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부활’ 예고…신재생에너지, 찬밥 신세 되나?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업계“새 정부 기조 변화, 민간투자 위축시킬 것”

전문가“신재생 비중 늘리면서 원전과 상호보완 필요”

“완전히 가슴이 뛰는 프로젝트다.”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지난해 2월 5일 전남 신안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 48조 투자협약식’에 참석해 김영록 전라남도지사 등 참석자들과 풍력발전기 모형을 들고 있다. / 전라남도 제공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지난해 2월 5일 전남 신안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 48조 투자협약식’에 참석해 김영록 전라남도지사 등 참석자들과 풍력발전기 모형을 들고 있다. / 전라남도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2월 5일 전남 신안군 임자2대교에서 열린 ‘세계 최대 해상풍력발전단지 48조 투자협약식’에서 한 말이다. 단일 단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신안 해상풍력단지는 2030년 완공이 목표다. 문 대통령이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로 현 정부에서 공을 들였다. 당시만 해도 신안 해상풍력단지는 문 대통령이 제시한 ‘2030년 세계 5대 해상풍력 강국’ 도약의 중추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대선 이후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원전 부활’을 선언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현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전환 사업들이 찬밥 신세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그중에서도 신안 해상풍력단지 조성 사업이 가장 먼저 ‘재검토 대상 1호’가 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경제성이 없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으면서다. 현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전환 정책 추진에 동참한 지방자치단체와 업계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흐름을 고려해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면서도 원전을 활용하는 정책의 조합을 강조한다.

신안 대규모 해상풍력단지 조성 계획, 왜

신안 임자도 30㎞ 해상 일대에 조성될 단지는 계획대로라면 8.2기가와트(GW·1GW=원전 1기 수준의 발전량)의 설비용량을 갖추게 된다. 해상풍력의 평균 이용률(30~35%·설비를 얼마나 이용하는가를 백분율로 나타낸 것)을 감안하면 4인 가구 기준으로 한해 510만여가구가 쓸 수 있는 전력량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남도는 2019년 12월 신안군, 한전, 전남개발공사 등과 손잡고 이곳에 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총사업비 48조5000억원 중 46조원을 민간에서 유치할 계획이다. SK E&S, 한화건설, 두산중공업 등 국내 대기업과 세계 해상풍력발전 1위 업체인 덴마크 오스테드 등 해외 기업이 사업에 참여 중이거나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다.

신안에 대규모 해상풍력단지를 조성하려는 이유는 지리적 이점 때문이다. 해상풍력단지는 수심 50m 이내, 연평균 풍속이 7m/s 이상을 유지해야 적합한 위치로 평가받는다. 전남 서남해는 풍속이 평균 7.2m/s로 비교적 일정하고, 평균 수심도 40m 미만이다. 박재영 광주·전남연구원장은 “전남 서남해는 우리 해상풍력발전의 총 잠재량 386.6GW 중 32%인 125GW를 차지(전국 1위)하고 있고, 해상풍력과 연관성이 큰 대불·광양 국가산단 등 조선·철강 산업 단지와도 가까워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전남도는 단지 조성으로 450여개 기업을 유치·육성하고, 12만개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신안 해상풍력단지 조성은 문재인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과 맥이 닿아 있다. 정부는 2017년 12월에 발표한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에서 7.6%(2017년 기준)에 그치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공급 계획량 48.7GW 중 태양광이 30.8GW이고 풍력이 16.5GW인데, 육상풍력(4.5GW)에 비해 해상풍력(12GW)의 계획 규모가 훨씬 크다. 나아가 2050년엔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원전 부활’ 예고…신재생에너지, 찬밥 신세 되나?

“해상풍력, 가장 효율적인 대체에너지”

정부는 해상풍력발전 비중의 확대가 선택이 아닌 필수적 과제로 보고 있다. 우선 2015년 12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된 파리협정에 따라 국제사회에 약속한 ‘2030년 온실가스 40% 감축·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기존 에너지 정책을 화석연료 체계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게 급선무다. 정부는 신안 해상풍력단지에서 생산하는 8.2GW 전력을 통해 연간 약 1000만t의 이산화탄소(CO₂) 감축 효과(소나무 약 7100만그루를 심는 것과 비슷)를 거둘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다른 신재생에너지원인 태양광과 육상풍력의 경우 국토 훼손과 산림 파괴를 우려하는 환경단체 등의 반발 때문에 대상 면적이나 설비 규모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도 정부가 해상풍력에 주목하는 이유다.

