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노믹스, 낙수효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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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묵은 낙수효과론 꺼내 든 정부… 정권 입맛 따라 판단 바꾸는 기재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기업이 제대로 뛸 수 있게 해줘야 한다”며 법인세 인하를 골자로 한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설명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기업이 제대로 뛸 수 있게 해줘야 한다”며 법인세 인하를 골자로 한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설명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또다시 ‘낙수효과’다. 문재인 정부에서 잠시 사라졌던 용어가 감세와 규제 완화를 경제정책 기조로 삼은 윤석열 정부에서 재등장했다. 세 부담을 낮추고 규제를 없애면 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늘려 국가와 서민 경제가 살아날 것이란 기대와 믿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업이 제대로 뛸 수 있게 해줘야 (중략) 중산층과 서민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대기업의 법인세를 깎아주면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가 늘어날까. 가계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고착화된 양극화가 해소될까. 과거 낙수효과에 기댄 정책들이 성장은 고사하고 부작용만 키웠다는 점에서 낙수효과의 부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Y노믹스와 낙수효과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Y노믹스)은 감세와 규제 완화를 통한 민간·기업·시장 주도의 경제 활성화로 요약된다.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25→22%)가 대표적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과세표준 3000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하고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올렸다. 최고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9번째로 높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 경제정책 방향 발표 하루 뒤인 지난 6월 17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취재진에게 “글로벌 경쟁을 해나가는데 OECD 평균 법인세(21.5%)라든지 이런 것들을 좀 지켜줘야 기업이 더 경쟁력이 있고, 여러 부가가치가 생산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종합부동산세는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세 부담을 낮춘다. 종목당 100억원 이상 초고액 주식보유자 외에 국내 상장주식 양도소득세는 폐지한다. 지난 6월 16일 발표한 경제정책 방향에는 이 외에도 가업 승계 상속세 납부유예 제도 도입 등 실질적 세 부담을 줄여주는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기저에는 낙수효과 기대가 깔려 있다. 윗물이 넘쳐 아래로 흘러내린다는 뜻의 낙수효과는 대기업과 부유층의 소득이 늘어나면 더 많은 투자와 소비, 일자리가 생기면서 국가경제가 살아나고 서민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논리다. 이명박(MB)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나 박근혜 정부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와 비슷하다.

낙수효과 이론의 역사는 오래됐다. 출발은 고전경제학 창시자인 영국의 애덤 스미스다. 애덤 스미스가 주창한 ‘자유방임주의’는 정부의 간섭이 줄어들수록 경제 주체들이 자유롭게 시장을 이끌게 되면서 국가 경제가 번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896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윌리엄 브라이언이 “부자들을 더 번창하게 하면 그들의 번영이 위에서 아래로 새어 나온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대중의 번영이 모든 계층으로 차오르리라고 믿는 것이 민주당의 구상”이라고 말하면서 ‘낙수효과론’의 개념이 만들어졌다. 이후 1980년대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영국과 미국에서 대처리즘과 레이거니즘으로 확대·재생산됐다. 1981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의 레이거니즘은 고소득자 감세, 기업 규제 완화, 정부지출 축소 등을 골자로 한다. 이런 기조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까지 이어지면서 미국 공화당 행정부 경제정책의 기본 신념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선 MB 정부가 낙수효과를 기대한 경제정책을 전면에 내세웠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춘 데 이어 소득세, 상속·증여세, 종부세 인하 등 다양한 감세와 규제 완화를 단행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6월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6월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정권 따라 바뀐 기재부의 평가

법인세를 깎아주면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늘릴까. 기획재정부의 판단은 2~3년 사이에 180도 바뀌었다. 2019년 11월 4일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감세승수 추정과 정책적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세금을 100원 줄여주면 연간 국내총생산(GDP)이 평균 102원 증가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재부가 발끈했다. 곧바로 반박하는 내용의 보도참고자료 ‘기획재정부 입장’을 내고 “경제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감세조치는 소비·투자 등 지출증가로 연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어 “기업의 투자는 법인세뿐 아니라 대내외 경제여건, 전략적 의사결정 등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법인세 인하가 기업의 소비와 투자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고, 무엇보다 기업이 투자를 결정하는 판단은 감세 규모가 아니라 대내외 경제여건 등에 좌우된다고 강조했다.

