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동산 보유세, 포기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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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세의 딜레마(상)

정책을 진보와 보수, 선악의 관점으로만 보지 말고 딜레마의 관점으로 보자는 주장을 지난번 이 연재에서 펼친 바 있다. 그래야 정책의 장단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정책 실패를 줄이며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정책을 일부러라도 딜레마에 빠뜨려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정책이 바로 ‘부동산 보유세’다. 그 어떤 정책도 따라가기 힘든 엄청난 딜레마에 이미 봉착했기 때문이다.

서울 남산에서 본 아파트단지의 모습 / 연합뉴스

서울 남산에서 본 아파트단지의 모습 / 연합뉴스

부동산 보유세가 처한 딜레마의 실체를 극적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보유세를 인상하면 조세저항이 극심해 정권이 바뀐다’와 ‘보유세를 회피하면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인 집값 폭등을 방치한다’라는 딜레마다. 정부로선 정권을 내놓는 선택도, 집값 폭등을 방치하기도 어렵다. 어느 쪽도 택할 수 없는 딜레마의 상황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종부세 트라우마

실제로 보유세인 종합부동산세가 ‘정권교체 촉진세’라는 평가는 집권당이었던 민주당 내에서도 나왔다. 지난 4월 7일 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인 ‘더민초’가 주최한 대선평가 경청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진보 진영에서는 종부세를 개편해 보유세율을 끌어올리면 주택가격 상승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봤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유세 수준과 부동산 상승 수준은 대체로 무관하다는 것이 중론”이라며 종부세를 대선 패배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했다. 반면 이날 또 다른 발제자였던 김남근 변호사는 ‘보유세가 다주택 투기를 막고 실수요 위주의 주택 소유를 유도하는 정책’이며 ‘부동산 버블로 재산세 부담이 늘어난 것이 문제이지 이미 1주택자에게 부담을 완화한 종부세는 죄가 없다’라는 입장이다. 이처럼 한 정당 내에서도 보유세를 둘러싼 입장은 엇갈린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가 개편한 부동산 세제가 모두 실패로 귀결됐다고 주장한다. 장기적으론 종합부동산세를 폐지하고 보유세를 재산세로 일원화하겠다고 공약했다. 지난 5월 3일 발표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도 이러한 공약 내용이 담겼다.

부동산 보유세를 둘러싼 딜레마를 하나씩 해체하기 전에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가 어떤 보유세 정책을 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집값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 수단으론 주택 공급, 금융규제, 부동산 세제 등 세가지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어느 쪽에 방점을 찍었을까. 초기엔 금융규제를 주로 사용했다. 집권 초기 집값이 꿈틀대기 시작하자, 문재인 정부는 2017년 6월 17일 첫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기존 70%에서 60%로 낮춘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러한 규제의 미세 조정으로 집값이 안정화되지 않자 정부는 두 달도 지나지 않은 8월 2일에 추가 대책(이른바 8·2 대책)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역시 금융규제로 신규 대출에 적용되는 LTV를 40%로 낮추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새로 집을 살 때 집값의 40%만 빚을 낼 수 있고, 60%의 자금은 본인이 직접 조달해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부는 보유세라는 카드를 꺼내지 않았다. 금융규제와 거래세로 볼 수 있는 양도소득세만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이 규제가 당시엔 상당한 효력이 있었다. 특히 LTV를 연초에 비해 30%포인트 이상 낮추는 강력한 대출규제의 효과가 컸다.

그해 말인 2017년 12월 13일, 보유세뿐 아니라 주택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하나 더 발표했다. 이른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이다. 여러 복잡한 기준이 있지만, 핵심은 다주택자들이 보유 주택을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면 재산세, 종부세, 양도소득세를 감면 또는 면제해준다는 내용이었다. 대신 등록된 임대주택은 임대료 인상 상한을 5%로 규제했다.

이렇게 문재인 정부는 첫해에 보유세와 관련해 이렇다 할 정책도, 장기적인 로드맵도 내놓지 않았다. 대신에 금융규제와 거래세, 임대주택 활성화 정책 등을 제시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첫 청와대 사회수석이던 김수현 세종대 교수의 부동산 철학을 되짚어보면 미리 예견할 수 있던 정책이기도 했다. 그의 저서 <부동산은 끝났다>를 보면 참여정부에서 종부세를 도입하고, 이명박 정부에서 종부세가 무력화됐던 과정을 복기하며 “개혁적 중산층조차 보유세 강화의 당위는 인정했지만, 세금 부담에는 내심 큰 불만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며 “보유세의 바람직한 방향은 있지만, 정치적으로 실행 가능한 정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는 소회를 밝혔다. 임대주택 활성화 정책 역시 그는 저서에서 “등록된 임대주택에 혜택을 주고 대신 임대료를 통제하고 임대소득세를 제대로 걷는 대타협을 하자”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지난해 8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종부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지난해 8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종부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뼈아픈 실책, 등록 임대주택 정책

문제는 임대주택 활성화 정책의 부작용이 컸다는 점이다. 임대주택에 주는 세제 혜택이 주택 매수 수요를 자극했다. 실제로 등록 임대한 주택의 수는 2017년 말 98만호에서 2018년 말 136만호로 급증했다. 정부는 기존 임대주택의 등록을 기대했지만, 예상외로 주택을 매수하는 수요가 늘어났다. 물론 그럴만한 대내외 환경이긴 했다. 전 세계에서 지속된 장기 저금리로 유동성이 풍부했고,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셋값의 비율)이 높아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으로도 가능했다.