해상풍력은 한국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토 면적이 작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해상풍력 발전에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또 해상 바람은 육상 바람보다 더 빠르고 세기 변화가 작아 한 번에 많은 양의 에너지를 비교적 일정하게 생산할 수도 있다. 이런 배경에서 신안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 사업은 현 정부 신재생에너지 전환 사업의 본격적인 신호탄이었다.

세계적으로도 해상풍력 시장의 규모는 날로 커지고 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외신을 인용한 자료를 보면 세계 해상풍력 설비 규모는 2019년 29.1GW에서 2030년 177GW로, 연평균 17.8%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상풍력 시장의 선도국 중 하나인 영국은 지난 4월 6일 해상풍력발전량을 현재 11GW에서 2030년까지 최대 50GW 규모로 늘리기로 발표했다. 독일 정부도 같은날 에너지 믹스(전원별 구성비율)에서 해상풍력을 포함한 재생에너지 비중을 현 42%에서 2030년까지 80%로 높이는 재생에너지법 개정안을 의결하고 오는 6월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도 최근 ‘세계 에너지 전환 전망 2022:1.5도 경로’ 보고서에서 “파리협정 목표를 달성하려면 2050년까지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69억t 저감해 넷제로(탄소중립)를 달성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한 핵심 조건으로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와 직접 사용 등을 꼽았다.

이처럼 해상풍력의 잠재력이 크지만 기술력이나 발전량에서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국내 신재생에너지의 발전원별 보급량을 보면 태양광이 4.4GW로 가장 많고, 풍력은 약 0.1GW에 그쳤다. 현재 가동 중인 해상풍력 규모도 탐라(30㎿), 영광(34.5㎿), 서남해 실증단지(60㎿) 등 총 124.5㎿에 불과하다. 신안 해상풍력단지의 경우 SK E&S가 올 상반기 1단계(99㎿) 착공을 앞둔 정도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기술력도 한계로 지적된다. 터빈 등 발전시스템 핵심 부품의 국산화율이 30%대에 머물러 있다. 제도적 지원도 미흡한 실정이다. 해상풍력 사업 추진 시 약 10개 부처에서 29개 법령의 검토를 거쳐야 인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인허가를 받는 기간도 해외에서는 약 3~4년 걸리지만, 한국에서는 5~6년에서 길게는 10년 안팎까지 걸린다. 정부는 인허가 기간을 줄이기 위해 ‘해상풍력 인허가 통합기구 설립’ 등을 담은 특별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주민 수용도를 높이기 위해 해상풍력 부지 내 어업 종사자에게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가중치 수익과 투자 권한 등도 우선 부여키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은 해상풍력발전량이 원전이나 태양광에 비해 미미하고 단가도 비싸지만, 나중에는 원전의 위험성을 줄이면서 세계적인 탄소중립 흐름에 동참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대체에너지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 탐라 해상풍력단지 전경 / 경향신문 자료사진

제주 탐라 해상풍력단지 전경 / 경향신문 자료사진

새 정부 ‘친원전’ 행보에 신재생 위축 우려

윤석열 정부에서 신재생에너지 전환 정책이 속도를 낼지는 미지수다. 인수위가 친원전 행보에 속도를 내면서도 신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에는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인수위 과학기술교육분과는 지난 4월 20일 발표한 ‘원전 계속 운전 제도 개선방안’에서 원전 계속 운전 허가 신청 시기(서류 제출 시기)를 설계 수명 만료일 ‘2~5년 전까지’에서 만료일 ‘5~10년 전’으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이럴 경우 새 정부 임기 중 계속 운전을 신청할 수 있는 원전은 기존 10기에서 8기 많은 최대 18기로 늘어난다. 인수위는 올해 상반기 또는 늦어도 8월까지는 ‘그린 택소노미(친환경 에너지원을 구분하는 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하는 등 관련 제도를 정비해 12월 10차 전력수급계획에 반영할 계획이다.

