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노조 좋아요님” 닉네임은 안 불러주는 미국 스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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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주문하면 진동벨이나 번호 대신 앱 가입 시 설정한 닉네임으로 불러주는 ‘콜 마이 네임’ 서비스. 고객들과의 친근함을 강조하는 스타벅스의 정책이 바뀌고 있다. “노동조합(union), 단결한 노동자(workers united), 이런 닉네임을 사용하는 고객에겐 닉네임으로 부르지 말고 그냥 음료 이름으로 안내해주세요.” 미국의 스타벅스가 최근 전국의 매장 관리자들에게 보낸 e메일 내용이다.

미국 뉴욕주 버펄로의 한 스타벅스 매장 직원들이 지난해 12월 9일(현지시간) 노조 결성 투표 결과 찬성이 반대보다 많았다는 발표가 나오자 환호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뉴욕주 버펄로의 한 스타벅스 매장 직원들이 지난해 12월 9일(현지시간) 노조 결성 투표 결과 찬성이 반대보다 많았다는 발표가 나오자 환호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수십년 동안 무노조 정책을 유지해 오다가 지난해 12월 버펄로의 한 매장에서 시작된 노조 결성 운동이 반년도 지나지 않아 미국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급기야 스타벅스를 지금의 반열에 올려놓았던 하워드 슐츠가 최고경영자(CEO)로 컴백했는데, 그는 최근 공개된 관리자들과의 대담 자리에서 “미국에 노조할 권리가 있지만 안 할 권리도 있다”는 궤변으로 반노조 선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 노골적인 간담회에도 불구하고 스타벅스 매장에서 실시된 직원들 투표에서 만장일치 또는 압도적 가결로 노조 결성이 이뤄지고 있다. 반노조 선동이 오히려 노조 결성에 가속을 붙여준 꼴이다. 노조 결성에 성공한 매장에는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들 연대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오히려 매출이 느는 기현상을 낳았다.

스타벅스 경영진 입장에선 “노조 좋아요(union Yes)님, 음료 준비됐습니다”, “강력한 노조(union strong)님,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라는 식으로 닉네임이 매장에 울려퍼지는 꼴은 죽어도 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닉네임 부르지 말고 음료 이름으로만 부르라는 치사한 지침까지 내렸으니….

그럼 나도 한번 해볼까? 앱을 깔고 닉네임을 ‘최저임금 인상’으로 설정하려 했더니 사용불가라고 뜬다. 어? 이게 왜 안 돼? ‘비정규직 철폐’도 ‘스타벅스 노조’도 막혀 있었다. 혹시나 해서 ‘최저임금 인하’ ‘최저임금 동결’을 넣었더니 이건 사용 가능한 것으로 나온다.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도 안 되고 ‘비정규직’도 안 된단다. 얼씨구? 특정 부류의 사람들은 커피도 즐기지 말라는 건가.

만약 미국에서 저런 닉네임을 막았다면 스타벅스는 법원과 의회에 매일같이 불려갔을 것이다. 이런 것도 ‘K스타일’인가. 미국은 최소한 특정 닉네임을 부르지 말라는 지침 정도인데 한국에선 아예 닉네임 사용 자체를 금지한 거다. 명백한 표현의 자유 침해이자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주변 동료들에게 알리니 함께 분노하면서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최저시급 인상’은 가능하대, ‘스벅노조 응원’이나 ‘스벅노조 파이팅’은 되더라, ‘모든 차별 철폐’도 열려 있어, ‘게이 파이팅’으로 시도해봐. 6글자 안에서 스타벅스의 봉쇄를 뚫는 아이디어가 곳곳에서 몰려들었다. 혼자서는 답답했는데 마음이 모이니 힘도 불끈불끈 생겼다. 그래, 이게 단결의 힘이지! 막으면 막을수록 노조 결성에 힘이 보태지는 미국의 사례가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것을 더 밀고 가보자. ‘원전 이제 그만’, ‘여성차별 철폐’, ‘이주노동 인권’ 등 우리가 호명해야 할 단어를 닉네임으로 짓는 운동 말이다. 스타벅스 매장에서 그런 단어들이 울려퍼지면 자연스레 화제에 오르고 우리 사회도 조금씩 그 길에 다가서지 않을까. 혹시 알아? “장애인 이동권님, 공감합니… 아니, 음료 나왔습니다”라는 얘기도 듣게 될지 말이다. 영화 제목 하나를 패러디하면 ‘재치있는 닉네임은 현실이 된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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