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모란장-도심 속 5일마다 열리는 흥겨운 장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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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과 9일에는 장이 열린다.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 모란장으로 알려진 전통시장의 장날이다. 지하철 8호선과 수인·분당선 모란역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장을 보러온 이들로 붐빈다. 돌아가는 이들은 손에 가득 무엇인가를 사들고 가고, 장을 향하는 이들은 바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는 꽃들의 여왕이다. 하나 모란장의 이름은 평양 출신의 어느 재향군인이 고향인 모란봉에서 이름을 따 재향군인을 위한 공동체 모란 개척단과 시장을 만든 데서 유래했단다. 1962년부터의 일이니 모란장의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은 편이다. 그렇다 해도 오일장이 사라져 가는 추세에서 모란장의 위세는 지금도 여전하다.

4일과 9일 경기도 성남 모란장이 열리는 날이면 인근 골목부터 인파로 가득하다.

4일과 9일 경기도 성남 모란장이 열리는 날이면 인근 골목부터 인파로 가득하다.

모란장은 몇차례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길바닥에 난장을 펼치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한구역에 정비된 모습으로 장을 연다. 평일에는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장날에는 공터에 길이 만들어져 골목길이 생기고 좌판이 들어선다. 모란시장 입구에 ‘골목형 전통시장’이란 현수막이 눈에 띄니, 한나절 생겼다 사라지는 길목도 골목으로 인정되는 시절이다.

전철역에서 내려 모란장으로 향하는 골목길은 초입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장터는 저 멀리 자리 잡고 있지만, 이곳까지 번져 골목길 곳곳에 좌판이 보인다. 이 골목에 전을 펼치는 노점들은 장날이 아닐 때도 종종 판을 벌인다고 한다. 먹을거리에 채소며 나물, 반찬과 주전부리를 비롯해 옷가지도 널려 있다.

참기름보다 비싼 들기름?

역에서 가까이 있는 장으로 향하는 골목의 이름은 기름골목. 40여곳의 기름가게가 진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참기름과 들기름, 피마자유와 낙화생유는 물론이고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동백기름이며 고추씨기름도 볼 수 있다. 기름가게가 왜 이리 많냐고 묻자 “이 골목 기름 짜는 기술이 좋다. 입소문 나면서 가게들이 한둘 늘어선 것이 지금처럼 됐다”라고 가게주인은 말했다.

값을 흥정하던 손님이 한마디 퉁을 놓는다. “세상에 들기름이 참기름보다 비싸다는 게 말이 되냐. 내가 살다가 처음 본다. 내년엔 밭에다 들깨나 잔뜩 심어야겠다”라고 하자 상인은 “들기름 비싸진 지가 언제 적인데 그러느냐. 지금 가격도 내린 것이다. 앞으로도 이대로 갈 것 같다”라고 답한다. 들깨를 심겠다는 언약이 내년 봄까지도 살아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들깨 값은 당분간 내릴 사정이 아니라는 게 기름집 주인의 명백한 전망이다. 참깨는 수입산이 넉넉해 중국산 참깨로 짠 참기름 8000원, 인도산 참깨로 짠 것은 7000원이다. 그밖에 나이지리아산 참깨도 들어온다고 했다. 중국산 들깨로 짠 기름은 1만2000원이다. 국산은 그때그때 시세가 요동친단다. 귀천은 늘 바뀌는 일이고, 높고 낮음을 못 박아 가늠하는 것은 편견일 수 있다. 어제 장바닥과 주막집 뒷방을 굴러다니던 신세가 오늘 고귀해질 줄 누가 알겠는가.

모란장은 1962년부터 열려 60년의 역사를 지녔다.

모란장은 1962년부터 열려 60년의 역사를 지녔다.

좁은 골목길 사람과 사람 사이를 용케 피하면서 수레 하나가 굴러간다. 기름집 앞에서 보온병을 열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차를 탄다. 가게 주인과 손님에게 커피를 전해주고 장부에 잔 수를 기록한다. 굴러다니는 찻집 길 다방 손수레의 모습이다. 얼마나 파냐고 묻자 “장날이면 100~200잔은 쉽게 판다. 장이 끝날 때쯤 한꺼번에 계산한다”고 했다. 그도 장날 대목을 단단히 보는 중이다.

오래전부터 들려온 “뻥이요!”

