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갈라치기 아닌 성평등의 가치 살려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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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권인숙 민주당 의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주요 공약인 ‘여성가족부 폐지’ 논의를 일단 뒤로 미뤘다. 차기 정부가 부서 폐지를 위해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려면 여전히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란 벽을 넘어야 한다. 민주당이 여성가족부 해체란 의제에 어떻게 대응할지, 어떤 방침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이유다.

사진 / 권호욱 선임기자

사진 / 권호욱 선임기자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권인숙 민주당 의원을 지난 4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났다. 권 의원은 20대 대선 이재명 민주당 후보 캠프에서 공동상황실장과 젠더·여성 의제를 맡았다. 그는 “지금이 ‘여성가족부 존폐’란 테두리를 벗어나 성평등이란 가치를 실현할 방안을 논의해야 하는 절박한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또 “성별·세대별 혐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는 우리 사회의 미래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이번 대선이 남긴 교훈으로 꼽았다. ‘젠더 갈라치기’ 전술을 적극 구사한 상대에 대한 대응과 선거 직후 민주당으로 향한 여성들의 지지를 언급하는 부분에선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과 다짐도 엿보였다.

-여성가족부를 비롯한 부서 통폐합 논의는 매번 선거 때마다 나왔던 레퍼토리다. 이번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기존의 여성가족부 폐지 혹은 타 부처 개편 논의와 어떻게 다른가.

“혐오·갈등을 이용해 관심을 모으고,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선거에 동원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후보자(당선인)가 경험적·의식적으로 내린 선택이라기보다 선거 때 지르고 나서 뒷수습하는 식의 무책임한 전략에 부처 하나가 이용당하는 상황이다. (여성가족부 폐지가) 대선의 핵심 공약으로 자리 잡은 건 다른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사례다.”

-여가부 폐지 공약은 청년 정책의 일환으로 나왔다. 청년층을 젠더로 갈라치는 걸 어떻게 대응할지, 지난 선거 과정에서 고민은 무엇이었나.

“갈등을 부추기는 한편이 아닌, 갈등을 초월하는 쪽에 서기가 핵심이었던 것 같다. 표적집단면접(FGI)을 해봤을 때, 말초적 형태의 젠더갈등 때문에 여성과 남성 모두 많이 지쳐 있는 게 분명했다. 그동안 젠더갈등이 계속 언론의 먹잇감이자 선정적 요소로 다뤄졌다는 뜻이다. 사실 집권 민주당도 관점을 내놓지 않았고, 행정부도 조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무책임함을 극복하는 일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쉽진 않았다.”

-쉽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 문제가 어떤 수위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심각함을 잘 몰랐다. 애초에 (젠더갈등을) 잘 알기 어려운 50대 이상 남성이 대다수이지 않나. 민주당 내에선 세차례의 지자체장 문제를 겪으면서 되게 많은 상처를 입다 보니 젠더 이슈에 대한 내부적 반발감도 있었던 것 같다. 성인지나 성평등에 동의하기 힘든 사람들이 생산되는 과정도 있었던 것 같고. 하여튼 뭔가 확 빠르게 진행돼 가는 속에서 사회적 동의와 전반적인 공감대를 확산시키기 어려운 요소가 있었다. (성평등이) 왜 의미가 있는지 설득할 시간은 짧은 상황에서, 그 설득할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현실도 있다.”

-투표 결과를 보면 특히 20대 여성들이 ‘우리도 표가 있다’를 보여줬다. 선거 직후 민주당에 후원과 입당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런 행동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보나.

“한쪽에 편향된 극단적 갈라치기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 여론조사에서 나타나지 않던 유권자의 메시지가 (이번 선거 결과) 꽤 세게 나타났다. (국민의힘에 간) 남성 표도 지난해 4·7 재보궐선거 때보다 훨씬 줄었다. 납득하기 어려운 극단적 흐름에 반대한다는 의사가 표심에 적극적으로 드러났고, 이것이 혐오 문화 속에서 저질러지는 반(反)성평등 흐름에 제동을 가하는 큰 힘이 됐다. 여성들의 민주당 입당이 이어진 건, ‘이대남’으로 대표되던 반성평등 흐름을 새로운 방향으로, 더 긍정적인 메시지와 보편적 가치로 끌고 갈 수 있는 큰 힘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여성 당원이 들어온 의미를 분석하는 토론회를 열었을 때 반응이 뜨거웠던 것 또한 민주당을 새롭게 만들어보자는 흐름을 잘 이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의 반영이었다. (이 흐름이 앞으로 계속 이어지도록 하는 게) 나의 큰 숙제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여가부가 ‘소명’을 다하려면 향후 어떤 방향으로 개편 내지는 재정비돼야 한다고 보나.

