관계자 간의 권력 균형 덕에 온칼로 영구처분장의 추진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이들 나라에서도 고준위 방폐장 부지 확보와 건설이 쉽게 이뤄진 것은 아니다. 핀란드는 부지 확보 및 건설에 40년이 걸렸고, 스웨덴은 부지 확보에만 50년이 소요됐다. 스웨덴의 영구처분시설은 2080년 즈음에 완공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 원전은 40년간 가동됐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리시설 건설문제는 아직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1983년부터 모두 9차례나 부지확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경주에 있는 ‘중·저준위 방폐장’ 외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할 영구처리시설이 없는 상황이다. 임시 대안으로 현재 사용 중인 원전부지 내 임시저장소는 포화 직전이다. 지난 3월 월성원전의 임시저장시설(맥스터 7기)이 완공됐다. 지난해 12월,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률은 무려 98.8%에 달했다. 고리·신고리와 한빛원전은 2031년, 한울원전은 2033년, 신월성은 2044년, 새울원전은 2066년에 각각 임시저장시설이 포화될 예정이다. 새 정부가 원전가동률을 높이면 포화 시기가 더 앞당겨질 게 분명하다.

현재의 임시저장시설은 말 그대로 사용후핵연료를 발전소 내에 임시로 저장하는 시설이다. 따라서 영구저장시설 부지를 확보하기 이전에 이 임시저장시설을 중간저장시설로 재규정하거나 혹은 발전소 바깥에 따로 중간저장시설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영구처분시설인 심지층처분방식을 도입하기에는 정밀 지질조사도 구현하지 못했고, 적합한 부지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논의된 중간저장방안은 사용후핵연료를 수백년간 안전하게 장기저장하는 방식이다. 한국에선 이미 2015년과 2020년, 동일 부지에 영구처분시설과 중간저장시설을 동시에 건설하는 방안을 채택한 바 있다.

국내 원전, EU 기준 충족 어려워

산업부가 최근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발생량 등 재산정에 관한 연구용역’을 맡긴 사실이 지난 5월 30일 한국일보의 보도로 알려졌다. 원전가동률의 상향조정에 따라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의 포화 시점이 당겨지고, 고준위 방폐장 문제는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지난 7월 6일(현지시간) 유럽의회 전체회의에서 과반 이상의 찬성으로 원자력과 천연가스가 녹색분류체계(Green taxonomy)에 포함됐다. 이번 결정으로 정부가 개정작업 중인 ‘K-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될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 4월,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지난 6월 취임 후 기자간담회에서 “국제적으로 원전이 친환경에너지로 분류되는 추세”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국내의 재계 역시 이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원전은 유럽연합(EU)이 제시한 택소노미 기준에 따르면 친환경으로 분류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EU는 친환경 원전의 조건으로 2050년까지 고준위 방폐장 처분장 확보 및 운영 단계별 세부계획 마련, 2025년 이후 신규 건설되는 원전 및 수명연장 원전에 대해 아직 상용화 단계에도 이르지 않은 ‘사고저항성 핵연료’ 적용, 모든 원전에 대한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시설 건설 등을 제시한다. 국내 상황에서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지난 7월 7일 연합뉴스에 이들이 “매우 까다로운 조건”이라고 밝혔으며,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 역시 같은 날 경향신문에 “사실상 실현하기 어려운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전문가들은 EU의 이번 결정이 사실상 원자력 ‘규제’를 강화한 조치라고 분석한다. 실제 유럽원자력산업협회는 이 규제들이 원전에 대한 실질적 투자를 막게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의 철회를 강력히 요구한 바 있다. 결국 EU 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됐다고 하더라도 원전 비중을 높이는 것이 에너지 정책의 해답이 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전 세계에서 원전 밀집도가 가장 높은 나라다.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영구처리방법과 부지를 확보하지 않은 채 또다시 새 원전을 짓고, 발전율을 높이는 것은 후세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식이다. 바람직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현세대의 편리를 위한 원전 강국으로의 도약은 후세대에 환경적 부담과 위험 그리고 지역 간, 지역 내 분열과 상처를 물려주게 될 것이 자명하다. 이것이 진정 “공정과 상식의 원칙을 세우는 일”에 해당하는지 윤석열 정부에 물어야 할 때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관리 전공 석사과정 김민아·박현지, 박사과정 Emily Marie Lim, 서울대 사범대학 환경교육전공 박사과정 정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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