그렇게 2018년부터 다시 수도권 집값이 치솟기 시작했다. 2017년 초엔 서울 아파트의 중위가격(중간 순위의 가격)이 6억원대 초반이었지만, 매년 1억원 이상씩 올랐다. 2020년에는 9억원을 돌파했다. 결국 집값 폭등은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실정이 됐다. 이렇게 실패하기까지 문재인 정부는 어떤 행보를 보여왔을까. 정부는 기존 규제의 한계가 노출된 집권 이듬해부터 보유세 카드를 꺼냈다. 2018년 9월 13일, 이른바 9·13 대책에 종부세 개편 방안을 담았다. 2019년 12·16 대책 때도 종부세를 개편했다. 두 개편 모두 방향은 동일했다. 다주택자에게 종합부동산세를 무겁게 과세하는 이른바 ‘핀셋 증세’였다. 2020년 7월 양도소득세의 다주택자 중과 조치도 도입해 부동산 정책의 목표를 ‘다주택 투기 수요 억제’로 분명히 했다.

또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왔다. 다주택을 억제하자, 수요가 ‘똘똘한’ 한채로 몰렸다. 주택 수요는 사그라지지 않았고, 고가 주택이 더 많이 오르는 현상도 발생했다. 그렇게 집값이 오르던 2020년 11월 3일 국토부가 보유세의 과세 기준인 ‘공시가격’을 장기적으로 시세의 90%로 현실화한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2020년 기준 공동주택과 단독주택의 공시가격은 시세 대비 각각 69.0%와 53.6%였는데 이를 각각 2030년과 2035년까지 점진적으로 시세의 90% 수준까지 올린다는 계획이었다. 과세 기준이 실거래 가격과 동떨어진 문제를 이번 기회에 개선하겠다는 취지였다. 지금까지 소개한 문재인 정부의 보유세 정책을 요약하자면 과세 강화로는 ‘다주택자 중과’, ‘공시가격 현실화’ 등이 있고, 과세 완화로는 ‘등록 임대주택에 세제 혜택 부여’가 있다.

개혁안 만든 주체가 실행도 맡아야

지난 연재에서 제시한 ‘정책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는 4가지 방안(조합·타이밍·커뮤니케이션·점검과 보완)’이란 틀로 문재인 정부의 보유세를 평가해보자. 일단 정책 조합(mix)부터 적절하지 않았다. 금융규제 강화와 등록 임대주택 보유세 완화가 조합을 이뤘는데 한쪽은 주택 수요를 억제하고, 다른 쪽은 촉진하는 대표적인 엇박자 정책이었다. 그나마 다주택자에게만 ‘핀셋’ 증세하는 정책과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올린 보유세의 ‘보편’ 인상은 서로의 빈틈을 메우는 조합이라고 볼 수 있다.

타이밍 또한 나빴다고 볼 수밖에 없다. 보유세는 주택 가격이 오르기 전과 오른 이후, 전혀 다른 조세 저항에 직면한다. 예를 들어 매년 공시가격의 0.1%를 부과하던 보유세율을 0.5%로 인상한다면 공시가격이 5억원일 땐 보유세가 50만원에서 250만원이 되지만, 공시가격이 15억원일 땐 보유세가 150만원에서 750만원이 된다. 이 주택 소유자의 연 소득이 5000만원이라면 소득의 5%(250만원)를 세금으로 낼 때와 12.5%(750만원)를 세금으로 낼 때의 차이는 분명히 크다. 따라서 보유세는 선제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종부세 트라우마를 안고 출발한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반에 보유세 인상을 주저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정권 초기에 재정개혁특별위원회를 꾸려 장기적 안목의 조세 개혁안을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특위의 개혁안이 관철되기 어려운 구조였다. 진정 개혁을 하고자 했다면 개혁안을 만드는 주체와 실행하는 주체를 일치시켜야 했다. 참여정부 당시 새로운 세제인 종부세를 뚝심 있게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도 이정우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이 개혁안을 만들고, 현실화하는 역할을 동시에 맡았기 때문이다.

공시가격을 시가의 90%로 현실화하는 정책은 발표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의 인상률은 2020년까지 한 자릿수였다. 이 정책을 발표한 2020년 11월은 집값 폭등으로 2021년부터 공시가격이 크게 인상되리라고 예상되던 시점이었다. 실제로 공시가격 인상률은 2020년 5.98%에서 2021년 19.05%로 증가했다. 집을 가진 사람들은 안 그래도 오른 공시가격을 정부가 또 올린다고 비판했고, 집값이 올라서 공시가격이 오른 게 아니라 정부가 아예 ‘공시가격 자체를 올렸다’는 왜곡이 넘쳐났다. 타이밍뿐 아니라 정책 커뮤니케이션까지 실패한 셈이다.

무엇보다 부동산 정책의 점검과 보완이 적시에 이뤄지지 않은 점은 가장 뼈아픈 부분이다. 임대주택 활성화 방안의 부작용이 도드라졌을 때, 금융규제를 강화하고 다주택자 중과를 해도 갭투자와 똘똘한 한채 매수 수요가 가라앉지 않았을 때, 신속하게 보완 대책이 나왔어야 했다. 결국 참여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마저 집값 폭등을 막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보유세 정책도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집값 상승으로 부동산 관련 세 부담이 늘었고, 집값도 잡지 못했다. 그 영향으로 정권도 교체됐다. 그렇다면 보유세는 포기해야 하는 걸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렇지 않다. 보유세는 단점을 잘 보완하면 여전히 의미 있는 정책 수단이다. 보유세를 빼고는 부동산 문제를 풀 수 없다. 다음 연재에서 그 이유와 새로운 보유세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해보려 한다.

<윤형중 정책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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