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시대의 딜레마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물가를 잡을 뾰족한 수가 안 보입니다.” 5월 소비자물가 발표(6월 3일)를 며칠 앞두고 정부 관계자가 한 말입니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물가가 본격적으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이후 관련 기사를 쓸 때마다 종종 들었던 말이기도 합니다. 답답함을 토로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원유와 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뛰고, 공급망이 차질을 빚는 등 대외 악재가 직접적인 물가 상승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딱히 정부가 내놓을 카드가 없다는 얘깁니다.

안광호 기자

안광호 기자

급기야 5월 물가 상승률이 ‘5%대’(5.4%)로 치솟았습니다. 6월과 7월 물가는 더 오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뾰족한 수가 없다”는 말은 지금까지 내놓은 대책들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관세·부가가치세 인하 등을 골자로 한 정부의 민생안정대책의 월간 물가 상승률 인하 효과는 0.1%포인트에 그칠 것으로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통화당국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그나마 효율적인 대응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대출 차주들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고 경기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당장 급한 불을 꺼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급 측 요인으로 물가가 계속 오르고 있다는 점에서 금리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칫 경기 침체 속에 물가만 지속적으로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질 수 있습니다. 14년 전의 MB 정부처럼 공공요금 억제나 민간기업을 찍어 누르는 가격 통제 방식을 쓰기도 어렵습니다. 성공한 방식도 아니거니와 그때와는 경제 여건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경제에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통화·금융·세금·환율 등) 가용 가능한 정책수단을 총동원해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효과적인 대책이 나올지는 미지수입니다. 약속한 추경 때문에 “걷히지도 않은 세금을 이용한 숫자 맞추기식 가불 추경”이라는 비판까지 감수하며 초과세수를 만들고 지출구조조정으로 허리띠를 죄어 재원을 마련했지만, 이 또한 막대한 유동성 탓에 물가상승 압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서민 부담을 줄이겠다고 전기와 가스 등 공공요금을 마냥 억제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적자가 쌓일 대로 쌓였습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입니다. 화물연대 총파업도 변수입니다. 물류현장에서 장기간 운송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래저래 당분간 고물가의 고통을 피해갈 순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정부나 국민이나 앞에 놓인 길이 첩첩산중입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취재 후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