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보유세, 잘만 활용하면 의미 있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보유세의 딜레마(하)

지난 연재에서 이제 보유세는 포기해야 할까 질문을 던지며 글을 맺었다. 참여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마저 보유세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시키지 못했고, 거센 조세저항마저 불렀기 때문이다. 두 정권 모두 부동산 정책이 가장 큰 실정으로 기록됐다. 무엇보다 정권이 교체됐다. 이 실패의 원인이 보유세라면 정말 포기하는 게 정답 아닐까.

지난 5월 8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아파트단지의 모습. / 연합뉴스

지난 5월 8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아파트단지의 모습. / 연합뉴스

최근의 흐름을 보면 보유세는 이미 정책수단으로서 포기된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재보궐선거 이전 문재인 정부의 보유세 정책에서 핵심은 ‘뒤늦은 대응’과 ‘핀셋 증세’로 요약할 수 있다. 보유세를 강화하는 정책으론 다주택 중과(무겁게 과세), 공시가격 현실화가 있었다. 완화 정책으로는 ‘등록 임대주택 세제 혜택’이 있었다. 재보궐선거 이후 정책은 특별히 분석할 필요도 없다. 세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만 줄곧 보유세 정책을 개편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공시가격 9억원부터 과세하던 종부세의 기준을 11억원으로 상향했다. 대선에서는 거대 양당이 보유세의 과세 기준인 공시가격을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린다는 점에서 거의 같은 내용의 공약을 내세웠다. 물론 더불어민주당은 장기적으로 보유세 강화와 거래세 완화의 기조를 내세웠다. 보유세를 강화하는 방안으로는 민간보유 전체 토지에 토지보유세를 부과하고 이와 연계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한국의 보유세 부담 높은 수준일까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하면서 보유세 완화의 흐름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심지어 6·1 지방선거에선 여야가 경쟁적으로 기존에 오른 보유세를 완화하는 수준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보유세마저 면제하겠다는 파격 공약을 내세웠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가 대표적이다. 송영길 후보는 1주택자의 종부세를 폐지하고, 다주택자의 종부세 부과기준을 1주택자와 마찬가지로 공시가격 6억원에서 11억원으로 상향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김은혜 후보는 기준시가 3억원 이하(시가 8억6000만원 상당)의 주택엔 재산세를 전면 면제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여야가 이런 경쟁을 하는 이유는 보유세 부담으로 유권자들이 화가 났고, 그 흐름이 지난해 재보궐선거부터 대선까지 이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대선의 1위와 2위 표차는 24만표인데 반해 서울에서만 31만표 차가 벌어졌다. 민주당은 텃밭이었으나 아파트값이 많이 오른 마포, 성동, 동대문, 동작 등에서 패배했다.

왜 이렇게 보유세를 높이려고 했다가 이젠 낮추려고만 하는 걸까. 재보궐선거 이전엔 보유세가 집값을 안정화하기 충분한 수준이 아니었다가, 그 이후엔 보유세가 부담스러워진 걸까. 실제 통계는 어떨까. 보유세의 수준을 판단하는 통계로 두가지를 많이 사용한다. 하나가 보유세 실효세율이고, 다른 하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보유세 비율이다.

일단 보유세 실효세율은 조세재정연구원이 정기적으로 직접 계산해 발표한다. 한국의 경우 집값 대비 보유세의 비중이 2018년 0.16%였다. 2020년엔 0.17%였다.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서도 최저 수준이다. 2018년 기준으로 미국은 0.99%, 영국은 0.75%이고, 프랑스(0.55%), 호주(0.34%), 일본(0.52%)도 한국을 상회한다. 우리랑 비슷한 국가는 독일로 실효세율이 0.12%다. 8개국 평균이 0.54%다.

