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비대칭 동맹’이 불러올 미래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윤 정부, IPEF 참여로 미국의 인태전략 지지

정책 전환에 북한 문제·한일 관계 등 난관 초래

아시아를 중심으로 국제정세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한반도는 그 중심에 서 있다. 지난 5월 21일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인도-태평양(인태) 전략’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물었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참여로 화답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현대 국제사회는 경제를 중심에 두고 정치·안보를 엮는 방식으로 새 판을 짜고 있다. 비슷한 수준의 경제블록이 중첩적으로 형성되는 것은 협력의 본질이 ‘세력 구분’에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결국 IPEF 참여도 한국이 미국 주도의 ‘경제’ 질서에 한발을 걸친 것이 아닌 중국 주도의 ‘세계’에서 한발을 뺐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한미동맹을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윤석열 정부의 기조를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관계 강화’를 시대정신으로 내세워 출범했다. 앞으로 5년 동안 한국은 미중 전략경쟁의 파고 속에 미국 쪽으로 다가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적 ‘기조’가 한미동맹의 ‘구조’와 만난다는 것이다. 당장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얻고자 한 모든 것을 얻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한국의 성과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단순히 정부의 협상력 문제가 아니다. 한미동맹이 강대국과 상대적 약소국의 ‘비대칭 동맹’이라는 구조적 문제는 앞으로 이러한 현상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중국을 겨냥한 협력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외관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IPEF 참여다. 해당 사안의 본질은 미국의 ‘인태전략’과의 연계다. 인태전략은 말 그대로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한다는 통합적 인식이다. 일본 등이 주창해온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 Pacific)’에서 착안해 미국이 전략으로 가다듬었다.

목표는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중국을 겨냥한다. 인도-태평양은 중국이 해양으로 나올 수 있는 길을 통칭한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전략을 구체화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재균형 정책(Rebalancing Strategy)’ 등을 내세웠지만 이는 ‘부상하는 중국’과 우호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더 가까웠다.

반면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중국과의 대결 의지를 드러냈다. ‘신고립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지역 전략에서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외쳤다. 2017년 11월,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인태전략을 구체화했다. “미국은 언제나 인도-태평양 국가일 것이고, 강압이나 부패가 아닌 자유와 개방성의 미래를 보장”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모든 국가의 주권과 독립 존중’, ‘분쟁의 평화적 해결’, ‘개방된 투자, 투명한 협약,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 ‘자유로운 항행과 비행을 포함하는 국제법 준수’를 원칙으로 제시했다. 하나하나가 중국의 행보와 배치되는 내용들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5월 23일 오전 일본 도쿄 소재 영빈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5월 23일 오전 일본 도쿄 소재 영빈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인태전략을 통한 중국견제는 두가지 측면에서 이뤄진다. 하나는 지정학적 측면이다. 대표적 사례가 미국·일본·인도·호주의 4개국 안보협의체 ‘쿼드’다. 2007년 등장했지만 호주와 일본의 발빼기로 1년도 안 돼 좌초됐다가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함께 부활했다. 쿼드 회담은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만 여덟 번 열렸다. ABT(Anything But Trumph·트럼프 빼고 전부 다)를 내세운 바이든 행정부가 유일하게 예외로 남겨둔 것도 인태전략이다. 계승에만 그치지 않고 오히려 발전시키는 모양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국장급 실무회담, 외교 장관회담 등을 거쳐 지난 5월 24일 일본 도쿄에서 쿼드 정상회담이 열렸다.

또 다른 하나는 지정학적 측면이다. 중국은 경제개발 재원이 필요한 인도-태평양 국가들에 대규모 금융 지원을 하는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 중이다. 경제적 연결고리 확보가 정치적 영향력 확대로 이어지는 구조다. 미국은 이에 대응할 다양한 기구를 시험하고 있는데 IPEF는 새롭게 떠오른 대안 중 하나다.

윤석열 정부는 IPEF 참여를 계기로 미국의 인태전략에 가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미정상회담 결과로 발표한 공동성명에서도 여러 차례 ‘인도-태평양’을 언급했다. “번영하고 평화로우며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유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동 지역에 걸쳐 상호 협력을 강화한다”거나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및 번영의 핵심요소로서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등의 내용이다. 이는 모두 중국을 겨누고 있다.