기재부는 2017년 미국 감세효과에 대한 보고서(IMF·미 의회 조사국) 자료도 인용했다. 미국 500대 기업을 분석한 국제통화기금(IMF) 등 보고서에 따르면 감세조치에도 기업의 투자는 충분히 증가하지 않았으며 감세정책 이후 기업은 보유 현금의 80%를 주주에게 배분했다. 자본적 지출과 연구·개발 등 실질적 투자에는 나머지 20%만 썼다. 또 2017년 감세법안이 의회를 통과한 후 기업투자가 증가했으나, 이러한 투자증가는 법인세 감세가 아닌 미래 매출성장 기대가 주원인이라고 기재부는 설명했다. 기재부는 그러면서 “2019년 5월 미 의회 조사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고 35%의 법인세율을 21% 단일세율로 인하하는 등의) 감세조치가 미국의 경제성장에 거의 기여하지 않았다고 분석했으며, 감세조치에도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은 반면 기업들과 초고소득층이 감세에 따른 대부분의 이익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기재부는 정반대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월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법인세 인하는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고 세수 기반을 확대할 수 있는 장치”라고 했다. 기재부는 법인세 인하 등이 대기업·부자 감세라는 지적이 나오자 “최근 몇년간 기업투자가 위축된 부분이 있어 기업투자 활성화를 통한 민간 경제활력을 제고한다는 측면”(방기선 기재부 1차관)이라고 설명했다. 정권이 바뀌자 법인세 인하에 따른 낙수효과의 평가도 달라졌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왼쪽)와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가 지난 6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김승희)-교육부 장관 후보자(박순애) 검증 T/F 합동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정부가 발표한 감세와 규제완화를 통한 낙수효과론은 이미 실패했고 허황된 주장이며 현 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고 질타한다”고 말했다.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왼쪽)와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가 지난 6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김승희)-교육부 장관 후보자(박순애) 검증 T/F 합동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정부가 발표한 감세와 규제완화를 통한 낙수효과론은 이미 실패했고 허황된 주장이며 현 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고 질타한다”고 말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중소기업에도 혜택 돌아갈까

국내에선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매출의 상관관계로 낙수효과를 강조한 사례가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2020년 1월 내놓은 ‘고용 1000명 이상 기업(대기업)의 매출과 기업 수가 중견·중소기업 매출에 미치는 영향 분석’ 결과 보고서에서 대기업의 매출 증가가 중견 중견·중소기업의 매출 증대로 이어지는 낙수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자, 자동차, 화학 등 13개 제조업종의 2010~2018년 기업활동조사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내용이다. 일부 산업군에서 대기업 매출이 늘면 협력업체 매출도 따라 늘어난다고 돼 있다. 예컨대 자동차·트레일러 대기업의 매출이 2010년 107조1000억원에서 2018년 141조6000억원으로, 기업 수가 19개에서 25개로 증가할 때 관련 분야 중견·중소기업의 매출은 49조1000억원에서 70조6000억원으로 1.4배 늘었다.

원청기업의 매출액 증가가 1차 협력업체의 매출액 증가에 영향을 준다는 분석결과도 있다. 중소기업연구원(2017년)에 따르면 삼성전자 매출액이 1% 증가하면 1차 협력업체의 매출액이 0.562% 증가하고, 현대자동차 매출액이 1% 증가하면 1차 협력업체의 매출액은 0.43% 증가했다. 다만 이러한 효과는 2·3차 협력업체로 갈수록 크기가 크게 감소한다. 같은 조건에서 삼성전자 2·3차 협력업체의 매출액 증가는 각각 0.07%, 0.005%에 그치고 현대자동차는 각각 0.05%, 0.004%에 그쳤다.

법인세 인하로 일부 극소수 상위 기업들만 혜택을 보리라는 반론도 나온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지난 6월 21일 발표한 ‘나라살림브리핑 240호’를 보면,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로 혜택을 보는 기업은 법인세 신고 기업 중 0.01%, 법인세 납세 기업 중 0.02%에 불과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법인세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과세표준 구간 3000억원 초과 기업은 80여개다. 법인세 신고 법인 수(약 83만8000개)를 기준으로는 0.01%, 흑자가 발생해 법인세를 납부하는 흑자법인 수(약 53만2000개) 기준으로는 0.02%다.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로 혜택을 보는 기업이 전체의 0.01~0.02%에 그친다는 의미다. 세수는 줄어든다. 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 3%포인트 인하에 따른 세수 감소 효과를 2조~4조원으로 추산했다.