보유세 부담이 적지 않다고 보는 쪽에선 OECD가 발표하는 GDP 대비 재산세 비중을 많이 언급한다. 이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GDP 대비 재산세 비중이 3.976%로 OECD 주요 국가들 가운데 1위다. 영국이 3.855%, 미국이 2.998%, 일본이 2.631% 등이다. OECD 평균은 1.617%다. OECD가 추산하는 재산세는 국내 법규상의 ‘재산세’와는 달리 부동산과 무관한 증권거래세, 차량취득세, 상속증여세뿐 아니라 부동산 거래세마저 포함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인수위 시절에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부동산 실효세율에 오류가 많고, 향후 차기 정부는 OECD가 발표하는 GDP 대비 부동산 자산세를 기준으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효세율 통계에 호주, 미국, 캐나다의 토지 가치에 기타 구조물을 제외하고 있어 실효세율이 높게 나온다는 문제 제기다. 조세재정연구원의 자료엔 해당 부분이 주석으로 표기돼 있다. 이를 감안해도 이들 국가와 한국과의 보유세 실효세율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유 의원의 주장과 관련해 보유세의 수준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하나 더 살펴야 할 통계가 있으니 바로 GDP 대비 부동산자산의 배율이다. 지난해 5월 발간된 조세재정브리프를 보면 GDP 대비 민간보유 부동산자산의 배율은 한국이 2018년 5.3배이다. 미국(2.7배), 영국(4.0배), 프랑스(4.9배), 독일(3.6배), 일본(3.6배), 캐나다(3.6배)는 모두 한국보다 낮다. OECD 주요 8개국 평균은 4.1배다. 다시 말해 한국은 그 어떤 선진국들보다 경제규모 대비 집값이 비싸다. 결국 GDP 대비 지표를 기준으로 삼을 땐 ‘세 부담이 큰 게 아니라 집값이 비싸 이런 수치가 나온 게 아닌지’ 늘 의심해야 한다.

정부가 1세대 1주택 보유세 부담을 2020년 수준으로 추가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1주택자의 세금 부담이 사례에 따라 절반 아래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사진은 5월 23일 서울의 부동산 중개업소 / 연합뉴스

정부가 1세대 1주택 보유세 부담을 2020년 수준으로 추가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1주택자의 세금 부담이 사례에 따라 절반 아래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사진은 5월 23일 서울의 부동산 중개업소 / 연합뉴스

보유세 찬반의 주요 논리

문제는 보유세 부담의 국제비교가 정책의 향방을 정하는 데 결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외국 사람들이 세금을 더 낸다고, 우리도 더 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정당성, 효과 등이 있어야 정책을 시행하고 유지할 수 있다. 보유세의 효과는 명확하다.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는 전제에서 어떤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매년 세금을 내야 한다면 그 자산의 가치는 내야 하는 세금의 규모에 따라 바뀐다. 이는 일정한 규모의 빚을 지고 이자를 내는 효과와 비슷한데, 해당 이자(세금)에 준하는 빚(자본)만큼 자산가격이 하락하는 효과가 있다. 이를 경제학에선 조세의 자본화 효과라고 한다.

현실 세계에선 보유세 이외에도 집값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많다. 실제 보유세의 부담 수준과 부동산 가격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를 살펴본 여러 실증 연구들이 있다. 상당수 연구에선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연구들만으로 보유세의 효과를 단정해선 안 된다. 국내에선 이미 부동산이 오르기 시작해 매수 심리가 커진 이후에 보유세를 정책수단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유세 효과가 없다기보다는 집값을 올린 다른 요인들의 효과가 더 컸다는 게 타당한 분석이다.

부동산 보유세를 대부분의 나라에서 지방 행정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지불하는 ‘지방세’로 운영하고 있어 부동산 가격 안정화 수단으로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취약한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대부분의 세금 제도는 한가지 목적만으로 운영하지 않는다. 행정서비스의 재원 마련뿐 아니라 재분배의 조정, 자산가격의 안정화 등도 세금의 중요한 역할이다.

