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 때아닌 반도체 열풍… 문제는 디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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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인력 수준 달라 ‘어떤 인재’ 키우냐가 핵심

교육부의 숨 가쁜 행보에 “급한 진행” 지적도

6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반도체 인력 양성 방안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6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반도체 인력 양성 방안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교육계에 때아닌 반도체 열풍이 불고 있다. 시작은 윤석열 대통령의 한마디였다. “교육부는 스스로 경제부처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전 교육부와는 다른 기준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부의 첫 번째 의무는 산업발전에 필요한 인재 공급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7일 국무회의에서 전 부처에 반도체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교육부는 과학기술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할 때만 의미가 있다. 그런 혁신을 수행하지 않으면 교육부가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해 사실상 교육부를 강하게 질책한 것이란 평이 뒤따르고 있다.

‘반도체 인재를 만들겠다’는 명제 자체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반도체학과를 만드는 방안에 찬성하는 의견이 높았다. 한국리서치 정기조사(6월 22일 발표)를 보면, 반도체학과 신설 및 정원 확대에 찬성이 68%로 반대(19%)보다 높았다. 이 신설과 정원 확대는 지방 대학 중심이어야 한다는 데에는 73%가 동의했다. 문제는 ‘디테일’이다. 취지는 좋은, 반도체 인재 양성 정책의 ‘디테일’은 무엇인가. 우려와 제안을 살펴봤다.

어느 수준의, 어떤 분야 인재?

핵심은 고졸, 전문학사, 학사, 석사, 박사 중 어느 수준의 인재를 어떤 반도체 분야 인력으로 길러내느냐다. 반도체산업은 설계, 제조, 조립, 검사, 장비, 재료 등 하위 분야로 나뉘고 분야마다 필요로 하는 인력이 다르다. 국회에서 지난 6월 22일 열린 ‘반도체 인력 양성 방안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조승래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7인 공동주최)에서는 교육과 산업 현장의 인력 ‘미스매치’가 주요 문제로 언급됐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학력별 부족 인원을 보면 반도체산업 자체가 생산시설이 자동화되기 시작하면서 석박사 비율이 높아졌다. 과거 전문학사~학사 수준이 많았던 장비, 재료 쪽에도 갈수록 석박사 비중이 커지며 부족 인원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기현 전무는 “그럼 ‘왜 안 뽑냐’를 물어봤더니, ‘회사에서 필요한 만큼 숙련이 안 돼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금도 채용 이후 일정 기간 교육을 하고 있다. 결국 눈높이가 안 맞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의 ‘2021년 산업기술인력 수급 실태조사’를 보면, 직무별 미충원 인원 발생 사유로 연구개발과 사무관리 쪽에선 ‘현장투입이 바로 가능한 숙련·경력 인력이 없어서’란 응답(각각 56.7%와 48.2%)이 높았고, 기술(능)직 분야에선 ‘구직 지원자 수가 적어서’란 답이 93.5%로 압도적이었다.

교육계, 때아닌 반도체 열풍… 문제는 디테일

아울러 같은 조사에서 규모가 작은 회사일수록 인력 부족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0~29인 업체의 부족률은 3.2%인데, 이는 업체 규모가 커질수록 줄어들어 300인 이상에선 0.5%에 불과하다. 안 전무는 “인력 문제는 대기업보다는 주로 소재, 부품, 장비 쪽을 맡는 중소기업이 심각하지만 이쪽에선 교육할 만한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토론회에서 김정호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또한 현재 정부 추진 전략의 문제점으로 ‘미스매치’를 꼽았다. 학부 졸업생 배출에 4~6년이 걸리고, 석박사는 10년 이상이 소요되는데다가 지원자가 갖춘 능력과 기업이 바라는 눈높이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김 교수는 “학생 배출과 사회 수요의 미스매치가 심각하다. 지원자의 기초가 부족하고, 반도체 관련 수강 과목이 매우 적어 회사에서 완전히 재교육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거기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한국 기업에서 미국 기업으로의 인력 유출도 미래에 더 심해질 것으로 본다”고 짚었다. 그는 반도체학과(지역 대학 5곳에 각 100명 정원), 반도체대학원(10곳에 각 100명 정원)을 설립해 장학금과 운영비를 정부가 지원하고 단기 아카데미를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아울러 부족한 교수 인력은 산업체의 박사 출신을 강사나 협력교수로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지방 대학·특성화고 살려야

반도체 인재 양성 방안으로 교육부는 반도체 관련 학과 신설과 수도권 대학 정원 확대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지난 6월 8일 교육부 출입기자단과 만나 “학부 이상 대학에서 반도체 관련 인력을 산업계에서 원하는 만큼 키워내야 하는데 대학에 대한 규제가 걸림돌로 남아 있다”며 “지금보다 파격적인 대안을 준비하고 있다. 조만간 발표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나 첨단분야 학과 정원이 순증하는가’란 질문에도 “순증이라 봐야 한다”고 답했다.

