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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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1일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 ‘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경찰관과 시민단체가 한목소리로 정부를 규탄했다. 행정안전부의 ‘경찰 제도 개선 자문위원회’가 경찰국(가칭) 신설과 행안부 장관의 경찰 지휘 규정 신설 등의 권고안을 발표하기 약 2시간 전이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경찰청 직장협의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소진 경위는 1인 시위를 했다. ‘행안부 경찰 통제는 헌법 권력분립 위배와 국민 인권 침해의 결정판’, ‘경찰의 민주성·독립성·책임성은 영원불변의 가치’ 등의 내용을 담은 팻말을 세웠다. 그는 기자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한쪽에서는 경찰개혁네트워크가 같은 취지로 행안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행안부 자문위의 권고안이 실행되면 경찰이 31년 전 내무부 소속 치안본부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여러 시민단체로 구성된 경찰개혁네트워크는 그간 경찰 활동 및 정책을 모니터링하고 비판하는 활동을 해왔다.

행안부 자문위의 권고안 발표 이후 경찰의 반발은 더 거세지고 있다. 결국 김창룡 경찰청장이 지난 6월 27일 사의를 표명했다. 차기 경찰청장은 행안부의 경찰 통제 방안 조율과 조직 수습이라는 무거운 숙제를 안게 됐다. 경찰청장 후보로 윤희근 경찰청 차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우철문 부산경찰청장 등 3명이 오르내린다.

후보군 중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최근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그는 지난 6월 20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불법행위는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 사법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사다리 시위를 언급했다. ‘법질서 확립’이라는 일반적인 원칙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전장연 시위를 예로 들어 논란을 자초했다. “지구 끝까지 찾아간다”는 표현은 보통 흉악범을 상대할 때 쓰는 표현이다. 또 김 청장은 행안부 자문위의 권고안 발표를 앞둔 상황에서 어떤 입장이냐고 묻자 “확정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경찰 안팎에선 ‘정권 코드 맞추기’라는 얘기가 나왔다.

일선 경찰관들은 행안부의 경찰 통제 방안을 두고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서울의 치안을 총괄 책임지는 지휘관은 권력을 좇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묘한’ 상황이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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