보유세의 진정한 의미는 부동산의 투자 수익률 낮추기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결국 돈이 되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몰려갈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은 그 어떤 혁신적인 시도나, 의미 있는 일을 벌여도 부동산 투자만큼 수익을 내기 어렵다. 보유세 실효세율이 높은 미국이 부동산 투기보다 벤처 투자 쪽으로 자금이 몰리는 게 우연이 아니다.

일각에선 보유세보다 다른 정책수단으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택 수요가 수도권에 집중된 한국에선 대규모 공급이 쉽지 않다. 공급하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린다. 금융규제 역시 효과가 제한적이다. 참여정부 때 금융규제 도입 이후 시장이 안정화됐고, 문재인 정부 초기엔 강한 금융규제를 했지만 주택 수요가 줄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전세 제도로 인해 ‘갭투자’란 우회로가 있다. 금융규제를 촘촘히 할 경우 실수요의 주택 구매와 임대를 어렵게 만드는 부작용도 나타난다. 부동산 시장을 적절히 관리하려면 공급, 금융, 세제 등의 세가지 수단을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경직적인 사고로 중요한 수단 한가지를 배제할 만큼 만만한 시장이 아니다.

보유세 재설계하는 세가지 방법

보유세 개혁의 관건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세제 도입 여부다. 우선 타이밍은 부동산이 오른 이후보다 시장이 안정화될 때가 적절하다. 이미 자산가격이 상승하는 저금리 국면엔 세율을 올리지 않아도 보유세 부담이 커진다. 안 그래도 쉽지 않은 조세저항이 극대화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보유세를 재설계하는 둘째 전략은 세금을 내는 사람들의 수용성 높이기다. 관련해 새로운 정책을 하나 제안하고자 한다. 실제로 늘리지는 않되 앞으로 세 부담이 늘어난다는 예측만을 주는 방안이다. 이를테면 보유세율을 올리되 기존 납부자의 세 부담 증가율을 5~10% 이내로 제한한다. 실거주할 경우 오히려 세 부담을 낮춰준다. 이렇게 하면 보유세가 인상돼 세 부담이 연 500만원에서 연 700만원으로 늘어난다고 해도, 기존 납부자는 500만원에서 5% 인상된 525만원만 납부하면 된다. 실거주할 경우 세 부담은 이전과 동일하다. 반면 신규 주택 구매자는 인상된 연 700만원의 보유세를 부담하게 돼 기존보다 주택 구매와 유지 비용이 늘어난다. 이로 인해 주택 가격 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렇게 부동산 시장이 안정화되고, 전반적인 집값이 부담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무주택자뿐 아니라 더 좋은 집으로 이동하고픈 유주택자들도 충분히 동의할 만한 정책이 되리라 생각한다.

셋째 전략은 보유세를 내지 않는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시 후보의 공약이었던 ‘토지보유세에 기반한 기본소득’은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에게 ‘배당’이란 혜택을 줘 납세자의 반대를 돌파해보자는 취지였다. 한 번도 시행해본 적 없는 낯선 정책이긴 했으나, 세금을 내는 사람들만큼 결집되지 않는 무주택자들의 정치적 동기를 일깨우기 위한 정책이었다. 전향적인 정책을 바로 도입하기 어렵다면 그 취지를 살려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보유세 세수입을 사람들이 체감할 수 있는 용처에 우선 사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예를 들면 집값이 너무 올라 주거 불안이 극심해진 청년 세대를 위한 주택 공급에 보유세 세수입을 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보유세가 만능열쇠는 아니다. 잘못 사용했다간 정권도 바뀐다. 하지만 잘만 사용한다면 부동산 시장에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수단이다. 보유세 포기 시대가 도래한 듯하지만, 주거 불평등과 자산 격차가 더 극심해지기 전에 보유세를 의미 있는 정책수단으로 되살려내야 하지 않을까.

<윤형중 정책연구가>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