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없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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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을 앞둔 5월 5일 현재 문재인 대통령이 논란이 일고 있는 인물들을 사면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이로써 “사면해달라”고 힘 있는 집단의 요구가 빗발쳤던 이명박, 김경수, 정경심, 이재용, 이석기 등의 부처님 오신 날(5월 8일) 맞이 특별사면은 없던 일이 됐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상대적으로 한걸음 비켜나 있습니다만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정경심(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전 동양대 교수는 신·구 권력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문 대통령이 이들 3인방을 어떻게 할지 세간의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편집실에서]총성 없는 전쟁

이제 공은 오는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에게 넘어갔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크게 세가지입니다. 첫째,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찬반양론이 분분한 이들의 속성상 사면하지 않고 형기를 채울 때까지 미루는 방법입니다. ‘국민통합’, ‘협치’ 논리를 앞세운 김경수, 정경심 사면 요구를 어떻게 뿌리칠지가 관건이고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나 청와대 요직 및 초대내각 후보자들의 면면이 ‘MB 시즌 2’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과연 MB(이명박 전 대통령)를 사면하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둘째, 취임 후 적절한 시기에 여론의 추이를 봐가며 MB를 사면하고 김경수, 정경심 등은 사면하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다. 정면돌파식의 정공법이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적어도 내년 총선까지는 의회를 장악할 것이고 향후 국정 운영을 기대한다는 국민의 응답 비율도 겨우 50%를 넘기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노골적으로 내 편(MB)을 감싸고 네 편(김경수·정경심)을 배척하기란 쉽지 않겠지요. 마지막으로 MB와 김경수, 정경심 등을 동시에 사면하는 방법입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들이 패키지로 얽혀 있다는 점에서 가장 현실성이 높은 방안이라고 하겠습니다. 문제는 시기입니다.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내건 윤석열 정부하에서 당장 사면 카드를 꺼내들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MB 사면을 두고선 상대편 진영에서 “거봐라” 할 게 뻔합니다. 김경수, 정경심 사면을 놓고선 아군 진영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래저래 골치가 아프게 생겼지요. 그래서 전(前) 정권이 이 문제를 털고 가주기를 간절히 바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해 말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씨를 사면하면서도 MB는 제외하자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임기 종료 직전 김경수 전 지사와 함께 사면하려고 이명박 전 대통령을 남겨뒀다”는 내용의 이른바 ‘끼워넣기’ 의혹을 제기하며 반발했습니다. 문재인 정권으로선 이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하등의 이유가 없지요. 당선 후 무려 19일 만에 열린 신·구 권력 만찬 회동을 앞두고도 윤석열 당선인 측에선 ‘MB 사면’이라는 군불을 계속 지펴봤지만, 결과는 이렇게 됐네요. 사면을 놓고 비난 여론은 상대편 진영으로 돌리면서도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려던 양측의 치열한 수 싸움은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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