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바람 잘 날 없는 쌍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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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매각이 쳇바퀴를 돌고 있다. 자신만만하던 에디슨 모터스는 인수 자금도 마련하지 못하고 꼬리를 내렸다. 에디슨 모터스는 국내 전기버스 생산업체로서 명성을 쌓아왔다. 매출 규모는 쌍용차와 비교할 때 매우 작아 인수 후보자로 선정되고 나서부터 “새우가 고래를 삼키려 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쌍용차는 한때 친환경차의 대명사였던 클린 디젤차와 세계적으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및 고급차의 명가로 이름을 날렸다. 외환위기로 인해 외국 자본에 매각되면서 핵심역량을 상실해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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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완성차업체가 매물로 나오면 동종 산업이나 이종 산업 내 기업들과 재무적 투자자가 인수자로 나선다. 자동차산업은 자금력과 역량이 우월한 기업들이 부실 업체를 인수해왔다. 쌍용차는 1차 매각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중국 상하이 자동차에 쌍용차를 매각했기 때문이다.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하자 일각에서는 상하이차가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만 챙길 거라고 우려했다. 상하이차가 쌍용차의 정상화보다는 기술만 빼가고 헌신짝처럼 버릴 거라는 평가였다. 물론 인수자 처지에서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인수기업이 피인수 기업의 기술 등 지식재산권을 확보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주판알을 튕기던 상하이차는 야반도주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쌍용차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두 번째 인수합병(M&A) 시장의 매물로 나왔다. 이번에는 일반인들에게 더 생소한 인도 마힌드라가 쌍용차를 인수했다. 오래가지는 못했다. 자동차산업의 성장세가 꺾이고 코로나19가 발생하자 마힌드라는 쌍용차를 버렸다. 결국 쌍용차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고 3차 매각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번 매각 과정에서 쓸 만한 외국계 자본이나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고 중소 자동차 기업이나 자동차 부품 기업을 보유한 기업과 재무적 투자자들이 인수 경쟁에 나섰다.

국내 자본이 쌍용차 인수전에 뛰어든 건 바람직하다. 외국 자본이 또다시 쌍용차를 인수하면 또 다른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어서다. 쌍용차의 조기 매각이 필요한 이유는 시간을 끌수록 부실화가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의 불안감도 고조돼 품질 경쟁력 저하와 예기치 못했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디슨 모터스가 인수과정에서 제시한 내용을 살펴보면 쌍용차의 정상화와 미래차로의 전환을 통한 지속가능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전적인 목표의 제시는 필요하지만, 실현가능성이 떨어지는 전략은 무의미하다. 또한 에디슨 모터스의 쌍용차 인수 시도가 투기를 조장했다는 점은 비난받아 마땅한 대목이다. 물론 조사가 이뤄져야 확실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쌍용차가 주식시장의 꽃놀이 패로 등장한 건 사실이다. 따라서 쌍용차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인수 대상자 선정과정에서 ‘아니면 말고’ 식의 제안서를 제출한 기업은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이번엔 부활할 수 있을까?

이미 쌍용차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청산 가치가 존속 가치보다 크다는 평가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쌍용차를 청산하기는 어렵다. 도미노 효과가 나타나 국내 자동차산업의 독점구조가 심화될 수 있어서다. 또 대량 실업이 발생하고 지역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완성차 공장 폐쇄가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한국지엠 군산공장의 폐쇄 사례에서 잘 나타난 바 있다.

산업은행은 쌍용차의 매각 기준을 여러차례 밝힌 바 있다. 기업 매각은 인수자가 기존 사업과의 보완성을 고려해 상승효과를 추구하거나 새로운 사업으로의 전환과 다각화를 목표로 추진할 때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 르노가 닛산을, 푸조시트로엥이 피아트크라이슬러를, 지리가 볼보를, 마힌드라가 레인지 로버와 재규어를 인수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자금력이 풍부하며 비전과 전략이 투명하고 확실한 기업에 쌍용차를 매각해야 한다. 대마불사라는 얕은 생각에서 쌍용차 인수를 통해 부실화를 해결하거나 정부의 지원을 끌어내려는 기업도 배제해야 한다. 완성차업체 대다수가 이미 양적 성장은 지양하고 질적 성장에 나서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자동차산업은 지금 승패의 갈림길이 아니라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의욕만 가지고 쌍용차를 인수하기는 어렵다. 에디슨에 이어 특장차업체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과 다수의 인수를 통해 부실기업 정상화의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기업이 이번 쌍용차 인수전에 참여했다. 쌍용차는 상용차를 생산해본 경험이 없다. 완성차업체는 여타 제조 기업과 결도 다르다. 지난 두차례 매각 당시와는 자동차산업 환경이 너무 많이 변한 점도 고려해야 한다. 전동화와 디지털화가 본격화했고 커넥티드 카(IT 기술과 자동차를 연결해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차량)와 SDV(Software Defined Vehicle·소프트웨어로 가치가 정의되는 자동차) 시대를 열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기술력과 전문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지난 20여년간 쌍용차가 표류하는 과정에서 기술력을 상실하고 혁신역량이 약화됐으며, 전문인력도 많이 이탈했다. 판매와 생산 물량 확대만으로는 쌍용차의 장기 성장을 담보하기는 어렵다. 완성차업체 인수와 관련한 미래 비전과 전략을 평가할 때는 새로운 잣대가 필요하다. 현재 쌍용차 인수전에 뛰어든 업체들이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했더라도 패러다임 전환에 직면해 있는 자동차 사업을 운영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쌍용차 매각 기일이 6개월 남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쌍용차의 회생 가능성에 대한 새 분석이 필요하다. 그간 정부는 자동차산업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기술, 산업, 법률, 재무회계, 정책 전문가들로 TF를 구성해 해결해왔다. 또 평택시는 부인했지만, 쌍용차를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고 기존 부지를 재개발하는 계획에 대한 명확한 입장표명이 필요하다. 아직도 쌍용차 정상화보다는 부동산 개발을 통한 수익 창출을 노리고 무리하게 인수 의지를 보이는 기업도 있기 때문이다. 완성차공장 부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이뤄지면 많은 문제가 드러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는 해외 사례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삼세번에 득한다’는 옛말대로 쌍용차는 세 번째인 이번 매각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국내 자동차산업의 지속가능 성장 기반을 강화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쌍용차 매각과 관련해 다양한 훈수는 좋지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을 수도 있다. 조심스러운 언사가 필요한 때다. 해는 저물고 갈 길이 먼 쌍용차에 하나의 등불이 되지는 못할망정 단순 무지한 의견은 쌍용차뿐 아니라 자동차산업 전체에 실이 될 수 있다. 쌍용차의 부활을 다시 한 번 기대한다.

<이항구 호서대 기계자동차공학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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