북한, 일본이라는 난관

정부 출범 11일 만에 열린 한미정상회담은 윤석열 정부의 대외전략 전환을 밝히는 계기가 됐다. 문제는 정책 전환이 초래할 난관이다.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과제는 북한 문제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 간 협력을 한반도 문제 해결의 지렛대로 삼았다. 북한 문제를 중심에 놓다 보니, 중국과의 관계 역시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전략적 모호성’으로 대표되는 균형외교는 미중 전략경쟁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판단뿐만 아니라 북한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 정부의 태생적 한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문재인 정부는 미중 경쟁 상황에 ‘연루’돼 북한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을 경계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대외전략을 설정하면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라는 정책적 고려에서 벗어난 듯한 모양새다. 외교무대를 한반도에서 인태지역으로 옮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손을 잡고 중국을 견제해 나가는 방식이다. 윤석열 정부는 미중 경쟁 상황에서 양쪽 모두로부터 ‘방기’돼 고립되는 상황을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북한 위협에 대한 대응이 미국의 확장억제에만 맞춰진다는 점이다. 확장억제는 북한의 핵 포기를 의미하는 ‘비핵화’와는 다른 범주다. 정부가 밝힌 비핵화 방안은 ‘북한 스스로 깨닫고 핵을 포기하고 나오라’는 것이다. 국제사회 공조를 통한 압박도 말하지만 북·중·러가 밀착하는 상황에서 큰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바이든 정부의 외교 우선순위에서 북한의 중요성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 역시 국제 공조를 통한 비핵화 가능성을 낮춘다.

북한은 바이든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이 끝난 지 불과 12시간 만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단거리 탄도미사일 3발을 섞어서 발사했다. 북한은 이들 미사일 모두에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북한발 위협이 고조되면 다시 중국 역할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역대 한국의 보수 정부뿐만 아니라 미국조차도 대북 압박을 위한 중국의 역할을 기대했다. 한국 정부의 인태전략 참여로 북한 문제 해법이 복잡해질 수 있다.

또 다른 난관은 한일관계다. 미국은 한·미·일 삼각협력을 대북공조 차원을 넘어 대중견제, 봉쇄 차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문제는 한일 간의 역사문제를 둘러싼 갈등이다. 양국은 반세기 넘게 해법 도출에 실패했다. 한일관계는 단순한 외교 문제가 아닌 국내정치적 사안과도 직결된다. 이미 인태전략의 중추로 자리 잡은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이냐가 또 다른 뇌관으로 떠올랐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미일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고 했다. 유엔 안보리 개혁을 전제로 한 발언이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안보리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외교적 수사로만 읽기도 어렵다는 의미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안보리 진출 추진을 놓고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외교부의 “찬성과 반대 차원을 넘어서는 복잡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이 전부다.

유사한 상황은 또 있다. 지난 5월 29~30일 한국 선박이 독도 주변에서 연이틀 해양조사를 하자 일본이 조사활동 중지를 요구했다. 독도 수역이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는 논리다. 일본 정부 대변인 역할을 하는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한국이 일본 EEZ에서의 해양조사에 대해 사전 동의를 구하지 않았으므로 강력히 항의했다”고 밝혔다. 한일 간 영토 문제가 한·미·일 협의의 의제로 오를 경우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자칫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처럼 문제가 졸속 처리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2019년 중국 방문길에 나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식 환영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인민해방군의 사열을 받고 있다. / 베이징 | AP연합뉴스

2019년 중국 방문길에 나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식 환영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인민해방군의 사열을 받고 있다. / 베이징 | AP연합뉴스

대미외교의 구조

‘비대칭 동맹’의 심화가 파생하는 문제는 주변국과의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장 근본적인 건 대미 외교에서 자율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느냐다. 한국이 미국의 안보지원에 의존하는 정도가 커질수록 ‘방기’에 대한 불안이 커진다. 이를 막기 위해 필연적으로 더욱 ‘연루’될 수밖에 없다. ‘자율성-안보 교환’의 딜레마다.

이를 해소하려면 ‘방기’가 초래하는 불안의 근원을 제거해야 한다. 한국 입장에서는 ‘북핵’ 문제의 해결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협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사실상 실패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부터 전임 정부와 반대 방향으로 질주하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는 ‘압박’을 선택했다. 정확히는 미국을 통한 압박이다. 결국 한국은 미국에 지불해야 할 비용이 늘어나는 구조로 들어섰다.

한국은 미국이 추진하는 인태전략을 지지 및 지원함으로써 비용을 지불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국과의 마찰은 한국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미국이 한국을 대신해 한반도에서 중국과 싸워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동시에 한국은 인태전략 내에서 일본·호주·인도 등과 전략적 지위를 놓고 다퉈야 한다. 일단 ‘연루’를 시작한 만큼 더 이상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논란은 소모적이다. 발생 가능한 문제점을 최소화하고 어떻게 한국이 인태전략의 중추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