“이제는 실질적인 효과를 내야 한다. 약자 보호뿐만 아니라 디지털 성폭력, 고용, 저출생, 낙태 같은 문제에 대해 성평등 관점에서 전반적인 부처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만드는 데 여가부가 기여를 많이 해야 한다. 부처 이름이 어떻게 되든 간에, 성평등이란 과제를 중심에 제출할 힘이 있게끔 바뀌어야 한다. 고용, 임금격차, 경력단절 같은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지 않나. 그러면서 저출생 이야기를 하는 건 난센스다. 각 부처가 성평등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현재로선 활로가 없다. ‘일을 할 수 없으면 애를 낳지 않는다’가 여성들 삶의 기획 속에 들어와 있다. 구조적으로 보면 여성이 저임금과 비정규직에 편재된 상황 속에서, 여성의 고용 문제는 저출생과 같이 연결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반복된다. 문제의 중심에 성평등이 있다는 것을 사회가 인식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전망도 미래도 없다. 구조적 변화를 지도자들이 이끌어내야 한다.”

-윤석열 당선인이 일단 여성가족부 해체를 뒤로 미루고 ‘해체 로드맵을 밟으라’며 여가부 장관을 내정한 건 어떻게 보나.

“(민주당이 다수당이기 때문에) 한동안은 해체가 가능하지 않을 거다. 부서의 형식은 한동안 해체하지 못하겠지만 문제는 내실이다. 젠더갈등 해결을 포함해 계속 의제를 선점하면서 사회를 설득해가야 하는 과제에 당면해 있는데 그런 식의 내실을 전혀 기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껍데기만 유지하려는 방식으로 갈 가능성이 가장 답답하고 두렵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여가부 업무가 흔들릴 거란 우려가 나온다. 이를 견제하거나 방지할 방법은 무엇인가.

“법으로 역할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최대한 노력하겠다. 행정부가 노력하지 않고 의지가 없는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어쨌든 법으로 정해진 일을 안 하는 일은 없도록 막는 게 우리 입법부의 역할이다. 우선 윤석열 정부가 어느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해 신념적 의지가 있는지조차 확인된 바 없기 때문에 당장은 (윤 당선인과 김현숙 장관 후보자가) 내놓을 방안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20년째 여가부 존폐 논의가 반복되는 것에 대한 소회는 어떠한가.

“논의 수준이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져 답답하다. 젠더갈등과 징병제 개선이 새로운 논제로 올라왔고, 경제성장률과도 연동되는 여성 고용 문제는 답보 상태다. 여가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어떻게 성평등이란 보편적 가치를 살려낼지에 대한 고민을 절박하게 해야 하는 순간이다. 정말 절박하다. 외국 사례를 봐도 성평등과 평등의 업무 영역이 힘을 받으면서 고독이나 1인 가구 같은 분야를 포함한 각종 사회 이슈에 대안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딱 그걸 해야 하는 시기다. 각각의 근거가 제 위치에 가서 이야기되지 않는 게 문제다. 이 혼란기를 겪으면서 새로운 화두를 이끌어내야 하지 않을까. 젠더갈등이란 표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은 거의 없다고 본다. 고용과 노동의 이중시장 문제,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 문제 등이 젠더 갈라치기를 통해 해결될 여지는 전혀 없다. 젠더갈등을 내세운 선거 운동 방식이 갖는 부작용이다.”

사진 / 권호욱 선임기자

사진 / 권호욱 선임기자

-국회 입성 전 학자로서 병영·남성문화를 연구하지 않았나. 현재 일부 20대 남성들의 성평등 반발은 어떤 맥락에서 바라봐야 할까.

“징병제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집단적 경험이다. 20대 남성의 희생을 한동안 개선하지 않고 이용해왔다. 징병제를 제대로 변화시켜 나가는 방식보다는 군가산점제를 비롯한 몇몇 제도를 만지작거리며 희생을 이어가는 방식을 사회가 계속 부추겼다. ‘희생에 사회가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데에서 오는 그들의 불공정 인식을 외면하고 눈감아온 게 사실이다. 그 결과 여성과 남성으로 갈라치기 가장 좋은 부분이 되고 말았다. 그 경험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가 중요한 시점이 됐다. 징병제 개선을 위해선 시민적 판단이 필요하다. 이는 시민이 군 인권을 비롯한 정책 결정에 폭넓게 참여하는 걸 의미한다. 입대하기까지 오래 기다려야 하는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고위급 회의에 참여해보니 아무도 그 현실을 모르더라. 자신의 시간을 희생한 젊은이들을 국가가 섬세하게 잘 보살피고 책임지며 불이익의 양을 최대한 줄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했다. 징병제를 단순히 안보를 위한 도구로만 봐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시민적 관점이 더 들어가야 한다.”

-차별을 차별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구조적 차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온라인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나온다. 차별 문제에 있어서 정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구조적 차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 잡고선 각종 문화 현상과 현실을 양산한다. 우리는 ‘노골적 차별’을 해선 안 된다는 전제도 만들어지지 않은 사회다. 심지어 그런 식의 차별을 정치인이 오히려 부추기는 새로운 지형이 막 열리고 있는 듯하다. 정치인이라면 이번 대선이 남긴 교훈을 적극적으로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교훈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성별·세대별 혐오와 갈등 부추기기는 우리 사회의 미래가 될 수 없다, 미래 권력의 핵심일 수 없다는 것이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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