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

용산정비창에 공공주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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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울 용산역 뒤편 정비창 부지에 갔다. 전자상가와 민자역사 사이에 놓인 구름다리가 51만㎡에 달하는 거대한 공터를 가로질렀다. 아마 서울 한복판에 이만한 공터는 없을 것이다. 그런 만큼 이 땅을 어떻게 개발할지를 두고 다양한 견해가 나오고 있다.

[오늘을 생각한다]용산정비창에 공공주택을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인 2009년쯤 발표된 ‘한강 르네상스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서울시는 이곳에 국제업무지구와 국제여객터미널을 건설하려고 했다. 관광·IT·문화·금융을 아우르는 ‘동북아 최대 비즈니스 허브’로 키우겠다며, 27개 금융기업과 건설사가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라는 걸 설립하기에 이르렀으나 금융위기 여파로 부도를 맞고 지구 지정도 해제됐다. 재작년 8월 정부는 용산정비창 부지에 1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인허가권을 쥔 서울시 역시 지난 연말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계획이었지만 거의 반년째 소식이 없다.

두가지 문제 때문으로 보인다. 일단 새 정부의 핵심 인사이자 이곳을 지역구로 둔 권영세 의원이 “홍콩을 대체하는 국제업무지구 개발”을 공염불처럼 외치고 있다. 그런다고 갑자기 홍콩과 도쿄에 있던 기업이 굳이 용산으로 올까? 가망 없는 제로섬 게임일 뿐이다. 텅 빈 빌딩을 보게 될 공산이 크다. 또 공공주택을 지을지, 도로 ‘국제업무지구’로 계획을 바꿀지의 문제를 지금 결정해버리면 코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계산도 했을 것이다. 2019년 홍콩 항쟁의 근본 원인은 주거 불평등이었다. 홍콩의 1인당 GDP는 5만달러에 달하지만, 동시에 홍콩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도시’다. 이곳엔 매우 열악한 쪽방 ‘달팽이집’들이 30만호나 있다. 아파트 1채를 10여개의 침대칸으로 쪼갠, 잠만 잘 수 있는 주거공간이다. 도시 면적이 좁아 집을 못 지은 걸까? 그렇지 않다. 홍콩의 주택면적은 전체 토지의 7%에 불과하다. 반면 녹지나 골프장은 65%에 달한다. 홍콩 정부는 부동산 재벌을 위해 존재할 뿐, 시민의 주거권에 무관심하다. 25만이 넘는 시민이 공공주택에 들어가려고 대기 중이지만 공급은 매우 적다. 불만이 폭발하지 않을 수 없는 경제 모순이 있었다. 아마도 오 시장이나 권 의원이 만들고 싶은 서울은 그런 홍콩의 모습을 닮은 도시인 듯하다.

공공주택 1만5000호를 능히 공급할 수 있는 땅에 업무지구를 만든다고 우리 삶이 나아질까? 심각한 주거 불평등 도시에서 우리는 전세대란과 높은 월세, 지옥철로 고통받지만, 정치권력은 부자의 이윤만 고려할 뿐, 우리 삶엔 관심이 없어보인다. 용산에 집이 있는 소수의 부자는 집값 떨어진다며 공공주택을 바라지 않는다지만, 대다수 시민에겐 매우 절실하다. 빈곤사회연대, 전국세입자협회 등이 모여 용산정비창 개발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100% 공공주택 공급’을 요구하는 건 이 때문이다. 도심 한복판에 진짜로 필요한 건 건설 자본의 이윤 증식 욕망이 아니라 누구나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모두의 공간이다.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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