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사랑은 진하게 복수는 확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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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으면 억울하고 분하다. 그 사람이 한 만큼 복수하고 싶지만 똑같은 사람이 될 것 같아 복수의 칼날을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 본성은 어디 가지 않는다.

‘격노한 메데이아’ (1862년, 캔버스에 유채, 루브르박물관 소장)

‘격노한 메데이아’ (1862년, 캔버스에 유채, 루브르박물관 소장)

그리스 신화에서 배신한 사람에게 가장 확실하게 복수한 악녀가 메데이아다. 마법사 메데이아는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의 딸이자 태양신 헬리오스의 손녀로 영리했지만, 자존심과 질투심이 강했다. 그는 아르고 원정대를 이끌고 온 이아손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이아손은 그리스 고대 도시인 이올코스의 왕 아이손의 아들이었다. 이아손은 삼촌인 펠리아스의 섭정으로부터 이올코스의 왕위를 되찾기 위해 메데이아가 사는 콜키스에 보관된 황금 양털을 가져가야만 했다. 콜키스의 왕이자 메데이아의 아버지인 아이에테스는 황금 양털을 원하는 이아손에게 어려운 과제를 낸다. 사랑에 빠진 메데이아는 아버지를 배신하고 마법을 부려 이아손이 황금 양털을 갖도록 도왔다.

결국 메데이아는 아버지의 분노를 피하려 이아손과 함께 달아난다. 이아손은 황금 양털을 가지고 금의환향했지만, 펠리아스는 쉽게 왕위를 내주지 않는다. 메데이아는 마법의 힘으로 이아손이 왕이 되는 걸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한다. 그 죄로 이아손과 메데이아는 코린토스로 추방됐고, 그곳에서 두 아들을 낳고 10년을 지냈다.

메데이아에게 싫증이 난 이아손은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의 딸인 글라우케와 결혼하려 한다. 이아손은 메데이아의 아들들을 왕가의 격에 맞는 삶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라며 메데이아를 설득한다.

메데이아는 남편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며 복수를 계획한다. 그는 약혼녀 글라우케에게 마법에 걸린 옷을 선사해 산 채로 불태워 죽인다. 메데이아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이아손이 가장 사랑하는 자식들을 죽이기에 이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기보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자식을 죽이는 방법을 택한다. 그보다 큰 복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메데이아가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식을 죽이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의 ‘격노한 메데이아’이다. 메데이아가 산속 동굴 안에서 손에 칼을 쥐 채 두 아이를 끌어안고 있다. 동굴 밖을 향하고 있는 시선은 남편 이아손을 기다리고 있음을 나타낸다.

손에 쥐고 있는 칼은 아이들을 죽일 것을 암시한다. 팔에 안겨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은 죽음에 무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두운 동굴에서 젖가슴을 드러낸 채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은 전형적인 어머니로서의 모습보다는 질투에 눈이 먼 여인의 모습이다. 이 작품은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을 받아 희게 빛나는 메데이아의 육체와 칼을 쥐고 있는 손이 강한 대비를 이루면서 처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권력을 위해 두 번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한 이아손처럼 물불을 안 가리는 사람들은 똑같은 일을 반복하곤 한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상대방이 어떻게 돼도 상관이 없다.

<박희숙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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