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된 ‘기후불안’…그린워싱으로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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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넘어 ‘외상 전 스트레스 장애’까지

“잘 먹겠습니다. 잘 버리겠습니다.” 배달의민족의 ‘배민그린’ 캠페인 광고는 이렇게 시작한다. ‘빨갛게 물든 떡볶이 통, 어떻게 버릴까?’, ‘양념치킨을 싸는 호일, 어떻게 버릴까?’, ‘피자에 꽂는 그거 어떻게 버릴까?’ 등 주요 배달음식이 남기는 쓰레기를 분리배출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영상에는 ‘배달음식 많이 시켜서 쓰레기가 늘어 신경이 쓰였는데 앞으로 재활용 열심히 해야겠다’, ‘조금씩 노력하면 지구를 지킬 수 있다’, ‘이런 영상이 필요했다. 분리배출 팁을 줘서 고맙다’는 내용의 댓글이 달렸다.

사진/이준헌 기자

사진/이준헌 기자

꽤 까다롭고 번거로워 보이는 쓰레기 분리배출 방법에 소비자들이 환호했던 이유는 배달음식을 시켜먹을 때마다 남는 ‘죄책감’ 때문이다. 녹색연합이 2020년 10월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배달음식을 시켜먹은 경험이 있는 응답자 4명 중 3명은 배달음식을 먹은 이후 남는 배달용기 쓰레기에 죄책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배달음식 쓰레기를 버릴 때 어떤 마음이 드나요?”라는 질문에 ‘마음이 불편하거나 걱정이 됨’(42%), ‘죄책감이 듦’(34%) 순으로 응답했다. 배민 광고 영상은 “우리 앞으로도 잘 먹고 잘 버려 지구에서 오래오래 살아보자”라며 배달음식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편한 마음을 다독이며 끝을 맺는다.

우울 넘어 ‘외상 전 스트레스 장애’까지

‘기후불안’은 기후변화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 죄책감, 우울, 슬픔, 분노 등 부정적인 심리적 증상을 겪는 것을 말한다.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후불안’은 우리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어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았다.

여성환경연대는 지난 4월 ‘기후우울을 마주하는 글쓰기 워크숍’을 열고, 그 과정을 담은 책 <지구를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이 소중하니까>를 발간했다. 책에는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하는 ‘기후우울’의 모습이 담겨 있다.

“다 정리하고 나니 100ℓ 쓰레기봉투 2개 분량의 플라스틱이 나왔다. 오전에도 한 번 비우니까 이 카페에서만 하루 300~400ℓ 분량의 플라스틱이 버려지는 셈이다. 쓰레기더미를 보며 내가 지구를 망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죄책감이 들고 괴로웠다.”(혜민), “하루의 끝에서 ‘아무것도 소비하지 않은 날’에 대해 생각해본다. 오늘 내 통장에선 1원도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정말 ‘아무것도 소비하지 않은 날’을 성공할 것일까? 스마트폰, 와이파이, 컴퓨터, 전등을 쓰며 하루종일 전기가 나갔다. 빨래, 설거지, 샤워로 물도 쓰고 가스도 썼다. 내가 쓴 에너지자원을 생산하기 위해 많은 탄소가 배출됐겠지?”(이지원), “너무 바쁠 때면 편리한 배달음식이나 구하기 쉬운 잡식 음식이 생각나곤 했다. 스스로 유약한 마음이 들 때 유튜브를 켜고 공장식 축산 영상을 봤다. 30초가 지나고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마음을 다시 잡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편하게 생활하는 것들이 저런 폭력을 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고가희)

기후불안은 일상의 우울을 넘어 트라우마와 같은 깊은 우울로 사람들을 끌어당기기도 한다.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모든 것>(아야나 엘리자베스 존슨 외·나름북스)에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리제 반 서스테렌이 기후불안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증상과 유사한 스트레스와 수면장애를 겪는 내용이 나온다.

지난 3월 청소년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국정과제 1순위에 올려줄 것을 요구하며 기후파업을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지난 3월 청소년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국정과제 1순위에 올려줄 것을 요구하며 기후파업을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철조망에 둘러싸인 난민, 허리케인 길목에 갇힌 동물, 홍수로 좌초된 사람들이 보였다. 최악의 이미지는 알지 못하는 한 아이였는데, 그 아이는 모든 아이를 대표하는 존재였다. 아이는 그를 바라보며 똑같은 질문을 몇 번이고 했다. ‘왜 아무것도 안 한 거죠?’”