모란장으로 들어서면 장터 어귀에서 뻥튀기 노점을 만날 수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장마당을 지켜온 증인이다 싶은 “뻥이요!” 소리를 듣게 된다. 폭음이 터지자 쌀 튀밥도 아닌 둥굴레 뿌리들이 튀어나왔다. 잘 볶아진 둥굴레를 살피던 아주머니는 “가족들 먹으려고 가락시장에서 국산으로 사다가 집에서 볶아 보려 했는데, 연기 나고 난리가 났다. 옛날처럼 마당에 가마솥 놓고 볶지 않을 바엔 여기가 최고다”라고 한다. 그 옆 노인은 “가루 내서 미숫가루 만들려고 서리태 콩 튀기러 왔다”라는데 아침 출근하는 자식의 요기를 위한 것이란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이들의 표정은 거의 비슷해 자식과 가족을 위해 무엇인가를 주섬주섬 싸들고 와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기름솥에서 막 튀겨낸 도넛이며 꽈배기에 사로잡혀 가던 길을 멈춘 남편에게 “그렇게 먹고 싶으면 먹어라. 먹어”라고 채근하지만, 그의 살찐 몸을 흘겨보는 아내의 눈길이 아파 사내는 줄곧 머뭇거린다. 상인은 약을 올리듯 꽈배기에 설탕을 버무려 좌판에 이리저리 굴려 냄새를 피우고, 남자는 더욱 눈을 떼지 못한다. 장마당 대부분은 먹을거리와 반찬거리로 가득 차 있다. 즉석에서 김을 구워 파는 좌판 앞에서 사내가 “홀아비 반찬은 구운 김이 최고”라며 맛을 보고 엄지를 든다. 그는 김 두톳을 산다. 과일가게 주인은 동료에게 방울토마토를 잘 보이는 곳에 놓으라고 얘기한다. “요즘 토마토가 제철이다. 손님들은 짭잘이를 주로 찾는데 방울토마토도 맛있다”라고 한다. 상품 하나 놓는데도 전략과 전술이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한나절 반짝 골목길이 생기고 골목을 따라 장이 펼쳐진다.

한나절 반짝 골목길이 생기고 골목을 따라 장이 펼쳐진다.

세상은 온통 쓸모 있는 것들이 주인으로 행세하지만, 가끔 모자라고 알 수 없는 것들도 한귀퉁이를 차지한다. ‘투르말린’이라는 낯선 이름의 금속이 박힌 반지. 뭔가 복잡하게 생겼지만 허술한 기기를 손가락에 갖다 대면 ‘삐’ 소리가 나고 상인은 손님의 간이 나쁜지 폐가 안 좋은지를 즉석에서 판별한다. “허리가 안 좋고 아프지 않나?”라고 묻자 그렇다는 손님에게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고 한 달 보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한다. 가격을 묻고서 남편이 머뭇거리자 아내가 돈 걱정하지 말라고 애써 권한다. 남자는 슬그머니 반지를 빼어놓고 일어선다. 신장이 안 좋다는 아내의 손가락에 낀 반지 값만 치르며 분주하게 뒤돌아서서 장을 보러 나선다. 자기보다 더 귀한 자신의 사람. 우리는 누군가에게 다 귀하고 소중한 사람일 텐데 가끔 그것을 잊고 산다.

모란역에서 모란장 사이에 기름집 40여곳이 있는 기름골목이 있다.

모란역에서 모란장 사이에 기름집 40여곳이 있는 기름골목이 있다.

장마당 한편은 온통 꽃천지다. 모란장의 꽃 시장은 이름이 났다고 한다. 난이며 선인장이며 구근식물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1000원만 깎자”는 손님 말에 주인은 “안 판다”고 단호히 선을 긋는다. 색이 곱다며 알덩이뿌리를 자꾸만 만지는 손님에게 “예쁘면 사가라”고 하자 “같은 게 있다”는 말에 “그럼 욕심이에요. 꽃 욕심도 부질없으니 그냥 가시라”고 답한다. 주인은 파는 일에만 사로잡혀 있지 않고, 손님은 구경도 일이라 한가롭게 시장마당을 거닌다. 대부분의 손님은 주인이 부르는 가격에 수긍하는 형국이라 흥정의 칼바람은 이 바닥에서 별로 보이지 않는다. “꽃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도 고와요. 모진 사람 못 봤고 다 여리고 좋은 사람뿐이더라”라는 게 야생화를 팔던 상인의 말이다.

