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8색 여행특집

천천히 뚜벅뚜벅, 나 홀로 제주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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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기 좋은 명소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제주도 수월봉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차귀도와 와도의 모습 / 김지환 기자

제주도 수월봉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차귀도와 와도의 모습 / 김지환 기자

‘제주도의 푸른 밤’ 가사처럼 제주도 여행은 일상의 짐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다. 아파트 담벼락이 아니라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설렘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제주도로 이끈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다시 한 번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육지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제주도 나 홀로 여행은 익숙한 일상과 결별한 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가끔 연인이나 단체 관광객들의 사진 촬영 요청 표적이 되거나 ‘혼밥’ 때 불편한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누군가와 대화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걷는 시간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이미 다녀온 곳이라 해도 혼자 가보면 새롭게 보이는 풍경이 나온다. 체력적으로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걸으며 사색하기 좋은 곳을 소개한다.

수월봉 지질 트레일 수월봉은 제주도의 가장 서쪽에 있는 오름이다. 1만4000년 전 펄펄 끓는 마그마가 바닷물을 만나 폭발적으로 분출하면서 만든 고리 모양 화산체의 일부다. 수월봉에서 분출한 화산재는 기름진 토양이 돼 신석기인들이 정착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이 됐다.

높이 77m의 수월봉은 ‘엉알’이라고 불리는 해안절벽을 따라 드러난 화산재 지층 속에 남겨진 다양한 화산 퇴적구조로 인해 화산학 연구의 교과서로 불린다.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지질공원이기도 하다. 정상에 올라 주변을 조망한 뒤 지질 트레일까지 걸으면 입체적으로 수월봉을 살펴볼 수 있다.

제주도 수월봉 지질 트레일에서 볼 수 있는 화산재 지층 / 김지환 기자

제주도 수월봉 지질 트레일에서 볼 수 있는 화산재 지층 / 김지환 기자

수월봉 근처에 접근하면 왼쪽은 수월봉 정상, 오른쪽은 지질 트레일 코스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인다. 우선 수월봉 정상 방향으로 가면 무료 주차장이 있다. 그곳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기우제를 지내던 육각정인 수월정이 나온다. 수월정 옆으로는 고산기상대가 우뚝 서 있다.

수월봉 꼭대기의 전망대에선 차귀도, 신창 풍차해안도로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탁 트인 전망과 시원한 바닷바람이 관광객의 발길을 오랫동안 붙잡는다. 이곳은 제주도에서 낙조 광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로도 꼽힌다.

수월봉 정상 조망이 끝나면 표지판 근처까지 다시 내려와 인근 길가에 주차하면 된다. 차에서 내린 뒤 표지판 우측으로 접어들면 지질 트레일이 곧장 시작된다. 수월봉 아래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지질 트레일은 A, B, C코스 등 세가지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가는 코스는 엉알길로 불리는 A코스(3.3㎞)다.

가파도와 마라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제주도 송악산 둘레길

가파도와 마라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제주도 송악산 둘레길

현무암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A코스를 걷다 보면 시루떡처럼 겹겹이 쌓여 있는 화산재 지층과 화산탄이 만들어내는 절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의 화산재 지층은 세계 화산백과사전에도 실려 있다고 한다. 해안길에는 어머니 병 치유를 위해 약초를 찾다 떨어져 죽은 누이(수월이)를 그리워하며 동생 녹고가 지금도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전설이 깃든 용천수(녹고의 눈물)가 있다. 실제로는 화산재 지층을 통과한 빗물이 화산재 지층 아래 진흙으로 된 층을 통과하지 못하고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A코스에선 <공포의 외인구단>, <이어도>의 촬영지였던 차귀도를 좀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A코스의 북쪽 끝에는 차귀도 선착장이 있다. 무인도인 차귀도에 가려면 유람선을 타야 한다. 운항시간은 전화(064-738-5355)로 문의하면 된다. 유람선 요금은 성인 1만6000원, 소인 1만3000원이다.

송악산 둘레길 제주 현지인들이 꼭 추천하는 산책코스 중 하나가 송악산 둘레길이다. 한번 가봤다고 해도 그 절경을 잊지 못해 다시 찾는 관광객들이 적지 않다.

산방산의 남쪽, 가파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바닷가에 솟은 송악산은 제주의 최남단에 있는 오름이다. 먼저 폭발한 큰 분화구 안에 두 번째 폭발로 지금의 주봉이 생기고 거기에 작은 분화구가 생겨난 이중화산체다. 99개의 작은 봉우리가 모여 있어 일명 ‘99봉’이라고도 부른다. 조선 유학자 청음 김상헌은 “옛날부터 이곳을 영주라 했는데 바다 돌며 놀 만한 명산”이라고 칭했다.

