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택시기사의 무례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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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데 기사가 거리 선거유세를 보더니 구시렁 불만을 쏟아냈다.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에 반대하는 모양이었다.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기를 바라는 듯 내게도 말을 건넸다. 동의 여부를 떠나 적당히 맞춰줬는데 대뜸 “아가씨가 검수완박 이슈도 알아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아가씨라는 호칭이 불쾌했고, 아가씨가 검수완박 이슈를 안다고 놀라워하는 걸 보니 기가 찼다. 어디서부터 짚어야 하나 고민하다 아예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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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입을 다물어버린 건 아가씨라는 호칭 때문에 얼굴을 붉힌 기억이 있어서다. 지역에서 상습 침수지대 문제를 취재하던 때였다. 취재 중 한 농민이 나를 대뜸 ‘아가씨’라고 불렀다. “아가씨, 이쪽으로 넘어올 수 있어요? 아가씨가 넘기엔 턱이 좀 높아요.” 취재에만 집중하고 싶었는데 반복되자 듣기가 거북했다. 호칭을 삼가달라고 했다. 그 농민은 정정은커녕 “결혼했어요? 결혼 안 했으면 아가씨지. 남자들도 총각이라고 하면 다 좋아하던데”라고 했다. 강하게 항의를 하고서야 사과를 받았다.

별다른 의미 없이 내뱉은 말들이었으려니 마음을 달래면서도, 이런 경험이 되풀이되다 보면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먼지를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 마치 ‘찌든 때’처럼 아무리 닦아도 잘 닦이지 않는다. 박찬욱 감독은 2016년 영화 <아가씨>를 개봉하면서 “오염된 단어를 원래의 의미로 되살리고 싶었다(제목을 이렇게 정했다)”고 말했다. 당초 상류계급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부르던 말이 현대에 들어 ‘OO 아가씨’로 쓰이는 것을 두고서다. 호칭에도 ‘맥락’이 있는 법이다.

대통령 부인의 호칭을 놓고 종종 논쟁이 벌어진다. 일부 언론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을 여사나 영부인이 아닌 ‘씨’라고 표기해 독자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영부인이라는 용어 대신 여사로 호칭하겠다던 이명박 정부는 정작 일부 기념품에 ‘영부인’이라고 표기해 빈축을 샀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영부인이라는 말은 쓰지 말자”고 했다. 앞으로 더 지켜볼 일이다.

여사와 영부인이라는 호칭 그 자체보다 반대말이 있는가 여부에 더 관심이 간다. ‘남사’와 ‘영부군’쯤 될 듯하다. 정작 이 단어들은 국립국어원에 등재돼 있지 않다. 굳이 칭할 일이 없어서 단어를 만들 필요조차 없었던 걸까. 영부군을 맞이하는 날이 오면 그때는 단어로 등재하게 될까. 결국 호칭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가는 ‘작업의 산물’이다. 적재적소에 적당한 이름을 사용하는 건 결국 개인의 몫이자 책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김춘수 시인의 ‘꽃’ 구절이 떠오른다. 호칭도 마찬가지 아닐까. 제대로 된 호칭을 부를 때 온전한 존재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호칭에는 존중과 하대, 고정관념, 편견 등이 모두 담긴다. 호칭 다음에 나오는 말까지 종합하면 발화자의 의식을 짐작할 수 있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아가씨가 검수완박 이슈도 알아요?”라는 질문은 호칭부터 내용까지 모두 부적절했다. 일상생활에서 곧잘 마주치곤 하는 ‘무례함’에 덜컥 마음이 내려앉는 이들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유선희 정책사회부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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