연구소는 한국 기업의 법인세 최고세율이 높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25%다. 영국(19.0%), 독일(15.8%), 일본(23.2%), 미국(21.0%) 등과 비교해 높다. 다만 한국은 지방세(2.5%)를 함께 과세하기 때문에 실제 세율은 27.5%다. 지방세 포함 기준으로 법인세 최고세율을 보면 한국 27.5%, 독일 29.9%, 일본 29.7%, 미국 25.8%, 프랑스 28.4%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기업의 세 부담은 어떨까. 세계은행이 공개하는 국가별 ‘총조세 및 부담률’(법인세뿐 아니라 사회보험료와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기여금 등 각종 준조세가 기업의 소득 대비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총조세 및 부담률은 33.2%다. OECD 국가 평균(41.6%)과 세계 평균(40.4%)에 비해 각각 8.4%포인트, 7.2%포인트 낮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1일(현지시간) 워싱턴 연방의사당에서 열린 국정연설에서 “낙수효과 이론은 더 낮은 경제 성장률, 낮은 임금, 더 큰 적자, 1세기 만의 최대 빈부 격차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워싱턴 |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1일(현지시간) 워싱턴 연방의사당에서 열린 국정연설에서 “낙수효과 이론은 더 낮은 경제 성장률, 낮은 임금, 더 큰 적자, 1세기 만의 최대 빈부 격차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워싱턴 | EPA연합뉴스

낙수효과는 없고 부작용만 크다

세계적 불평등 확대의 위험성을 경고해온 노벨경제학상 수상자(2001년)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낙수효과를 “허상”이라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에도 낙수효과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이 빈곤층을 돕지 못하고 있다”고 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낙수효과는 단 한 번도 작동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부유층과 기업의 증세 필요성을 강조해온 조 바이든 대통령은 법인세 인상을 추진 중이고, 영국 정부는 현행 19%인 최고세율을 내년 최고 25%까지 올릴 방침이다.

국내에서는 1960년대 이후 외환위기까지 압축 성장을 통해 낙수효과를 누렸지만 외환위기 이후엔 사라졌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투자 결정 기준은 ‘미래 성장 가능성을 담보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바뀌었다”며 “법인세를 감면하는 것이 기업의 투자나 고용을 결정짓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그나마 투자세액공제율 확대가 기업의 투자를 유인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에 앞서 감세와 규제 완화를 추진한 MB 정부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경제개혁연구소가 MB 정부 임기 말인 2012년 11월 내놓은 ‘이명박 정부 5년 평가와 박근혜 정부에게 주는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보면,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 수준은 약 61.27%였으나 2007년 63.53%로 2.3%포인트 개선됐다. MB 정부에서는 2008년 60.92%에서 2012년 56.64%로 4.3%포인트 떨어졌다. 소득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소득 불평등 정도가 크다는 의미)도 MB 정부가 0.290으로 가장 높다. 노무현 정부 0.281, 김대중 정부 0.279, 박근혜 정부 0.275 순이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노무현 정부 때 평균 4.33%, MB 정부 때는 2.92%였다. 전체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됐고 경제성장률은 나아지지 않았다. OECD도 2014년 12월 회원국의 1985년부터 2005년까지 지니계수와 1990년부터 2010년까지의 누적성장률을 토대로 분석한 연구보고서 <불평등과 성장>에서 “소득불평등이 오히려 경제 성장을 방해한다. 낙수효과의 환상에서 벗어나 양극화를 해소해야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OECD는 양극화 심화에 따른 경제성장률 저하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소득세와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감세 폐지, 부동산과 금융자산에 대한 조세 강화, 교육과 복지정책 등의 강화를 권고했다. 참여연대는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 나온 직후 성명에서 “이명박 정부 시기 대기업이 투자를 확대하고 낙수효과로 노동자, 청년, 중소기업이 혜택을 고용이나 일감의 혜택을 보았는가. 아무런 반성적인 평가도 없이 실패한 ‘줄푸세’ 정책의 반복은 윤석열 정부의 철학과 정책의 빈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고 했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여건을 감안해도 더 이상 낙수효과는 기대할 수 없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기업의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해외 진출한 대부분의 대기업은 현지 당국으로부터 ‘자국 기업이 생산하는 부품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고, 그럴 때는 그 나라 기업이 생산하는 소모품이라도 써야 한다”며 “이제는 국내 대기업 매출이 늘면 중소기업이 혜택을 보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보면 된다. 낙수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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