반도체학과 신설이나 정원 확대를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하다. 1982년 수도권 인구 집중 억제 차원에서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제정했다. 그 시행령의 ‘학교 총량규제’를 통해 수도권 대학 정원을 제한한다. 정 차관은 “수도권 대학 정원 총량규제 안에서 반도체학과 정원을 증원할지, 정원 규제를 받지 않는 계약학과를 추가적으로 만들지”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대학과 기업은 ‘계약학과’ 제도를 통해 인재를 공급해왔다. 계약학과는 산업체가 맞춤형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학과 채용계약을 맺어 운영하는 학위과정이다. 이는 전체 정원을 건드리지 않고, 반도체 등 첨단산업 관련 학과에 한해 1~2학년 자퇴 등으로 생긴 결손 인원만큼 입학 정원을 늘릴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7개 대학에서 반도체 계약학과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다.

수도권 대학의 정원 규제를 완화하는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을 두고 지역소멸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가뜩이나 지역 균형발전이 무너져 지방 대학이 위기에 처했는데, 반도체 인재 정책마저 수도권에 집중될 경우 이 위기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문석 부산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반도체 인력 부족이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 때문인가. 그 얘기는 다시 말하면 비수도권 대학에서는 반도체 인력 양성이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는 뜻인데,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도권 대학이 자체적으로 인문사회계·이공계 선발 인원 비율을 조절할 수 있는데도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갑자기 정원 규제 때문에 양성이 어렵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여기에 반도체학과 정원까지 (수도권에) 늘어난다면 그만큼 지방에서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지역 대학이 없어질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반도체 인재 양성 논의가 대학에만 집중됐다는 아쉬움도 나온다. 앞서 인용한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조사를 보면 반도체산업 학력별 부족 인원 1621명 중 고졸 인력이 894명(55.2%)을 차지했다. 인력 충원 어려움이 적은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현장에선 고졸 인력이 더 시급하다는 뜻이다. 이들은 주로 생산·설비유지·보수 분야를 맡고 있다. 교총은 지난 6월 16일 낸 입장문에서 “특성화고 반도체 관련 학과에 대해 교육과정 내실화를 위한 시설·기자재 확충, 교사 확보·연수 등 맞춤형 종합 지원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특성화고 졸업생 취업 활성화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홍섭근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미 반도체 분야 직업교육이 있는 만큼 특성화 고등학교에 계약학과를 만드는 식으로 좀더 어릴 때부터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6월 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보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6월 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보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숨 가쁜 교육부

윤 대통령의 질책 이후 교육부는 거의 하루 이틀 간격으로 반도체 일정을 잡고 있다. 교육부 장관이 아직 임명되지 않은 만큼 장상윤 차관이 중심이다. 장 차관은 지난 6월 9일엔 교육부를 찾아 반도체 인재 양성을 다시금 강조한 한덕수 국무총리를 만났고, 다음날엔 코로나19 대응 일일점검 회의 등 공개일정을 취소하고 교육개혁 관련 회의를 열었다. 지난 6월 14일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한 ‘반도체 인력 육성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 토론회’에도 참석했다. 다음날인 15일에는 ‘반도체산업 생태계와 인재 수요’ 공개토론회와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재 양성 특별팀 회의를 주재했다. 특히 이날(15일) 토론회에는 교육부 직원들도 화상으로 참여해 부 전체가 ‘반도체 열공’에 나선 모양새다. 장 차관은 6월 20일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를 찾았다. 7월 중으로 반도체 인재 양성 지원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처럼 숨 가쁜 행보를 두고 반도체 인재 관련 논의가 너무 급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섭근 연구위원은 “교육부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대통령이 ‘교육부 해체론’까지 거론하니, (반도체 인재 논의가) 이슈몰이식으로 무리하고 급격하게 흘러가고 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나쁜 케이스가 될 확률이 크다”고 지적했다. 홍 연구위원은 이어 1980년대 산업화가 급속하게 이뤄질 당시 조선이나 건축 관련 학과를 급격하게 늘렸지만 이후 채용시장에서 미스매칭이 일어난 점과 몇몇 기업연계형 학과가 초기에 비해 시들어진 사례를 들었다. 그는 “기업 입장에서도 10년 뒤를 예상하기 힘든 데다가, 정권이 바뀌게 되면 결국 (채용 보장을) 믿고 진학한 학생들만 ‘낙동강 오리알’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재 양성 특별팀이 최근 첫 회의를 마쳤다. 특별팀에는 교육부 외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참여한다. 정상은 교육부 인재양성과장은 6월 22일 토론회에서 “중소기업 인력 유출처럼 교육의 영역을 넘어서는 문제가 많이 있다. 여러 부처와 수단을 모색하고 있으며, 규제 개선뿐만 아니라 교육과정 활성화나 인프라 같은 지원이 필요한 사항을 논의하고 있다. 정말 우리가 길러야 하는 인력이 누구인지 등도 의견을 수렴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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