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만으로도 이렇게 여론이 갈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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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중국 간첩이냐”, “간만에 좋은 기사 잘 봤다.”

주간경향 1486호에 실린 ‘내 편 네 편 가르는 국가들, 세계화 시대가 저물어간다’라는 기사 반응 중 일부입니다. 해당 기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기점으로 분명해지고 있는 국제사회의 ‘편가르기’ 움직임을 소개했습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해 얻은 결과와 의미도 함께 분석했습니다.

김찬호 기자

김찬호 기자

굳이 이 기사에 달린 반응을 소개하는 것은 욕을 먹어서 화가 난다거나 칭찬을 받아서 기분이 좋기 때문이 아닙니다. 기사 하나를 두고도 이렇게까지 여론이 갈리는데 어떻게 국익만 생각하는 ‘외교’가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외교도 결국 정치가 합니다. 정치는 여론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한국 외교정책의 방향이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한쪽은 미국, 또 다른 한쪽은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요구하는 세력을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습니다. 국익은 그 중간지점 어딘가에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여론지형으로는 결코 다가가기 어려운 곳입니다.

다시, “중국 간첩이냐”는 어느 독자의 반응을 생각해봅니다. 한국 외교의 상황, 예상되는 어려움, 국익추구 방안을 소개하는 기사가 어쩌다 중국을 옹호하는 것으로 읽혔을지 고민입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고, 중국에 대한 관세 인하를 추진하는 것처럼 한국도 국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거슬렸을까요? ‘국익이 반드시 중국과 가깝게 지내야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기사에 썼어야 했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한편으로는 외교정책을 둘러싼 양극단의 대립이 기사와 기자를 향한 댓글 차원에서 끝났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일선에서 노력하는 정부 관계자들은 여론과 관계없이 오직 ‘국익’만을 위해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미들파워(중견국가)는 외교능력이 그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국제질서의 전환기라는 위기이자 기회를 동시에 맞았습니다. 부디 살벌한 외교 무대를 “정상 간 얼굴이나 익히고, 인사나 하는 자리”로 여기지 말고, ‘국익’을 얻기 위한 기회의 장으로 활용했으면 합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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