제주도 따라비 오름 / 김지환 기자

제주도 따라비 오름 / 김지환 기자

2.8㎞가량으로 부담 없이 걷기 적당한 송악산 둘레길은 다채로운 매력을 선보인다. 송악산 무료 주차장에서 출발할 때부터 보이는 형제섬, 산방산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새소리를 들으며 언덕을 오르면 방목해둔 말들의 모습도 보인다. 반복되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친 뒤 바다가 잘 보이는 지점에 서면 청보리밭으로 유명한 가파도와 한반도의 최남단 마라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6월엔 송악산에 있는 수국 군락지도 볼거리 중 하나다. 둘레길을 절반 이상 걸었을 때 나무 사이로 보이는 검은 모래밭도 인상적이다. 곳곳에 사진 찍기 좋은 곳이 많아 발걸음을 자주 멈추게 된다. 둘레길 바닥이 나무 데크로 돼 있어 비 오는 날 걷기에도 나쁘지 않다.

송악산은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군사기지를 만들기 위해 강제 동원된 제주 사람들의 고통과 참상을 돌아보는 ‘다크 투어’ 현장이기도 하다. 해안가 절벽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제주 사람들을 동원해 뚫어 놓은 인공동굴 15개가 있다.

송악산 주차장 인근에는 편의점, 음식점, 호떡·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 등이 있다. 용머리해안 등 이곳에서 멀지 않은 다음 여행지로 이동하기 전 에너지 보충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따라비 오름 ‘가을 오름의 여왕’이라 불리는 따라비 오름은 억새 명소로 유명하다.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이 오름은 3개의 분화구(굼부리)와 6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 화산이 폭발할 때 분출된 용암은 부드러운 산세를 만들어냈다.

무료 주차장에 차를 두고 조금 걸어 올라가면 표지판이 서 있다. 왼쪽으로 가면 정상, 오른쪽으로 가면 둘레길이라는 안내다. 정상으로 바로 가는 코스는 계단으로 돼 있다. 어느 쪽으로 가든 시간 차이가 아주 많이 나진 않기 때문에 주변 풍경을 천천히 살펴볼 수 있는 둘레길 코스를 선택하는 것도 괜찮다.

제주도 섭지코지 일대의 개방형 불턱

제주도 섭지코지 일대의 개방형 불턱

곳곳에 있는 나비를 보고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길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착한다. 땀이 흐르고 숨이 가쁘지만 체력적으로 크게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정상에선 따라비 오름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능선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주변에 펼쳐진 다른 오름들과 하얀색 풍력발전기가 이곳이 제주도임을 실감케 한다. 가을이 아니라 해도 따라비 오름은 충분히 자신과 대화하며 걷기에 좋은 곳이다.

섭지코지 제주 동부 해안에 볼록 튀어나온 섭지코지는 성산 일출봉을 배경으로 한 해안 풍경이 절경이다. 2003년 드라마 <올인>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 유명해졌다. 섭지코지의 섭지는 재사(才士)가 많이 배출되는 지세라는 뜻이다. 코지는 육지에서 바다로 톡 튀어나온 ‘곶’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협자연대’를 찾아볼 수 있다. 연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해 정치·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을 말한다. 봉수대와 기능 면에서 차이가 없으나 연대는 주로 구릉이나 해변 지역에 설치했고 봉수대는 산 정상에 설치해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을 피워 신호를 보냈다. 협자연대 위에는 직경 4.2m의 화덕 원형이 남아 있다.

바다로 눈을 돌려보면 산정에 등대가 세워져 있는 붉은오름과 선돌바위가 보인다. 붉은오름은 오름 내부에 붉은색의 화산송이가 쌓여 있어 붉은오름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등대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면 붉은오름 위에서 탁 트인 바다 전망을 볼 수 있다.

제주도 섭지코지 산책로에서 보이는 선돌바위 / 김지환 기자

제주도 섭지코지 산책로에서 보이는 선돌바위 / 김지환 기자

선돌바위는 ‘우뚝 서 있는 돌’이라는 뜻으로 용암이 굳어 형성된 암경(용암기둥)이다. 이 바위에 얽힌 전설이 있다. ‘이곳에서 목욕을 하던 선녀를 본 용왕의 막내아들이 용왕에게 선녀와의 혼인을 간청했다. 용왕은 100일 후 혼인을 약속했다. 100일이 되던 날 갑자기 바람이 거세지고 파도가 높아져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용왕으로부터 네 정성이 부족해 하늘이 혼인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막내아들은 슬픔에 잠겨 이곳에서 선 채로 바위가 됐다’는 내용이다.

산책로 중간쯤에는 일본 출신 세계적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글라스하우스’가 자리 잡고 있다. 전면을 통유리창으로 설계한 이곳에는 각종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나무로 된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발걸음을 돌린다. 이곳에서 멈추지 않고 조금 더 걸어가면 조용하게 산책을 할 수 있는 곳(고성·신양 어촌계 양식장)이 나온다. 성산 일출봉의 모습을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이 길에선 ‘불턱’도 볼 수 있다. 불턱은 해녀들이 물질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거나 쉬려고 만든 공간이다. 이곳에 있는 불턱은 겨울철 하늬바람을 막기 위해 북쪽으로 반타원형의 돌담을 쌓아둔 형태다. 원형인 다른 불턱과 달리 섭지코지 일대의 불턱은 개방형이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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