그는 상상 속의 기후 재난을 실제로 겪지 않았음에도 PTSD와 동일한 증상을 겪는 자신의 상태를 외상 전 스트레스장애(pre-TSD)라고 이름 붙였다. 그는 곤충들이 사라지고 빙하가 녹아 없어지고 대형산불과 기후난민이 발생하는 뉴스를 사람들이 애써 외면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변화는 결국 사람들의 마음에 기록돼 트라우마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기구들도 일상을 잠식하고 있는 기후불안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6월 3일 유엔환경회의 50주년을 기념한 정책브리핑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이 불안, 우울, 슬픔 등 정서적 고통을 야기하고 있으며 이는 점점 더 우리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이에 대응할 정신건강 지원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는 기후변화가 정신건강과 심리에 위협이 된다고 말했다.

‘기후불안’을 겨냥한 ‘그린워싱’

조금씩 일상을 짓누르는 기후불안에 사람들은 ‘친환경 제품 구입’, ‘적극적인 분리배출’ 등의 행동을 통해 기후불안에서 벗어날 출구를 찾으려 한다. 앞서 배달의민족 사례처럼 배달음식을 먹어 다량의 쓰레기를 배출했다는 죄책감에 분리배출 캠페인 영상을 보며 공감하는 것처럼 말이다. 2021년 발표된 논문 ‘배달음식 소비자의 환경의식과 에코 죄책감이 친환경행동에 미치는 영향’(곽연경·전도현)에 따르면, 환경에 대한 염려나 죄책감은 ‘과대 포장된 상품을 구매하지 않음’ ‘다회용품 사용’, ‘친환경 제품을 구매’,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 사용’, ‘1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음’과 같은 소비자의 친환경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기후불안’에 따른 소비자들의 ‘친환경행동’은 기업들의 ‘그린워싱(green-washing)’’ 마케팅에 이용되기도 한다. 그린워싱은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환경주의’를 가리킨다. 기업이 제품 생산의 전(全)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문제는 축소하고 재활용 등의 일부 과정만을 부각해 마치 친환경 제품인 양 포장하는 행태가 이에 해당한다. 예컨대 배달의민족 ‘분리배출’ 캠페인은 근본적으로 일회용 배달용기 쓰레기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가리는 ‘그린워싱’일 수도 있다. 허승은 녹색연합 팀장은 “분리배출 방법도 소비자가 알아야 할 정보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쓰레기 자체를 줄일 방법을 더 우선해서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0년 녹색연합의 설문조사에서 소비자들은 배달쓰레기 처리대책에서 가장 시급한 것으로 ‘다회용기 사용확대시스템’(40%) ‘일회용기 감소를 위한 규제’(33%)를 꼽았다. 허 팀장은 “배달의민족은 올 하반기부터 서울시와 협약을 맺고 다회용기 도입 시범사업을 하겠다고 했으니 의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은 “그린워싱은 지금 워낙 포화상태이고 둔감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일일이 다 가려내기 어렵다”면서 “소비자들이 일상과 맞닿아 있는 일회용 플라스틱컵 사용 문제 등에 신경을 많이 쓰지만, 그것보다 훨씬 큰 파급력을 미치는 대기업들의 그린워싱에 좀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 3월 ‘두산에너빌리티’로 사명을 변경한 후 그린워싱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에너빌리티’는 에너지(energy)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합친 단어다. 그러나 베트남 등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 두산중공업이 친환경 이미지로 사명을 변경한 것은 친환경 이미지만 부각하려는 포장술에 불과하다는 지적이었다. 에너지기업인 SK E&S는 자신들의 액화천연가스를 ‘탄소 없는 친환경 LNG’라고 광고했다가 그린워싱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SK E&S는 가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기 때문에 ‘탄소 없는’이라고 표현했지만, 환경단체는 해당 기술이 현재 그 효과가 입증되지 않아 과장광고라고 비판했다.