“천엽 하고 거시기가 만원이다. 거기다가 국수 한그릇씩 먹으면 된다.” 먹거리 장터 앞에서 중년의 일행이 뭘 먹을까 골라 셈을 따지고 있다. 거시기는 아마도 탁주이거나 소주가 아닐까 싶다. 먹는 것도 장마당의 큰일 중 하나라 모란장 먹거리 장터는 판이 크다. 장마당의 4분의 1은 차지하고 있는 듯, 한편은 온통 먹을거리 좌판이 펼쳐져 있다. 늙수그레한 이들은 대개 요기도 되고 얼큰히 취할 거리를 찾는데, 손님 중엔 갓 스물 어린 축에 속하는 이들도 있어 튀김이며 군것질거리를 고르고 있다. 이가 부실한 이는 국수를 술술 삼키고, 건장한 이는 요즘 철에 맛이 들은 열무비빔밥을 꼭꼭 씹어 먹는다. 국밥을 앞에 둔 이들은 대개 반주를 하느라 소주병이 보이고 여럿이 모인 자리엔 막걸리병을 흔드는 일이 흔하다.

장마당 한편으로 널찍한 장막이 쳐 있다. 장단 가락이 흘러나오는 곳은 각설이 상설공연장. 각설이가 구성지게 ‘불효자는 웁니다’를 부르고 막을 가득 채운 불효자들과 불효자를 둔 부모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간간이 엿가락을 파는 각설이 동료들이 오가며 “사주세요. 만원” 외치자 불효자들은 순순히 지갑을 연다. “세상에 공짜 구경이 없는 법인데, 저렇게 열심히 부르는데 어찌 입 닦을 수 있나”라는 것이 엿 한뭉치를 건네받은 손님의 이야기다. 공연장은 상설인 듯 장막은 붙박이로 쳐져 있고, 공연을 보러 장날을 기다리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정오를 지나서인지 장터는 시들해지는데 그래도 손님들은 줄을 잇는다. “예전만 못하다. 정비되기 전에는 진짜 장돌뱅이들이 많았다. 지금은 근처 상인들이 자리를 펴는 곳도 많다”라는 것이 모란장 20년 경력의 장꾼 이야기다. 이곳에도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어서 아무나 자리를 펴고 장사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아마도 밀려난 이들은 기름골목 근처에 눈치를 보며 전을 펼치지 않나 싶다.

모란장 인근 골목길도 노점으로 장이 열린다.

모란장 인근 골목길도 노점으로 장이 열린다.

“사러 나온 게 아닌 놀러 나온 것”

모란장에서 오명을 날리던 가축시장은 사라졌다. 모란장에서 가끔 볼 수 있다는 시골 잡종 강아지를 파는 이들도 눈에 띄지 않는다. 오늘의 모란장은 깔끔해졌으나 장터의 다양함과 난장 분위기는 사라졌다. 어쩌면 그저 그런 전통시장 한곳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기대는 그렇지 않아보인다. 비닐봉지 여럿을 들고 귀가하던 노인은 “장 구경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장바닥을 헤매고 다니다 보면 살 것도 있고 볼 것도 있다. 가끔 치밀어 오는, 사는 게 지겹다는 생각도 사라진다”라고 했다. 무엇인가 잔뜩 사들고 “뭐 사러나온 게 아니라 놀러 나온 것이다”라고 강변하는 그의 말이 맞을 것이다.

도시 한복판에서 열리는 오일장은 새롭고 위태롭다. 어느 시골의 장터가 아니라 주변에 쭉쭉 올라선 아파트에 포위된 난감한 공터에서 열리는 장날은 그래도 장바닥 인생들이 축제를 벌이는 날인 듯싶다. 별달리 살 것이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향수를 되새기기 위해, 혹은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평범함이 지겨워서 장을 찾는 이들도 있다. 필요한 것이야 대형마트 한곳만 들러도 차고 넘치게 구할 수 있겠지만, 야바위처럼 사람을 홀리는 것은 장마당이 제맛이다. 어떤 때 상인이 물건을 팔기보다 손님을 위로하는 일도 볼 수 있다. 손님은 장사꾼에게 힘내라고 용기를 준다. 서로의 사연을 몰라도 모두가 힘든 세상에서 잘 살 수 있기를 바라며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 기대서서 5일마다 축제를 여는 곳이 모란장 골목시장과 장마당이다. 사는 게 답답하게 여겨지고, 세상사 복잡할 때 그곳을 찾아 살아서 퍼덕이는 활기를 맛볼 수 있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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