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교육감 전성시대’ 막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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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대 보수 ‘14 대 3’에서 ‘9 대 8’로 좁혀져

오랜 ‘진보 교육감 전성시대’가 막을 내렸다. ‘교육 소통령’을 선출하는 교육감선거에서 진보 대 보수 구도는 ‘14 대 3’에서 ‘9 대 8’로 좁혀졌다. 대선 후 3개월 만에 치러진 이번 교육감선거는 진영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다. 선거가 끝났다. 비대면 장기화에 따른 학력 격차 등 코로나19의 상흔이 여전히 짙은 상황에서, 교육계의 새 지형은 교육 현장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 것인가. 17인의 교육감이 새로 탄생한 이번 선거 결과를 면밀히 들여다봤다.

서울교육감 선거에서 3선에 도전한 조희연 후보가 6월 2일 새벽 서울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지지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교육감 선거에서 3선에 도전한 조희연 후보가 6월 2일 새벽 서울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지지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진보 우세’ 구도 깨져

6월 1일 치른 교육감선거 결과 전국 17개 시도에서 진보 교육감은 9명(서울·세종·울산·광주·충남·전북·전남·인천·경남), 보수 교육감은 8명(경기·부산·대구·대전·경북·강원·충북·제주)이 당선됐다. 2018년 선거에서 대통령 탄핵 물결을 타고 ‘진보 교육감 14명 대 보수 교육감 3명’으로 압도적 차이를 벌렸던 것과 대조적이다. 2014년 선거에서도 진보 교육감이 13곳을 석권해 그간 교육감선거에선 ‘진보 교육감 대세론’이 통했으나, 이번 선거로 새 구도를 짰다.

교육감선거는 유권자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대체로 현직이 출마하면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충북·부산·제주에서는 진보 교육감들이 이 같은 ‘현직 프리미엄’을 누리지 못하고 떨어졌다. 경남 또한 진보 성향의 현직 교육감(박종훈 당선인)이 6750표차(0.47%포인트)로 겨우 재선에 성공했다. 인천에서도 현직인 도성훈 후보가 보수 후보를 1.97%포인트 차로 누르고 신승했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현직 교육감 13명 중 9명이 다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경기와 강원에선 오랜 진보 교육감 시대를 끝내고 보수 후보가 새로 뽑혔다. 경기는 현직 교육감이 출마하지 않은데다 MB 정부 참모와 윤석열 대통령 선대위 출신인 임태희 후보와 성기선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맞붙어 보수 대 진보 구도가 가장 치열한 지역으로 일찌감치 손꼽혔다. 결과는 교육감 주민직선제 도입 이후 처음으로 보수 성향인 임태희 후보(득표율 54.79%)의 당선이었다. 그간 경기에서는 김상곤 전 한신대 교수,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등 진보 성향 교육감이 연이어 당선됐다. 경기는 ‘진보 교육의 산실’이란 평까지 받았으나 이번 선거에서 민심이 기울었다. 현직 교육감이 출마하지 못한 강원 역시 신경호 후보가 보수 후보로서는 12년 만에 승리했다. 충북에서도 윤건영 후보가 당선돼 8년 만의 보수 교육감 탄생을 알렸다.

경기도교육감 선거에서 당선이 유력시되는 임태희 후보가 6월 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선거사무소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 경기사진공동취재단

경기도교육감 선거에서 당선이 유력시되는 임태희 후보가 6월 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선거사무소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 경기사진공동취재단

이번 교육감선거는 대선 후 약 3개월 만에 치르는 선거란 점에서 시작부터 진영 싸움의 성격을 띠었다. 보수 후보들은 일제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아웃(OUT)’을 내걸었다. 혁신학교와 혁신교육, 학생인권조례와 같은 진보 진영의 대표적 슬로건을 비판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진보가 여전히 과반을 차지했다. 근소한 차이여서 ‘대세’를 형성하진 못했기 때문에 이전처럼 진보 교육의 동력을 얻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특히 진보에서 보수로 구도가 바뀐 지역에서는 당장 교육 기조의 변화가 예상된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은 후보 시절 혁신학교와 꿈의학교를 두고 각각 “기본부터 잘못됐고 위헌 소지까지 있다”, “교육적 성과가 없다”고 비판하며 전면 재검토를 공언한 바 있다. 임 당선인은 당선 후에도 혁신학교에 대해 “혁신교육의 목적과 취지부터 구체적 프로그램까지 살펴보겠다”며 “정말 좋은 부분이 있다면 확산시킬 것이고 단순히 사업비를 집행하기 위한 정책들은 과감하게 손질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경호 강원도교육감 당선인 역시 “심각한 학력 저하와 편향된 이념, 구성원 갈등으로 혼란에 빠진 강원교육을 바로 잡으라는 도민의 명령으로 알고 이에 반드시 답하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진보 교육감 전성시대’ 막 내렸다

정책 변동 어떻게 되나

보수 교육감의 대거 등장으로 향후 학력진단과 보완 정책이 어떤 변화를 맞게 될지 주목된다. 그간 보수 교육계에서는 진보 교육이 학력을 저하시켰다는 논리를 펼쳐왔다. 이번 선거에서도 보수 후보들은 학업성취도진단평가를 강화해 기초학력을 신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학력 격차와 학습결손이 지난 2년 교육계에 떠오른 가장 큰 과제였던 만큼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후보들 사이에 대책이 시급하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는 상황이다.

교육감 당선인들의 일성은 ‘학력 신장’이었다. 윤건영 충청북도교육감 당선인은 당선 후 “(학생들의 학력신장을 위한) 진단평가 방법에 대한 방안을 (교육감으로서) 처음 결재하고 싶다”며 “(일부에서) 지필평가가 창의력 향상에 마이너스가 된다고 하는데, 창의성을 향상할 수 있는 것은 기초학력이 본질이다. 특정 집단이 나서 (진단평가를) 방해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산교대 총장과 교총 회장을 거친 하윤수 부산시교육감 당선인도 공약 우선순위로 학력을 꼽았다. 하 당선인은 “기초학력과 학업성취도를 높이고 교육격차와 양극화를 줄여나가겠다. 학생들의 학력 실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학생에게 정말 필요하고 적합한 교육적 도움을 주겠다. 그동안 홀대받아온 인성교육도 복원시킬 계획”이라고 했다. 3선에 성공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또한 “경쟁 후보들이 강조했던 기초학력, 돌봄, 방과 후 학교 질 제고 등의 문제를 경청하고 보완하겠다”고 했다.

교육계에서는 이제 선거가 끝난 만큼 진영 갈등을 봉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교조는 “지난 12년 진보교육 시대의 과제가 교육복지의 완성이었다면 이제는 경쟁에서 협력으로 근본적인 교육 대전환을 이룰 때”라며 “교육불평등 해소와 공공성 강화, 교육회복을 위해 교육감들이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길 바란다”고 밝혔다. 교총 또한 “교육은 선거의 전리품도, 선거 승자가 맘대로 좌지우지해도 되는 도구가 아니다. 정파와 이념을 초월해 오직 학생의 미래를 고민하는 교육감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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