특히 신안 해상풍력단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재검토” 방침까지 내놨다. 인수위는 지난 4월 16일 신안 자은도 해역에 있는 SK E&S 해상풍력단지 현장을 시찰하면서 “경제성을 신중히 따져봐야 한다”(장능인 지역균형발전특위 대변인)고 했다. 윤석열 당선인 측의 이러한 인식은 선거 과정에서 내놓은 지역균형발전 공약에서 신안 해상풍력단지 조성 사업을 제외하면서 어느 정도 예견은 됐다. 이후 지난 4월 27일 인수위가 발표한 ‘지역균형발전 비전 및 국정과제’에서도 신안 해상풍력단지 조성 사업은 포함되지 않았다. 전남도 관계자는 “인수위 균형발전 과제에 명시되진 않았지만 5월 4일 예정된 전남도 지역순회 국민보고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사업의 중요도와 필요성을 강조해 국정과제에 포함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태양광도 마찬가지다. 인수위는 태양광 확대 사업이 국토와 환경 훼손뿐 아니라 손쉬운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면서 발전 비중을 하향 조정하겠다고 했다. 인수위는 한발 더 나아가 “현 정부의 ‘2050 신재생에너지 비중 70%’ 등의 시나리오를 그대로 추진하면 2050년까지 매년 4~6%의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도 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 소속 위원들이 지난 4월 16일 신안 해상풍력단지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전라남도 제공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 소속 위원들이 지난 4월 16일 신안 해상풍력단지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전라남도 제공

“기조 바뀌면 손실 불가피”

업계에서는 사업 규모가 축소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해상풍력단지 조성 사업은 사업 기획부터 인허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완료까지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사업의 초기단계인 동시에 리스크가 가장 큰 기간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 단지 한곳당 대당 30억원 수준인 기상측정장비를 설치한 후 약 1년간 바람의 세기 등을 관찰·관리한 결과를 정부기관에 제출해야 발전사업 인허가를 받을 수 있다”며 “법인 설립과 직원 채용, 관리선 운영 등 소요까지 합하면 초기 비용만 수백억원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인수위의 이 같은 행보에 전남과 울산 등 지자체들의 해상풍력단지 조성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 중인 업체들의 관련 문의도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신안 해상풍력단지 조성 사업과 관련해 효성은 지난 1월 전남도와 ‘그린수소(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수소) 산업 육성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신재생에너지 전환 정책이 뒤집히면 효성의 그린수소 생산 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효성은 신안 해상풍력단지를 통해 그린수소를 20만t까지 생산하겠다며, 중장기적으로 총 1조원의 투자 결정을 내린 상태다. 국산 발전 기자재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도 마찬가지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최근 10년 이상 풍력사업 투자를 확대하며 세계 5번째로 발전용 가스터빈 독자 개발에 성공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부 방침과 절차에 따라 발전사업 허가를 받았는데, 새 정부 출범 이후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축소되는 식으로 기조가 바뀔 경우 업체들의 손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그간 투자한 비용의 손실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향후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민간의 투자가 중단될 수 있고 일부는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소지도 있다”고 말했다.

경제성이 없다는 인수위 주장에 대한 반대 의견도 나온다. 2030년까지 원전 9기와 맞먹는 9.6GW 규모의 해상풍력단지(부유식) 조성을 추진 중인 송철호 울산시장은 “2050년까지 세계적으로 200GW가 넘는 부유식 해상풍력 시장이 열리게 되면 울산이 세계시장을 선점할 수 있고, 기업 확장과 일자리 창출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유럽 신재생에너지 강국의 에너지원별 발전단가를 보면 한국과 반대로 원전은 단가가 비싸고 해상풍력이나 태양광은 상대적으로 저렴해지는 추세”라며 “이는 신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한 각국 정부의 의지를 반영한 결과”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국내 대기업들도 사용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RE100’에 가입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을 정도로 신재생에너지 전환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됐다”며 “새 정부가 위험성이 큰 원전 중심의 에너지정책에 집중할 게 아니라 신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에 방점을 찍으면서 원전을 활용하는 상호 보완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믹스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