2021년 2월 청년기후위기 활동가들이 두산중공업이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참여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기습 시위를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2021년 2월 청년기후위기 활동가들이 두산중공업이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참여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기습 시위를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기후위기는 개인의 친환경행동으로 극복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문제다. 개인으로선 기후불안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나온 IPCC 보고서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려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19년 대비 43% 감축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평균기온 상승이 1.5도를 넘어서면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 물과 식량을 둘러싼 전쟁, 대규모 기후난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다. 전 지구적 과제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고 기업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

지난해 출간된 책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마이클 셸런버거·부키)의 인기는 기후위기 앞에 무력한 개인이 느끼는 당혹스러움을 방증한다. 이 책은 경제가 발전하면 환경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되고, 이를 위해서는 원자력발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논지를 밀고 나간다. 출간 1년 만에 33쇄를 찍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출간 때부터 자신의 입장에 맞는 데이터만 골라 편집한 전형적인 ‘체리피킹(자신의 주장에 유리한 근거만 제시)’ 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예컨대 책은 2019년 발생한 아마존 산불이 기후변화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아마존 산불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산불은 기후변화 때문이 아니다’라고 제대로 보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작가가 기사 중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고른 것으로 실제 기사를 보면 “이 산불들은 기후변화 때문이 아니다. 크게 보면 인간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산불을 더 크게 만들었을 수 있다. 높은 기온과 건조한 공기는 산불을 더 뜨겁게, 그리고 더 빨리 퍼지게 만들 수 있다”고 돼 있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 기후변화 특임교수는 과학적 오류에도 이 책이 인기를 얻는 현상을 두고 “기후위기 문제는 지금껏 우리가 혜택을 누리며 살아온 이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이 책은 과학이라는 포장지를 두르고 우리가 해왔던 대로 밀고 나가면 충분히 잘살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에 당혹스러움을 느낀 사람들이 이 책에 환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류로 점철된 책이지만, ‘지금처럼 살아도 된다’는 메시지는 기후불안을 회피할 수 있는 기제가 된다.

침묵하기보다 함께 이야기하기

전문가들은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기후불안’을 외면하거나 회피하기보다는 스스로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이를 주변과 공유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후변화의 심리학>(조지 마셜·갈마바람)은 지금까지 실생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후 담론은 집단 침묵이라는 ‘무담론’이었다고 짚는다. “기후변화는 그중에서도 말로 표현되지 않는 이야기, 즉 침묵이라는 집단적 사회 규범이 가장 폭넓게 퍼져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이런 반응은 또 다른 거대한 금기인 죽음에 대한 반응과 매우 유사하며,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둘 사이에는 훨씬 많은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침묵하기보다 기후위기를 자신의 말로 표현하고 이를 주변과 공유하면, 기후불안을 완화하고 기후위기를 넘어설 공동행동을 잇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 여성환경연대의 글쓰기 워크숍 회원들은 기후우울증을 마주하는 방법으로 혼자 감정을 안고 있기보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게 주효했다. 워크숍을 이끈 모두를위한환경교육연구소 하리타 비상임연구원은 "워크숍 참가자들은 평소 기후위기와 관련된 고민들, 또 자신의 삶에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실천하고 있는 것들을 글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반가워했다"라며 "이분들은 주변에서 예민하다, 유난스럽다는 반응에 기후위기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없었기에 더욱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워크숍은 매시간 공감과 위안을 나누는 자리였다. 하리타 연구원은 "참가자들은 무엇보다 자신처럼 예민하게 기후위기를 감지하고 여기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에 위안을 받았다. 고립감과 좌절감도 덜하게 됐다는 반응도 많았다"라며 "워크숍은 끝났지만 앞으로도 느슨하게 연결돼 분기별 한 번씩이라도 이 주제를 갖고 만남을 이어가고자 하는 돈독한 유대가 형성됐다. 막다른 골목이라고 생각했는데, 워크숍이 희망을 발견하고 기후위기에 관심을 갖고 행동해야겠다는 영감을 주는 자리가 됐다"고 말했다.

기후불안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 기후위기를 벗어나 안전한 장소는 없다는 막막함에서 비롯된다. 이는 역으로 세계는 연결돼 있고, 기후변화는 결국 함께 풀어야 하는 숙제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나’의 감정을 잘 들여다보고 여기에서 출발하되, ‘우리’로 확장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천호 교수는 “기후불안을 겪는 ‘나’의 감수성은 이 세상이 안전해야 하고, 다음 세대도 안전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이를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개인’은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있다. 그런데 기후위기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넘어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극복이 가능하다. ‘나’로부터 출발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우 연구위원은 “기후변화에 대한 ‘느낌’이 있을 때,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인 데이터도 정확하게 받아들이고 잘 해석을 할 수 있다”며 “기후변화에 대해 한 개인이 느끼는 감정은 ‘위협’이지만, 이를 공동체가 함께 극복해 간다는 ‘효능감’으로 전환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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