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코로나’ 시진핑에 독배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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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제 상황 악화에 리커창 급부상… 방역정책 불신도 깊어져

“올해는 내가 총리를 맡는 마지막 1년이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 등 중국 지도부가 모두 참석한 가운데 지난 3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 베이징|연합뉴스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 등 중국 지도부가 모두 참석한 가운데 지난 3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 베이징|연합뉴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임기를 언급했다. 2013년 3월 전인대에서 국무원 총리에 선출돼 시진핑(習近平) 집권 1∼2기를 함께한 리 총리는 3연임 제한에 따라 10년의 임기를 마무리하고 내년 3월 전인대에서 물러나게 된다. 중국 공산당 내 주요 파벌 중 하나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으로 한때 시 주석과 최고 권력자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그는 처음 총리가 될 당시만 해도 중국 경제정책을 주무르는 실세 총리가 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집권 1∼2기를 거쳐 시 주석의 1인 권력이 강화되면서 리 총리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실권 없는 총리’, ‘잊힌 2인자’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그런 그가 내외신 기자들 앞에 사실상 마지막으로 서는 기자회견에서 임기를 언급한 것은 마치 씁쓸한 고별사처럼 들렸다. 임기 마지막 해를 조용히 마무리할 것으로 보였던 리 총리의 존재감이 최근 새롭게 부각하고 있다. 그동안 존재감이 미약했던 말년 총리가 새삼스레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중국의 경제 상황 때문이다.

리커창 존재감 급부상

최근 리 총리 부상설의 도화선이 된 건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5월 14일자에 실린 연설문이다. 3주 전에 있었던 국무원 회의 연설 내용이 뒤늦게 전면에 걸쳐 보도되면서 그 배경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일부 외신은 공산당 내에서 시 주석의 강력한 권력에 균형을 맞추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해석했다. 5월 25일 경제 상황과 관련한 전국 단위 회의에서 나온 리 총리의 발언이 불을 붙였다. 그는 “4월 이후 취업과 산업생산 등의 지표가 선명히 낮아져 일부 방면에서는 2020년 심각한 코로나19 충격 때보다 어려움이 더 크다”며 경제 상황에 큰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 “한쪽으로의 쏠림이나 획일화를 방지하고 방역을 잘하는 동시에 경제사회 발전 임무를 잘 수행해야 한다”며 “(경제) 발전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기초이자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리 총리가 시 주석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제로(0) 코로나’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는 해석까지 나왔다. 급기야 공산당 내 권력투쟁설에 이어 ‘시샤리상(習下李上)’, 즉 시진핑이 지고 리커창이 뜬다는 말까지 회자하기 시작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리 총리의 역할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지난 3월 말 상하이의 도시 봉쇄로 중국 경제 상황이 크게 악화하면서부터다. 경제 상황을 염려하는 리 총리의 발언은 이미 공개 석상에서 여러차례 나왔다. 이런 상황이 권력 구도와 연결돼 해석되는 건 공산당이 올가을 시 주석의 3연임 여부를 결정할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시 주석 3연임은 이미 확정됐다고 보는 게 정설이지만 권력 재편기에는 온갖 소문과 추측이 난무하게 마련이다. 최근 갑자기 불거진 시 주석의 건강 이상설도 같은 맥락이다. 일부 외신이 시 주석이 뇌동맥류 진단을 받았다는 보도를 내놨지만 시 주석은 여러차례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이른바 ‘시자쥔(習家軍·시진핑 사단)’으로 분류되는 톈진(天津)시장의 돌연사를 놓고 부패 의혹을 고리로 한 리 총리 측의 반격이라는 추측이 나도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봉쇄령이 내려진 중국 상하이 푸둥지역으로 향하는 터널 입구에서 경찰관들이 방호복을 입은 채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 상하이|로이터연합뉴스

지난 3월 봉쇄령이 내려진 중국 상하이 푸둥지역으로 향하는 터널 입구에서 경찰관들이 방호복을 입은 채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 상하이|로이터연합뉴스

‘신뢰의 위기’

당 대회를 앞두고 다양한 설과 추측이 나돌지만 대부분은 근거가 불분명하다. 지금도 중국 안팎에서 시 주석의 장기집권을 의심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주로 시 주석의 권력 기반을 흔들려는 의도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렇다고 시 주석의 3연임에 당내 이견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기도 어렵다. 공산당 중앙판공청이 최근 퇴직 간부들에게 “당 중앙의 방침을 함부로 논하거나 부정적인 정치적 발언을 퍼트리지 말라”며 함구령을 내린 것도 당내 원로들을 중심으로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해석이 있다.

특히 시 주석이 제로 코로나를 고수하면서 경제 상황 악화로 3연임 가도에 일정 부분 발목이 잡히고 있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중국 정부는 올해 5.5% 안팎의 경제성장률 목표를 제시했지만 지난 1분기 성장률은 4.8%에 그쳤다. 2분기 성장률은 최악의 경우 1%대로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상하이 봉쇄가 시작된 이후의 각종 경제지표가 암울한 전망을 뒷받침한다. 지난 4월 중국의 소매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11.1% 감소했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의 선행지표 역할을 하는 산업생산 증가율은 -2.9%를 기록했다. 같은 달 도시 실업률은 중국 정부의 관리 목표(5.5%)를 넘어서는 6.1%였다. 모두 코로나19 확산 초기 경제적 충격이 컸던 2020년 2~3월 이후 최악의 수치다. 국제금융기관과 투자은행은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대까지 낮췄고 사실상 정부 목표 달성은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3연임을 준비하는 시 주석으로서는 뼈 아픈 결과다. 방역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공언은 허언이 되고 제로 코로나 정책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과 불만만 커질 수 있어서다. 이미 민심의 동요도 일고 있다. 상하이에서는 두 달 넘게 도시 봉쇄가 이어지면서 주민들이 식료품 부족에 시달리고 막무가내식 방역 조치에 항의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베이징과 톈진 등 다른 도시에서도 대학생들이 학교 측의 방역 조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 중국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일단 베이징과 상하이 등 주요 도시의 봉쇄가 모두 해제됐지만, 제로 코로나를 고집하는 한 비슷한 상황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

심각하게 바라봐야 할 것은 ‘신뢰의 위기’다. 개혁·개방기를 거치며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룬 중국사회에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일정한 자유를 희생하더라도 공산당의 일당 체제와 사회 시스템에 반기를 들지 않겠다는 일종의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가 존재했다. 특히 중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과 굴기를 보며 자란 지금의 젊은 세대는 중국의 애국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이었다. 2020년 중국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먼저 코로나19 확산을 통제하고 방역 성공을 만방에 과시하며 주요국 가운데 유일한 플러스 성장을 이룬 것은 이들의 자부심을 더욱 높이는 계기였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시점에서도 제로 코로나 정책을 지속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인민 사이에서 방역 정책에 대한 의문과 불신이 싹트고 있기 때문이다. 상하이 봉쇄 과정을 겪은 한 중국인 기자는 워싱턴포스트에 “(중국사회의) 암묵적 합의는 깨졌다. 행복하게 살게 해주면 (공산당의) 이익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신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그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종섭 베이징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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