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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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하늘길이 꽉 막히면서 대형 항공사들의 경영에도 빨간불이 켜진 줄 알았습니다. 아니랍니다. 비대면 장기화에 따른 화물 수요 증가로 오히려 수익이 늘었답니다. 위기에 베팅한 파생상품까지는 아니어도 비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우산장수는 웃는다는 말처럼 넷플릭스 등 OTT서비스 업체, 줌 등 화상회의 플랫폼, 쿠팡 등 전자상거래업체는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특수를 누렸습니다. 화물 운송 등으로 위험을 헤징(분산)할 수 없었던 저비용항공업계는 지금도 적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글로벌 위기는 상대적으로 힘없고 왜소한 취약계층을 먼저 파고든다, 불황의 그늘이자 외면하고 싶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양극화의 현실입니다.

[편집실에서]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빗장이 조금씩 열리면서 항공사들이 화물 운송에 맞게 개조한 기내 공간에 다시 좌석을 들여놓는 등 늘어나는 여행, 출장객들을 맞이할 채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지구촌에 조만간 엔데믹 시대가 도래하리라는 희망을 가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습니다. 하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닙니다. 세계는 지금 곪을 대로 곪아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좀처럼 끝날 기미가 안 보이고 첨예하게 대치 중인 두 강대국, 미국과 중국은 각국을 줄세우느라 바쁩니다. 일본보다 한국을 먼저 찾은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대만 침공 시 군사 개입” 운운하며 긴장을 한껏 끌어올렸습니다. 일본에서 열린 쿼드 정상 회의를 마친 바이든의 귀국길에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쐈습니다.

위험 헤징이 가능한 대마들이야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며 어떻게든 혼란기를 헤쳐가겠지만 그럴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체들은 급격한 쏠림 현상에 이리 휘청, 저리 휘청대느라 현기증도 모자라 멀미를 할 지경입니다. 국내 대기업들이 약속이나 한 듯 대규모 투자계획과 인력 채용 목표를 잇달아 밝히고 나섰습니다. 외양만 놓고 보면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입니다. 기업하기 좋은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기분 좋은 전조로 해석할 수도 있겠네요. “새 정부와 교감은 전혀 없었다. 자발적인 판단에 따른 조치일 뿐”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목소리를 높이니 국운이 융성하려나 싶기까지 합니다.

새 정부가 검찰, 경찰, 군 등 권력기관의 수뇌부 인사를 전광석화처럼 단행했습니다. ‘여의도의 저승사자’로 불리던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부활했고, 검사 중심 지청 규모의 인사 검증 조직을 법무부에 꾸렸습니다. 어떤 공직이라도 맡으려면 한동훈 장관의 ‘결재’를 거쳐야 후보 명단에라도 이름을 올려볼 수 있는 구조를 짰습니다. 인사 검증 과정에서 취득한 정보를 수사에 활용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말을 하긴 합니다. 물과 기름처럼 잘 나눌 수 있을까요. 누군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재계와 공직사회 전반에 드리우고 있습니다. 두려움의 실체는 당분간 잘 안 보일 겁니다. 그래서 더 효과적으로 작동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게 보통 사달이 나기 전까지는 잘 불거지지 않으니까요. 기우이길 바랍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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