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점포냐, 혁신점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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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권엔 ‘4대 천왕’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았습니다. 금융지주회사 빅4, 즉 국민-하나-우리-산은금융지주의 수장을 맡은 어윤대-김승유-이팔성-강만수 회장을 지칭하던 용어였습니다. 상당수가 이명박 전 대통령과 특정 학맥(고려대)으로 얽힌 실세들인데다 너도나도 메가뱅크(초대형은행) 깃발을 내걸고 각종 인수합병 작업을 진두지휘하던 시기여서 ‘은행맨’들 사이에서도 서로 “우리가 최고”라는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더랬습니다.

[편집실에서]공동점포냐, 혁신점포냐

최근의 일입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에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공동점포’가 개점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에 하나은행 창구가, 오른쪽에 우리은행 창구가 있습니다. 현금자동인출기(ATM)도 양쪽에 2대씩 각각 있고 대기표도 따로 발급받는 구조입니다. 여전히 별개인 두 은행이 한 지붕 밑에 함께 둥지를 튼 이유는 임대료 절감입니다. 인건비 부담 증가, 비대면 흐름의 확산, 인터넷 은행 출현 등 미증유의 위기 앞에서 두 대형은행이 손을 잡았습니다. 양쪽이 모두 절박한 위기를 체감하지 못했다면 자존심 세고 콧대 높기로 유명한 금융권에서 ‘한 지붕 두 가족’이라는 낯설면서도 정겨운 풍경이 탄생하지는 않았겠지요.

은행권 최초의 공동점포 탄생이라며 여기저기서 의미를 부여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습니다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아직까진 물리적 결합 수준입니다. 우선 출장소 개념의 이 지점은 적극적인 영업 전략이라는 은행 점포 고유의 ‘본능’과 거리가 멉니다. 마케팅 전략과 고객 정보 노출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소액 입출금, 각종 제신고, 전자금융, 공과금 수납 등의 기본 업무만 처리합니다. 대출과 환전 업무는 물론이고 펀드 등 금융상품 판매도 하지 않습니다. 공격은 없이 수비만 하는 은행 점포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과연 얼마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두 은행이 임대료를 절반씩 나눠낸다는데 한쪽으로 손님이 쏠려도 이 약속은 유효할까요. 그런 점에서 공동점포보다는 오히려 혁신점포의 확산 흐름에 눈길이 갑니다. 화상 점포, 무인 점포, 디지털 점포는 기본이고 우체국에 들러 은행 업무를 보고 편의점 한편에서 예·적금 상품에 가입하는 식의 혁신점포가 향후 은행권의 대세로 자리 잡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봅니다.

여의도에도 ‘공동점포’가 있긴 합니다. 민의를 대변한다면서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 늘상 나란히 앉아 있는 양대 정당은 제헌의회(1948년) 때부터 동상이몽이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붕괴 직전입니다.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놓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강경 대치-합의-결렬 사이를 오가며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웁니다. 같은 공간을 쓴다고 저절로 공동점포가 되는 건 아니지요. 걸어온 길이 다르고, 생각과 지향하는 가치가 다른 정치 세력이 경쟁하면서도 조화를 이뤄 궁극적으로 유권자들의 이익을 늘리기는 이처럼 어렵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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